[오진국의 '펼침의 미학'] 비늘
[오진국의 '펼침의 미학'] 비늘
  • 오진국 화백
  • 승인 2015.04.28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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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늘 2012 Daniel's Digilog Artworks(3543)Crignal Image size 4800x7500 Pixels(103.0M) Resolution 300dpi
'몸'이라는 화두는 단순히 신체적 특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고 있는 몸의 상징은 욕망과 열정과 비애를 분비하는 내분비선이다. 가눌 수 없는 존재의 허기와 고통이 이 내분비선을 타고 바깥세상으로 외출할 뿐이다.

물고기의 비늘을 일컫는 비늘은 한지로 린(鱗)으로 적는다. 또 탁린청류(濯鱗淸流)라는 사자성어로 가면 '비늘을 맑은 물에 씻는다'는 뜻으로 높은 지위와 명예를 얻음을 비유하는 말로 널리 통용되고 있으며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편린(片鱗)이란 말도 한 조각의 비늘에서 유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영어로 가면 우리가 사용하는 비례, 저울 눈금, 축척 등을 뜻하는 Scale(스케일)을 복수로 사용하면 Scales, 곧 비늘이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갑자기 무슨 물고기 비늘 이야기며 그림의 제목인 비늘과 연인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반 추상 인물화의 제목치고는 야릇하지 않은가? 그런데 의외로 그림의 제목은 순간적인 작가의 느낌을 간략하게 정리하는 경우도 많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아무렴 내가 이 연인을 그리면서 비늘, 비늘 하고 그 이미지를 구현하려고 노력하였겠는가? 전혀 그럴 리가 없다. 도대체 어울릴 연상을 해야지 억지춘향이 아닌가 말이다. 그럼에도 이 그림을 마칠 즈음에 내 작품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불현듯 스쳐가는 아주 짧은 글자 하나가 바로 린(鱗)이었다.

그렇다면 5000여 점도 넘는 나의 작품명 중 나도 내 작품명을 외우지 못하는 것도 많은데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을 제목으로 족하지 않은가? 이처럼 독자는 그림의 제목에 연연하며 그림을 감상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