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국의 '펼침의 미학'] illusion
[오진국의 '펼침의 미학'] illusion
  • 오진국 화백
  • 승인 2015.05.06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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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llusion-4 2012 Digilog Artworks(3433)Image size 4500x6500 Pixels(83.7M) Resolution 300dpi.

환상이나 환연, 환청 등은 우연히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내재된 잠재의식의 변모된 등장이고 그것은 자의식의 한 편린일 수 있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서 그녀를 느끼고 그리움이 이는 일련의 과정도 환상이라는 변이된 그림움의 일종이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그림움이나 고독이 그냥 지나치는 유행가사 정도의 가벼운 것이던가? 내 그리움의 대상은 곳곳에 가루로 뿌려져 어떤 때는 환상이란 형상으로, 어떤 때는 빛 가루나 소리 가루로 흩날리며 나의 심연을 진동하는 살아 숨 쉬는 존재가 아닌가?

五感(오감)이 체험적으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을, 그것이 유형적이건 무형적이건 조합하여 하나의 형상으로 그려내 보이는 것은 환상이라는 영역이 자유로움에 근거함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나는 그래서 이 단어를 사랑한다. 의식의 자유스러운 유영은 지적 고찰을 풍부히 할 뿐더러 聯想(연상)의 시발점으로서의 가치를 가지기에...

내가 회화의 형식에 구애 없이 전체 '장르'를 헤집고 창작을 하지만 나름대로는 좌충우돌하는 다작의 형태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형식은 본질의 일부일 뿐이기 때문에 구상과 비구상의 내면적 본질은 동일하다는 인식에 기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구상작품도 엄밀하게 파고들면 추상이 아닌 것이 없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비구상작품도 엄밀하게 파고들면 추상이 아닌 것이 없고,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비구상작품이라고 형태가 없는 것이 어디 있던가? 자신만의 전공분야를 깊게 파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획일성에 나 자신을 가두고 싶지 않기에 나만의 길을 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비구상 작품을 훨씬 선호한다.
여백이나 여지가 반드시 구성적인 면에서 공간적 할당에 자유롭고 의식을 묶어놓지 않아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나치게 그림이 사실적이면 그런 여지가 파고 들 소지가 없어 시각적으로, 또 정서적으로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그림은 그림다워야 하고 그림의 아름다움은 언제나 실물을 능가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