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국의 '펼침의 미학'] 보헤미안-3
[오진국의 '펼침의 미학'] 보헤미안-3
  • 오진국 화백
  • 승인 2015.05.2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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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헤미안-3 2013 Daniel's Digilog Artworks(3786) Image size 7,500x5,233 Pixels(112.3M) Resolution 300dpi

보헤미안적 사고를 통하여
사물을 고찰하거나 관조할 때
응집과 분산을 나누어 할 수 있는
사색의 토대를 만들다

어릴 적 나는 보헤미안이나 집시가 나오는 영화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곤 했다. 또 그런 유랑이나 방랑생활을 주제로 한 소설 같은 것을 읽으면 마치 그들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용기 있는 자들로 보이기도 하였고 무엇보다 그들이 누리는, 속박되지 않는 자유의 구가에 대해 경외심을 가지기도 하였다.

대지를 벗 삼아 자연의 일부가 된 그들만의 자유는 늘 싱그러움과 동경의 대상이었으니 마음 한 구석에 깊숙이 자리한 종기처럼 쉬이 지워지지 않고 잊을 만하면 이따금씩 재발을 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토록 나를 방황하게 만들었으며 무엇에 대한 허기와 갈증이 그토록 못 견딜 만큼 힘들게 한 것일까? 바로 그 해답을 찾는데 나는 꼬박 3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역설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바로 그런 방황도 에너지가 넘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고 나는 주체할 수 없는 내면적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방출할 어떤 장소도 찾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세월이 지나고 나는 보헤미안적 사고에서 스스로 탈출의 기회를 얻게 된다. 그것은 내가편협적인 단견으로 보헤미안의 정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자각과 더불어 어떻게 살아야 보다 성숙하고 품격 있는 보헤미안이 되는지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 내가 그런 소년기적 꿈으로 여생을 설계할 일도 없을 뿐더러 동경의 표상도 아니지만 이러한 값 비싼 경험을 통하여 사물을 고찰하거나 관조할 때, 응집과 분산을 나누어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 결과적으로 그나마 작은 소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