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국의 '펼침의 미학'] 불을 켜다
[오진국의 '펼침의 미학'] 불을 켜다
  • 오진국 화백
  • 승인 2015.06.18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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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을 켜다 2012 Daniel's Digilog Artworks(3595) Image size 4,500 x 4,500 Pixels (57.9M) Resolution 300dpi.

마치 화부처럼 불을 지펴놓고
망연자실 활활 타오르는 그 불빛을 태운다.
마음 한켠으로는 찌들대로 찌든 굳은 각질도,
소스라친 미움도 다 태워버렸으면 하면서도
정작 무엇을 태우고 무엇을 남겨둬야 하는지도
모른 채 허허로운 허공만 바라본다.
마음의 준비가 끝나지 않았지만 불을 밝히고 볼 일이다.
특히 이런 날에는…

몇 날 며칠을 이 그림을 붙들고 씨름을 하다가 손을 놓고 나는 어제 파김치가 되어 퇴실하였다. 그것도 대낮에 모든 것을 다 접고 들어가 밀린 잠부터 자기 시작하였는데 자다가 깨다가를 반복하며 모처럼 20시간 이상을 나를 에워싼 모든 일상과 결별하였다.

하루 종일을 거의 혼자서 작업을 하는 나의 경우도 인터넷으로 실시간 수많은 인적 교류를 하는 터라 설혹 잠시라도 모든 것과의 단절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용단을 필요로 하였지만 그야말로 나는 기진맥진, 거의 탈수 상태에 이르렀다.

아무튼 정확히 24시간 만에, 나는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무실로 나와 어제의 그림을 살피니 신통방통하게도 내가 켜놓은 불길은 잘 지펴져 꺼지지도 않고 숯가마의 그것처럼 열기를 한껏 발산하고 있어 좋았다.

제목에서처럼 불을 켠다는 것은 불을 지핀다는 것과 혼용하여 사용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것이 목적의 빛(光)이건, 열(熱)이건 이리 혹독한 겨울 추위에는 기분 좋은 말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바로 그런 것이지, 마음에 스모그가 끼여 뿌옇게 시야가 흐리면 빛이 필요할 터이고 옆구리가 시리고 축 처진 마음이면 온기가 필요할 터이니 가슴 한 구석 꽁꽁 얼어붙은 응어리에 불을 지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작품노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