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세하거나 자상하지 않아도 그냥 어디선가 버팀목처럼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자기 몫을 하고도 남았다. 현실에 가위 눌리듯 옥죄임을 당해도 행여라도 그 답답한 심정을 한 번도 자식에게 내색치 않고 묵묵히 짊어지고 먼 산만 바라볼 뿐, 숙명처럼 소리 내지 않고 들숨만 쉬었다.
세월이 바뀌고 세상이 달라져도 어딜 가나 아버지란 늘 그런 모습이었다. 가슴 속에 있는 것 곧이 곧대로 다 비워내면 아버지가 아니었다. 아버지란 늘 큰 느티나무처럼 흔들림 없이 중심을 잡는 일 만으로도 벅차디 벅찬 임무였기에 훈훈한 사람 향기 한 번 품어 낼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
그런 아버지가 어느날, 실직을 하고 자기 소임이 다하고, 끝없이 추락하는 자신의 초췌한 모습을 들키지 않
으려고 갑자기 자주 가지도 않던 등산도 하고 친구들과 술자리도 자주 해 보지만 그것도 그리 쉬운가? 지 속적인 과업이 아니란 것을 인식하고부터 털썩 풀섶에 주저앉은 노약자처럼 어깨가 내려앉으면서 풍을 맞은 사람처럼 시린 옆구리가 굳어져 갔다.자식도 아내도 해 줄 수 없는 일, 당신 스스로가 풀지 않으면 안 되는 창살없는 감옥에 여지없이 깊숙이 갇혀 버린 채 망연자실하였다. 늙은 아버지의 풍경은 이런 것이 대부분이었다. 경로우대 카드 달랑 한 장 받아 지하철 순환선을 돌고 또 돌면서 차창에 던져놓은 시선은 기 죽어 보이지 않으려고 바쁜 일이나 있는듯 정장을 하고 나온 위선이 '오버랩' 되면서 초점을 잃고 스쳐가는 차창 밖의 낯익은 풍경들에 시선을 떨구고 앉아 있어도조금 전 무엇을 보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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