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승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법학박사
덥수룩해 보이는 누군가가 지하철 출구로 나오면서 경찰관을 보고는 모자를 눌러쓴다. 이를 지켜본 경찰관이 다가와 거수경례를 붙이고 신분증 제시를 요구한다. 경찰관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려 하자 경찰관이 잽싸게 앞을 가로막는다. 이어 실랑이가 벌어진다.
이른바 불심검문의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한때 서울 경부고속버스터미널 하차장 출구에서 상시적으로 불심검문이 행하여지고 있었음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과거처럼 상시적이진 않지만 아직도 버스터미널이나 지하철역 입구 등에서 이런 장면을 가끔 볼 수 있다.
불심검문은 경찰관이 직무를 집행함에 있어서 행동이 수상한 자를 발견한 때에 정지시켜 질문하는 것으로, 범죄 및 범인발견의 단서가 된다는 데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중요한 사실은 법이 정하고 있는 불심검문의 방법 및 절차이다. 첫째, 경찰관은 피검문자에게 경찰신분임을 나타내는 증표를 제시하면서 소속과 성명을 밝히고 그 목적과 이유를 설명하여야 한다. 법대로라면 그 절차가 매우 까다롭다.
"제복이 신분증입니다"라는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경찰제복을 입은 때에도 신분증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피검문자는 답변의무를 지지 않는다. 따라서 답변은 물론 경찰관이 지구대로 함께 갈 것을 요청해도 당연히 거절할 수 있다. 셋째, 만약 피검문자가 스스로 지구대로 가더라도 경찰관은 가족들에게 사정을 알려야 하며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알려야 한다.
이렇듯 불심검문에서 피검문자는 이에 응할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국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협조하는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국민의 권리의식이 높아지면서 이런 법의 실효성에 꾸준히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