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민의 '유니버설 디자인'] 유니버설 디자인 거리에 넘쳐나는 빛 공해
[조명민의 '유니버설 디자인'] 유니버설 디자인 거리에 넘쳐나는 빛 공해
  • (주)밀리그램 조명민 대표
  • 승인 2015.09.11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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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밀리그램 조명민 대표

1997년 12월 16일 오후 7시경 일본에서 TV 만화방송 포켓몬스터를 보고 있던 사람들이 두통을 호소하거나 발작을 일으키는 증상을 보였다. 오사카 시내에서는 다섯 살의 여자 아이가 일시적으로 의식불명 상태가 되는 등 같은달 17일 오전 1시까지 도부현에서 560명 이상이 동일 증상으로 병원에 이송됐다고 한다.

색채 심리학자인 스에나가 타미오는 이것은 깜박거리는 파랑색과 빨강색이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양극을 동시에 자극해 인간의 신경을 혼란시켜 이러한 증상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처럼 색과 함께 빛의 자극은 감각 중 시각을 통해 87%의 뇌 자극을 하여 인간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휘황찬란한 색에 노출되거나 반대로 빛을 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생활하게 되면 세포 속에 있는 생체광지(photon)의 변화로 통증이나 저림 증상이 몸에 나타난다.

1909년 프랑스에서는 필라멘트 없이 진공상태의 유리관에 네온을 충전한 방식의 조명을 발명해 1912년 몽마르뜨 거리의 ‘궁정 이발사(The Palace Hairdresser)’가 번쩍이는 붉은색 글자로 간판을 빛나게 했는데, 이것이 세계 최초의 네온 간판의 시작이었다. 네온 불빛은 안개 속에서도 가시거리가 약 32km나 되어 광고 효과로는 탁월했다.

하지만 무분별한 네온 사인 광고는 라이트클러터(light clutter, 빛 산란)로 과다한 인공 빛의 집합체라 할 수 있어  사람들에게 시각적 혼란을 유발한다.

우리나라도 현란한 네온사인과 인공조명에 쉽게 노출되어 있는데 이같은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포켓몬스터에서 나오는 빛과 같은 작용을 해 점점 신체가 병들어가게 된다.

▲ 맨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종로구 신교동 교차로 LED점자 블록', '광명사거리역 교차로', '강남역 네온사인', '홍대 거리 네온사인'

이것은 유니버설 디자인을 정의하는 누구나 보다 편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에 역행하는 일로 안전은 고사하고 인간의 신경을 혼란시키고 있다. 빛의 심각성을 알고 인공조명에 의한 ‘빛 공해 방지법’을 시행하고 있지만 단속은 미비한 상태이다.

빛을 활용한 좋은 예도 있다. 서울 맹학교가 위치한 종로구 신교동 교차로의 횡단보도 보행자 정지선에 기존 점자 블럭과 LED 불빛을 발하는 'LED점자 블럭'을 설치해 야간에 차량으로부터 어린이, 노약자, 저시력 장애인의 보행자를 보호하는 효과가 높아 시민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광명사거리역 교차로에는 횡단보도 신호등과 연동되어 신호등이 바뀌면 LED점자 블럭도 같은 색으로 자동 변경되어 보행자의 안전과 LED점자 블록이 붉은색으로 변경되면 무단횡단을 막는 심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차량운전자에게도 야간에 횡단보도 상황을 빠르게 인식할 수 있게 해 감속운행을 유도할 수 있다.

실외뿐만 아니라 실내에서도 마찬가지로 조도는 매우 중요하다. 감각적으로 예민한 장애인 이 이용하는 복지관의 조도를 조사해보면 대부분 조도의 높고 낮음에 많은 관심은 없다. 한국산업규격 조도 기준에서 주택의 경우, 공부방의 조도는 400룩스가 적절하고 놀이방일 경우에는 200룩스가 적절한 수준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치료실의 경우 조도는 180룩스부터 900룩스정도까지 정밀 작업실과 같은 조도수준인 곳까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밝은 것만을 선호하는 등 얼마만큼 밝아야 눈에 피로감이 없는 적절한 조도인지에는 무관심하다.

빛을 밝혀야 하는 곳과 빛이 없어야 하는 곳을 적절하게 구분한다면 인간을 포함한 동식물  생태계의 리듬을 깨뜨리지 않고 건강하고 균형 있는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주)밀리그램 조명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