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발은 가라”, ‘쌩얼’이 뜬다
“화장발은 가라”, ‘쌩얼’이 뜬다
  • 윤지수 자유기고가
  • 승인 2011.08.17 18: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맨얼굴 원조는 ‘유재석’네티즌 사진보며 열광
뉴스·화젯거리 자체 생산 싸이월드 미니홈피 ‘대박’

“너, ‘쌩얼’이 뭔지 아니?”
“너, 정말 너무한다.”

‘쌩얼’이란 낱말을 인터넷에서 접한 뒤 지인에게 그 의미를 물었다. 지인은 “너무 한다”는 말로 응답해왔다. 그의 응답은 “너, 바보 아냐? 그러고서 어떻게 요즘 트렌드와 유행의 패션을 이해할 수 있니?”(혹은 “그러고서 어떻게 요즘 트렌드에 맞춰 살아갈 수 있겠니?”)라는 뜻을 담고 있었다.

그는 한심하다는 듯, 별다른 의미를 알려주지 않았다. 당연, 궁금증은 더해갔다. 한참 상상력을 동원했다. 거칠고도 경음화한 표현의 유행어들이 인터넷을 통해 활발히(?) 유통되고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고 ‘쌩얼’의 ‘쌩’은 ‘생’(生)자의 경음화한 것임을 눈치 챘다. ‘얼’은 ‘얼굴’(‘얼짱’을 떠올려보라!)의 의미였고 결국 ‘쌩얼’은 ‘생 얼굴’ 곧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았다.

인터넷에 접속해 ‘쌩얼’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찾기로 했다. 다행히 답은 있었다.

‘쌩얼: 연예인들의 노메이크업을 보고 쌩얼이라고 한다. 한 마디로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이다.’(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 오픈국어사전에서)

‘쌩얼’이 뜨고 있다.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는 연예인 등 스타들의 화장을 하지 않은 ‘맨 얼굴’이 네티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화보를 이룬다. 그들의 ‘쌩얼’ 사진들은 네티즌들의 클릭에 클릭을 거쳐 각종 사이트를 통해 유통된다.
이른바 ‘직찍’ 혹은 ‘셀카’의 유행도 그 한 가지다. 이미지를 강력한 무기로 삼았던 대중스타들은 자신들의 ‘맨 얼굴’을 드러내는 데 익숙해졌고 또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설사 자신들이 미처 의도하지 않은 사진들이 인터넷을 통해 유통된다고 할지언정 그런 것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경우도, 이미지 관리에 절대 치명적이라고 판단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흔치 않다. ‘쌩얼’은 개그맨 유재석으로 부터 시작됐다.

두터운 렌즈의 안경을 써온 그가 한 오락 프로그램에서 안경을 벗은 모습을 공개했고 이는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특히 ‘메뚜기’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그가 안경을 벗은 채 ‘맨 얼굴’을 드러내는 모습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비쳐졌고 다른 한 편으론 더욱 코믹했다. ‘개그맨’이어서 가능했을지도 모르는 이 ‘용기’의 진원, ‘쌩얼’의 처음은 바로 그 였다.

이후 ‘쌩얼’은 이제 익숙한 ‘단어’가 됐다. 최근 ‘얼짱’이란 낱말을 국어사전에 올릴 것인지 여부를 둘러 학계의 작은 논란이 벌어졌지만 어쨌든 유행어의 변화와 그 유통의 속도가 하루가 다르게 빨라지는 상황에서 ‘쌩얼’ 만큼 낱말이 지닌 의미가 현실적이고도 적나라한 경우는 드물었던 듯하다.

‘얼짱’ 혹은 ‘몸짱’이란 단어가 의미하는 바,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강박’이라고 혹자들은 비난하곤 했다. 실제로 이 유행어들의 의미상 이를 부정하기는 힘들다. 과연 미모의 기준이 무엇인가는 차치하고서라도 ‘예쁨’과 ‘굴곡진 몸매’(이는 ‘S라인’이라는 또 다른 유행어를 낳았다)에 대한 욕망은 현실에 충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쌩얼’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그 속에는 스타와 대중 모두의 욕망이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중들은 ‘화장발’과 ‘성형’이라는 관점에서 스타들의 화려한 외모를 소비해왔다. 그러나 그 소비의 방식은 늘 스타들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라는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네티즌들이 ‘성형 의혹’을 제기하며 그들 스타들의 과거 사진과 현재의 화려한 외모를 비교하는 다양한 사진들을 무작위로 각종 연예 관련 인터넷 게시판 등에 올려놓는 것도 그런 양면의 거울이다.

또 다른 의미에서 이는 그 만큼 스타와 대중의 거리가 좁아졌음을 뜻한다. 그들 스타들이 실상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외모와 얼굴을 통한 안도의 친밀감. ‘쌩얼’의 핵심은 어쩌면 바로 그것인지 모른다.

스타들의 ‘쌩얼’에 대한 거부감이 급격히 줄어드는 것도 그런 친밀감과 질투의 양면을 이제 거부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님을 방증한다. 그리고 일부 매니지먼트사들은 소속 연예인들의 ‘쌩얼’을 자발적으로(?) 공개할 정도가 됐다. 물론 그 뒤에는 ‘성형 의혹’이라는 논란 아닌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계산된 전략’이 숨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쌩얼’ 자체를 공개한다는 것은 이제 큰 뉴스가 되지 못한다.

대중과 스타들의 ‘쌩얼’ 사진이 유통되는 상황을 자연스럽고도 가능케 한 것은 단연 인터넷 덕분(?)이다.
‘직찍’과 ‘셀카’ 등을 통해 자신들을 드러내고 싶은 신세대 네티즌들의 욕망은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대박’을 낳았다.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과 급격한 발전은 신세대들의 욕망을 현실화하는 데 도움을 줬다. 스타들도 그 욕망에서 멀지 않아서 그들의 미니홈피에는 수많은 ‘쌩얼’의 사진들이 널려 있다.

게다가 인터넷은 이제 그들에게, 타인이 제공하는 뉴스와 콘텐츠를 즐기고 소비하는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 인터넷은 그들 스스로 뉴스와 콘텐츠를 생산하고 유통하며 유희하는 공간이 된 지 오래다. 뭔가 새로운 것을 갈구할 수밖에 없는 것도 그들 스스로 콘텐츠를 공급하고 유통하는 그래서 새로운 것을 즐기고 싶은 욕망과 다르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쌩얼’은 무엇보다 새로운 것이었다. ‘얼짱’도 ‘몸짱’도 그랬지만 스타들이나 대중들 모두에게 재미와 호기심, 동등한 규모의 욕망을 실현시킨 유행어도 없었을 듯싶다. 하지만 ‘얼짱’이나 ‘몸짱’ 그리고 ‘쌩얼’이 지닌 의미에 비춰 여전히 외모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욕망에 관한 의혹은 여전히 떨쳐버릴 수 없다. 이런 유행어들 앞에서 ‘내면과 마음의 아름다움’이란 표현은 너무도 진부하며 너무도 뻔 한 것처럼 인식된다.

‘쌩얼’ 그 다음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