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눈앞에 다가온 인구 감소 시대 정년의 은퇴가 시급하다’
LG경제연구원 ‘눈앞에 다가온 인구 감소 시대 정년의 은퇴가 시급하다’
  • 정도민 기자
  • 승인 2011.12.1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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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의 축복이 자칫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고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2010년대 후반 우리나라는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14%~20%인 사회)에 진입하고, 2020년대 중반에는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중 20% 이상인 사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 동안 압축적으로 성장을 이뤄낸 것처럼, 고령화도 전례 없이 빠르다. 평균 수명은 늘어나는데 출산율은 크게 떨어진 탓이다. 반면 고령화가 가져올 각종 사회경제적 충격을 최소화하여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조치들의 강구는 느리기만 하다.

현재의 제도나 사회적 관행들이 계속 유지된다고 가정할 때 저출산과 고령화가 가져올 가장 큰 문제점 가운데 하나로 노동 공급의 위축을 꼽을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추계인구는 2018년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하여 2050년에 이르면 4,200만명대까지 줄어든다고 한다.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연령대를 나타내는 15세부터 64세까지의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시기는 더 빨리 도래하여, 2016년이 지나면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다.

15세부터 우리나라 국민들의 실제 은퇴 나이인 54세까지의 연령대는 이미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감소 속도로 따지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전체 인구가 2050년까지 매년 0.4%씩 줄어드는데, 생산가능인구는 1.1%, 15세부터 54세의 인구는 1.6%씩 더욱 빠르게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모두를 위해 정년 연장 꼭 필요

향후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크게 하락할 것이라는 예측은 경제성장을 결정짓는 노동과 자본, 총요소생산성 중에서 노동 투입의 급감 전망에 기초하고 있다.

평균수명이 늘어 고령자가 증가하는 반면 출산율 저하로 인구가 줄고 일할 사람의 숫자가 감소하여 소득이 저하되고 성장률이 하락하는 것이다. 전망 방식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2020년대에는 2%대, 2030년이 넘어서면 1%대의 경제성장률을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정부의 재정에도 큰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

고령화로 인해 사회보장 부담이 늘어 세출은 증가하는 반면 세수는 줄어 재정적자가 확대될 것이다. 현재 고령화에 대한 재정부담은 4대 공적연금과 기초노령연금, 건강보험, 노인장기요양보험만을 고려할 때 약 35조원 수준인데, 2050년이 되면 이 비용이 1,267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같은 암울한 미래 전망을 개선하기 위해 고려할 수 있는 노동 관련 정책은 다양하다. 육아 비용을 사회화함으로써 출산율을 높이거나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에 대한 장벽을 더욱 낮춰 줄 수도 있고, 외국으로부터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방법도 있다.

경쟁적인 사회 분위기를 개선하여 청년들이 필요이상의 교육을 받지 않고 일찍 취업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정년을 연장하여 일할 의욕과 능력이 있는 고령자들을 노동 시장에 계속 남게 하는 방법도 있다.

이들 모두 중요한 정책들이지만, 특히 마지막 방법은 고령화에 따른 재정 및 의료 부담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노동을 통해 삶의 의욕을 지속하고 은퇴 후 연금을 받게 되는 시기까지의 소득 단절 기간을 줄여줌으로써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하에서는 고령화라는 공통의 고민을 겪고 있는 주요국들이 정년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 그리고 주요 기업들이 시행하고 있는 연령관리 경영(Age Management)이란 무엇인지 살펴봄으로써 우리 경제에 주는 함의를 찾아보고자 한다.

1. 주요국들의 정년 관련 정책

최근 최근 선진국들이 겪고 있는 경제 상황의 악화는 상당 부분 인구 고령화 현상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고령 인구가 크게 늘고 있는데도 경제활동참가율이나 노동 공급이 그만큼 늘지 않아 성장률이 답보 상태를 보이고 있다.

반면 연금이나 노인 관련 보건의료 비용이 급증하여 이들의 재정은 크게 위협받고 있으며, 일부 국가들은 디폴트 위기에 처해 있기도 하다.

이처럼 일찍부터 고령화를 경험하고 있는 주요 선진국들은 사회적 토의 과정을 통해 법적 정년을 연장하는 조치에 어느 정도 합의를 이뤄가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고령화에 따른 문제를 심각하게 겪고 있는 유럽 국가들에서 많은 선례가 나타나고 있다.

영국, 65세 정년 전격 폐지

지난 20여 년 동안 영국에서는 정년 관련 논쟁이 끊임없이 진행되어 왔다. 그 과정에서 2006년 고용평등연령법(Employment Equality (Age) Regulations)이 제정되어 65세 정년이 확립되었으며, 65세 미만 근로자들은 나이를 이유로 고용 차별하거나 해고하는 것을 금지한 바 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2011년 10월에는 65세에 정년을 맞이한 근로자를 강제 퇴직시킬 수 있는 제도를 전격 폐지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영국의 기업들은 이제 65세 정년 6개월 전에 발송하던 근로계약 해지 통보서를 더 이상 보낼 수 없다.

물론 기업들의 저항도 있다. 나이 든 근로자를 다른 직장으로 이직시키기 위한 시도를 꾀하기도 하고, 나이가 아닌 다른 이유를 들거나 재정적 보상책을 제시하면서 퇴직을 종용하기도 한다.

청년층의 일자리 획득 기회가 줄고, 기존 직원들의 승진에 장벽이 생기는 것도 우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 입장에서 고령 근로자들의 노하우를 지속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개인들도 나이를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않게 됨으로써 긍정적인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는 측면이 분명 있다.

향후 이러한 조치가 기업 현장과 경제 전반에 어떤 파급 효과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정년 연장 조치 외에도 영국은 1999년부터 50세 이상 근로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취업 지원 제도인 뉴딜 50 플러스(New Deal 50 Plus) 정책을 시행하여 고령화에 대응해 왔다.

준고령층 이상에 대한 취업 관련 노하우 컨설팅과 교육·훈련 제공, 각종 비용 지원 및 급여에 대한 세금 공제 혜택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구직자 입장에서는 보다 효과적으로 새 일자리를 찾고 직무 능력을 제고할 수 있는 방법이 이 같은 고용지원 서비스를 통해 생긴 셈이다.

또한 기업들도 탄력 근무제, 시간제 근무 등 비교적 비용 부담이 적고 유연한 형태로 고령층을 고용함으로써 인적 구성 및 연령대 다양화를 꾀할 수 있게 되었다.

독일과 스페인은 67세로 상향 예정

독일은 유럽에서 정년 연장에 대해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이다. 연립 정부는 지난 2005년부터 법정 퇴직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하여 2029년까지 점진적으로 상향하기로 결정했다.

추가적인 정년 연장에 대한 논의가 정치권에서는 아직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있고 이해 당사자간 갈등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사회 전반에서 저출산과 평균수명 연장에 따른 재정 부담을 극복하고 경제성장을 위한 충분한 노동력을 확보하려면 정년의 추가적인 연장 외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음을 비교적 잘 인지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쾰른 경제연구소에서는 정년을 궁극적으로 70세까지 늘려야 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또한 독일에도 영국의 뉴딜 50 플러스와 유사한 이니셔티브 50 플러스(Initiative 50 plus)라는 적극적 고령자 고용정책이 2007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결합임금이라 불리는 임금 보조금 지급, 직업능력 향상 훈련 확대, 고령자들에 대한 고용 여건 정비 등 다양한 세부 정책 수단을 포괄함으로써 맞춤형 서비스를 개개인에게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스페인 정부와 최대 노조인 노동총연맹도 2011년 1월 65세인 근로자의 정년을 67세로 높이는데 합의했다. 향후 2013년부터 2027년까지 단계적으로 퇴직 연령이 조정될 것이다.

그동안 스페인에서는 정년 연장과 연금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2020년 이후 사회보장 체제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2050년에 이르면 고령 인구와 노동 인구의 비율이 거의 같아져 재정지출의 14%에 달하는 금액이 연금으로 지급될 것이라는 파국적 시나리오가 있었다.

이번 개혁 조치가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완전하지는 않지만 사파테로 스페인 총리는 정년 연장을 통해서 유럽연합의 권고와 다른 회원국들의 개혁안에 부합할 수 있게 되었다고 그 취지를 밝혔다.

프랑스에서도 노동계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년 연장을 골자로 하는 연금법 개정을 관철시켰다. 기존 60세였던 퇴직 연령을 순차적으로 4개월씩 늘려 2018년에 62세까지 연장하도록 하고, 연금수급 연령도 65세에서 67세로 높였다.

사실 프랑스 또한 이번 연금법 개정 이전에도 지난 2001년에 근로자 고용 시 나이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하고 50세 이상인 실직자를 채용하는 기업에게 매월 5백 유로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등 고령화에 따른 부작용을 경감시키기 위한 여러 조치를 추진해 왔다.

그러나 노동계가 총파업을 단행하는 가운데서도 정년 연장 조치를 밀어붙인 이유는 이를 통해서만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연금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이 사르코지 정부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조차 2018년 이후에 대한 대비가 없는 미봉책에 불과하며, 대규모 감세에 따른 재정 악화를 노동자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에 여전히 직면하고 있어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유럽의 정년 정책, 연금 개혁과 고령 근로자의 생산성 향상 노력과 연계

이처럼 유럽 국가들은 사회적 갈등을 감수하면서도 정년을 연장하는데 필사적이다. 이들의 정년 관련 정책들을 살펴보면, 국가마다 방식과 개혁의 정도 등에서 분명 차이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공통적인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중 우선 정년 연장 조치가 연금 개혁과 어떤 방식으로든 맞물려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결국 고령화에 따른 국가재정 및 거시경제 상황의 악화에 대한 우려를 완화시키는 수단 중 하나로 정년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청년 고용과의 충돌 등 정년이 연장될 때 나타날 수 있는 일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이를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 고령화에 대비하기 위해 수십 년 이상 연구와 논의를 진행시키면서 중장기적인 관점의 개혁을 진행시켜 왔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물론 아직까지 충분한 정도의 제도적 변화가 이뤄진 것이 아니고, 국가마다 세대 간, 계층 간 갈등 조정 및 치유에 수많은 자원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해관계가 대립하고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년 연장 대상자들의 근로 수명을 물리적으로 늘리는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교육·훈련과 취업 지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함께 가동되고 있다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여기에 고령 근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꿈으로써 고령친화적 사회로 전환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고령화 대국 일본, 정년 연장 외의 조치들은 유럽보다 미흡

고령화 대국 일본의 사례는 어떨까? 일본 또한 지난 2004년 고용안정법 개정을 통해 65세 정년을 의무화하였고 2006년에 발효했다.

근로자가 있는 모든 기업들이 정년 연장, 계속고용(고용계약이 종료된 후 재고용하는 것), 정년 폐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여 2013년까지 단계적으로 65세 정년을 달성해야 한다.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경우 저출산 대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년의 연장 또는 폐지를 통해 장기간 저성장에 빠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재정적자 문제를 완화하려 하고 있다. 이에 따라 65세 정년을 넘어 70세 이상까지 일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임금피크제의 활용 또한 적극적이다. 일본은 1980년대부터 임금피크제 도입을 통해 법적 정년을 초과한 근로자를 계속해서 고용하고 있다.

그러나 근로시간 감소에 따른 소득 부족을 정부가 직접 보전해주는 유럽의 점진적 퇴직제도에 비해, 일본은 지원금과 세제 혜택을 기업에게 주고 있을 뿐 정년이 지난 근로자의 임금 수준 급감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지 못하다.

또 근로자 개개인의 능력 축적이 개별 기업 내에서의 특수한 직업 훈련에 의존해 있는 상황에서 사회 전체적인 차원에서의 일반 직업 훈련이 활성화되어 있지 못한 것도 유럽과의 차이점이다.

또한 일본은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2010년 기준 220%로 유럽에서 재정 상황이 가장 좋지 않은 그리스(142.8%)보다도 심각하다.

다만 발행되는 국채를 대부분 일본 국내에서 소화하고 있다는 점이 차이인데, 향후 고령화에 따라 저축률이 계속 감소하고 일본 내 국채 매입 능력이 줄게 되는 추세에 비춰볼 때, 정년 연장과 연금 개혁 등 재정 안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도에 대한 추가적 조치가 유럽보다 더욱 시급하게 요구되고 있다.

2. 기업들의 연령관리 경영(Age Management)

각국 정부들이 정년 연장이라는 큰 틀의 제도적 변화를 도모하고 있는 것과 더불어 주요 기업들도 고령화를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받아들이면서 좀 더 세부화된 연령관리 경영(Age Management)1을 시도하고 있다.

우선 고객들의 연령층 다양화로 마케팅과 고객만족 차원에서 임직원들의 연령 분포가 다양해질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고령 임직원일수록 충성심이 강하고 이직률이 낮아 채용 및 교육연수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고령 근로자들의 갑작스런 퇴직은 이들의 기술, 지식, 경험, 인적 네트워크까지 한꺼번에 퇴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기업으로서도 큰 손해이다.

상대적으로 젊은 연령대의 생산가능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선 상황에서 ‘나이차면 내보내는’ 기존의 인사관리 관행을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퇴직뿐 아니라 모든 인사 관리에 적용

이미 선구적인 몇몇 기업들은 연령관리 경영을 시작하고 있다. 일차적으로는 사내 고령 근로자들에 대한 조기 퇴직 압력을 줄여줌으로써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고 생산성을 끌어올리는데 그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연령관리 경영은 퇴직뿐 아니라 채용, 교육훈련, 경력개발, 유연근무, 건강증진 등 거의 모든 인사·성과 관리 및 사내 문화·제도에 적용 가능하다. 기업 채용광고 문안에 ‘에너지’, ‘속도’, ‘신선한 사고’ 등 상대적으로 고령이지만 능력 있는 구직자들의 시선을 끌지 못하는 용어 대신 ‘경험’, ‘전문지식’ 등 이들에게 소구력이 훨씬 강한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구체적인 채용절차 상에서도 기발한 상상력과 순발력을 요구하기보다 ‘역할모델’을 수행하거나, 고객응대, 문제해결 능력 등을 살펴보는 시험을 출제하기도 한다.

교육훈련이나 연수 등에서도 모든 연령대 임직원들이 적절한 기회를 공유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 조직 전체의 생산성을 극대화시키려는 기업도 있다. 특히 일부 직종에서는 현장경험과 지식이 체화된 고령 임직원들의 인적 자산을 회사 자산으로 옮기는 프로그램을 가동하기도 한다.

유연한 근무와 단계적 퇴직, 연금제와의 조화가 숙제

업태에 따라 적용가능성에 차이가 있겠지만, 고령 임직원들에 맞는 유연한 업무 환경(flexible working)을 조성하는 곳도 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임직원들은 업무 외에도 가족 대소사, 레저 활동 등 챙기고 싶은 것들이 많아진다. 이 같은 욕구에 맞춰 근무시간과 장소, 임금을 조정하는 것이다. 일자리 나누기(Job-Sharing), 재택근무, 집중근무, 파트타임 근로 등이 이에 해당된다.

기업 입장에서도 인건비 부담을 크게 늘리지 않으면서 기존의 인적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유연한 업무가 조직 내에서 인사관리상 불이익으로 작용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유연 근무제가 주부사원 등에게 국한돼 허용되거나, 실제 유연 근무자가 승진 등에서 불이익을 받는 사례가 빈번한 것으로 나타나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유연 근무제는 종국적으로 유연한 퇴직, 즉 단계적 퇴직(phased retirement)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된다. 정년은 일과 휴식, 레저를 특정시기에 ‘칼로 자르듯’ 단절시키는 행위이다.

그러나 실제 고령 근로자들의 경우 이 같은 단절보다는 근무시간 조정 등을 통해 점진적으로 일과 레저, 휴식을 배분하려는 동기가 강하다. 신체 능력에 맞춰 근로와 휴식시간을 적절히 나누고 임금을 이에 맞춰 조정함으로써 갑작스럽게 항구적으로 근로 현장에서 퇴장시키는 관행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퇴직 후 받게 될 연금의 산정 기준이 대개 퇴직 직전의 급여수준에 연동돼 있거나, 퇴직 이후 정해진 근로시간을 넘어서 근무할 경우 연금 수령액이 줄어들 수 있다.

이 때문에 퇴직 직전까지 무리를 해서라도 정규 근무시간을 다 채우거나, 퇴직 후 재취업을 망설이는 사례가 생겨난다. 따라서 이러한 유연 근무 및 퇴직 시스템과 연금제도와의 조화는 향후 주요국들의 중요한 숙제가 될 전망이다.

선진국 고객 상대하는 글로벌 기업일수록 연령관리 중요성 더욱 높아

해외 시장, 특히 선진국을 무대로 활동하는 글로벌 기업일수록 연령 관리의 필요성이 더욱 높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선진국들은 대부분 고령화에 따른 연금재정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연금지급 시기를 늦추는 대신 정년을 늦추거나 철폐하고 있다. 미국은 1986년 거의 모든 직군에서 연령에 따른 강제퇴직을 완전 철폐하였으며, 유럽연합도 나이 등을 이유로 차별을 금지하는 법규를 보유하고 있어 회원국들이 관련 입법을 이미 마쳤거나 서두르고 있다.

이러한 법규에 근거하여 미국의 한 가전업체는 1999년 지역별 영업책임자인 50대 직원 8명의 보직을 낮췄다는 이유로 2004년 7월 미 평등고용위원회로부터 제소를 당한 바 있다.

위원회측은 “회사가 컴퓨터를 활용한 새로운 판촉 기법에 50대 책임자들이 적응하기 어려울 것으로 지레짐작해 이 같은 부당한 조치를 내렸다”고 주장하였다.

아일랜드의 한 항공사 또한 2001년 신규직원 채용공고를 내면서 ‘젊고 역동적인’이라는 문구를 삽입했다가 벌금을 내고 대중매체를 상대로 향후 채용관행을 고치겠다고 약속해야 했다. 해외 시장의 고객 기반에 맞춰 현지법인의 연령 구성을 다양하게 유지해 고객친화적인 경영을 펼쳐야 하는 것은 이제 기본이 되었으며, 그 외에도 연령을 빌미로 하는 고용 차별 행위가 소송 사태를 불러옴으로써 기업 경영에 큰 위협이 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

3. 시사점

우리나라의경우는 아직 법정 정년제도 조차 도입되어 있지 않다. 공무원들만 60세로 설정되어 있을 뿐 노사정위원회의 다년간에 걸친 노력에도 불구하고 민간 기업의 정년은 아직 제도화되지 못하였다.

선진국들이 이미 도입된 법정 정년의 연장 및 폐지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는 것에 비하면 우리의 고령화 대비는 너무도 미흡한 상황이다. 고용노동부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민간 기업들의 규정상 평균 정년 연령은 57세이지만 실제로 은퇴하는 나이는 53~54세인 것으로 나타난다.

정리해고나 명예퇴직 등으로 40대에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임금피크제 또한 제대로 정착된 곳이 거의 없다. 2003년 이후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공공기관은 30여 곳에 이르지만 정부의 지원이 미흡하고 파행적으로 운영되면서 다시 폐지한 곳도 있다.

고령화의 속도나 재정에 대한 우려를 감안하면 정년 도입 및 연장 논의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의제 중 하나이다.

물론 정년 연장이 만병통치약은 아닐 것이다. 정규직의 정년만 논의 대상에 포함시키는 경우 비정규직의 소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며, 청년 실업이 심각한 상황에서 고령층의 일자리 보장이 자칫 젊은 세대의 일자리를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기업들이 당장 부담해야 하는 추가적인 인건비도 걱정이다. 따라서 정년이라는 이슈를 다룰 때 가급적 모든 근로자들을 논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며, 청년층과 고령층의 일자리가 상충되는 분야가 있다면 어떠한 추가적 대책이 필요할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또한 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직간접적 지원 방안 또한 긴요하다. 정년이 확보되거나 연장되고 정부 재정에 숨통이 트인다면, 고령층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교육·훈련과 청년 실업 해소, 비정규직 지원 등에 가용 자원을 좀 더 동원할 수 있을 것이다.

정년 하나만을 고려하기보다 경제 전체 관점에서 총체적, 포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좀 더 줄일 수 있는 방안이다.

고령화의 문제는 결국 고령 세대가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줌으로써 해결할 수밖에 없다. 의료 기술의 발달로 지금의 60대와 20년 뒤의 60대가 똑같을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평균수명이 40대에 불과했던 비스마르크 시대의 정년수준을 100년 넘게 유지하고 있다.

일을 할 수 있는 나이와 은퇴 연령 간의 격차가 커진 만큼 퇴직자들의 고통과 사회 전체의 고령자 부양 부담이 늘어난 셈이다. 그러나 이제 나이를 이유로 근로 현장에서 차별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여러 부작용의 가능성을 토론과 합의를 통해 조정하는 가운데, 경제 전체 차원에서 충분한 생산가능인구를 확보하여 경제의 역동성을 지속하고 개인적 차원에서 노후의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젊은’ 노인들이 원하는 경우 제약 없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