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줌인] 기준 모호한 '정당방위', 판사 재량에 '그때그때 달라요'
[뉴스줌인] 기준 모호한 '정당방위', 판사 재량에 '그때그때 달라요'
  • 이성진 기자
  • 승인 2016.05.25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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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한 사건이지만 전혀 다른 판결, 해외도 정당방위 기준 까다롭기는 마찬가지

A씨는 자신의 집에 침입한 도둑 B씨를 발견하고는 놀란 마음에 주위에 있던 빨래 건조대를 들고 B씨 때렸다. 머리를 맞은 B씨는 뇌사 상태에 빠져 결국 숨졌으며, A씨는 '폭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14년 3월 실제 발생한 이 사건은 '정당방위'의 기준을 두고 여론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가운데, 지난 12일 대법원은 A씨에게 징역 1년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의 이같은 결정으로 인해 일각에서는 '정당방위로 보기에는 지나쳤다'는 반응과 '사망은 안타깝지만 애초에 남의 집에 침입한 것이 잘못'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지만, 현행법에는 정당방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명확한 기준 없는 정당방위
결국 판단은 판사가

형법에 따르면 정당방위란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로, 상당한 이유가 있을때 벌을 받지 않고, 방위행위의 정도가 지나칠 때는 형을 감경·면제받을 수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현재 형법에 명시된 정당방위 기준이 '최선의 조치'라고 주장하지만, 여기서 '상당한 이유'라는 것은 결국 재판부의 재량에 따르게 된다.

대법원 한 관계자는 데일리팝과의 통화에서 "정당방위와 관련된 판례가 굉장히 많고, 상당한 이유라는 것은 그 판례에 따라 결정하는 판사의 고유 권한"이라고 전했다.

▲ 지난해 '공릉동 주택가 살인사건' 수사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는 장벽덕 형사과장 ⓒ 뉴시스

앞선 사례와 다소 유사한 상황이지만 전혀 다른 판결을 받은 사건이 있다. 자신의 집에 침입해 방에서 자고 있던 예비신부를 살해한 군인 D씨를 칼로 찔러 숨지게 한, 이른바 '공릉동 살인사건'으로 입건된 집주인 C씨는 정당방위를 인정받았다.

당시 경찰은 C씨에 대해 "정당방위의 제1 요건인 자신과 타인의 법익에 대한 부당한 침해를 받은 경우로 인정된다"며 "C씨가 D씨를 흉기로 찌르는 행위 외에 당장 닥친 위험을 제거할 다른 방법을 찾을 여유가 없었다는 점이 사회 통념상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새벽 시간의 불안한 상황에서 공포·경악·흥분 또는 당황 등으로 인한 행위로 볼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A씨와 C씨의 사건은 얼추 비슷해 보이지만, C씨의 경우 눈앞에서 자신의 예비신부가 살해당했을 뿐만 아니라 D씨가 만취상태였기 때문에 자신도 위협받을 수 있었지만, A씨의 경우 도망가려던 B씨를 끝까지 때려 숨지게 한 것이다.

사건의 성격은 다르지만 경찰 내에서 적용되는 '폭력사건 수사지침'에 따르면 정당방위는 ▲방위 행위일 것 ▲먼저 도발하지 않을 것 ▲먼저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것 ▲가해자보다 더 심하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것 ▲흉기나 위험한 물건 사용하지 않을 것 ▲상대가 때리는 것을 그친 뒤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것 ▲상대의 피해가 본인보다 심하지 않을 것 ▲전치 3주 이상 상해를 입히지 않아야 할 것 등의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이같은 기준으로 인해 취객에게 먼저 공격을 당하고도 행여나 불이익을 당할까봐 반격을 하지 않는 이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경찰청 관계자에 따르면 이 기준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모든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 것도 아니며 정당방위의 해석단계일 뿐 이후 재판과정에서 변경될 수 있는 사항들이다.

경찰청 한 관계자는 "살해사건의 경우 형법에 명시된 정당방위가 적용되며, 대법원 판례에 따라 정당방위 인정 여부가 결정된다"고 밝혔다.

해외서도 까다로운 정당방위

해외에서도 정당방위에 대한 기준은 까다롭기 마찬가지다.

영국의 경우 보통법에 따라 필요 이상의 물리력을 행사해 상대방이 사망했을 경우 정당방위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자택에 침입한 타인이 집주인에게 과격한 폭력을 당하자 이를 방어한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한 판례도 있다.

일본도 '어쩔 수 없이 취한 행위'라는 문구로 정당방위를 규정하고 있다. 위험성이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침해에 대항한 반격행위로 인해 중대한 결과가 초래됐다면 정당방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예컨대 일본 법원은 맨손 폭행을 당했을 때 흉기로 상대방을 살해한 경우 정당방위가 아니라고 본다.

독일은 사망자를 예상할 수 있을 때, 폭력을 통한 방위행위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고 인정될 경우 정당방위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또 경미한 법익을 보호하려고 사람을 살해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시하는 등 정당방위의 요건을 제한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경우 아이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여성이 자신의 집 문을 부수고 들어온 남성 2명 중 한명에게 총을 쏴 현장에서 사살했지만, 정당방위 판정을 받았다. 오히려 살해당한 남성의 일행이 1급 살인혐의로 기소됐다. 가택침입을 해서 친구가 사살 당하게 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정당방위는 특수한 행위인 만큼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유사한 사건이라도 이처럼 전혀 다른 판결이 뒤따를 수 있다.

오히려 명확한 기준 마련이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면서 정당방위의 인정 범위에 대한 논란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데일리팝=이성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