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조, "한국 선수 정신무장 다시해야"
황영조, "한국 선수 정신무장 다시해야"
  • 김용남 기자
  • 승인 2012.01.06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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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마라톤 금메달 20주년 맞은 황영조

1992년 8월 9일 몬주익 스타디움을 2.195km를 남긴 몬주익 언덕.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지막 날 열린 마라톤 경기에서 황영조는 우승 후보인 일본의 모리시타 고이치와 40km 내내 엎치락뒤치락 했다.

함께 출발한 김재룡, 김완기 등 72개국 112명의 선수들은 33km지점을 통과하면서 이미 보이지 않았다.

이 때부터 사실상 한·일전이었다. 이 날은 공교롭게도 고(故) 손기정 옹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뛴 날과 같은 날이기도 했다.

두 선수가 몬주익 언덕에 올랐을 때 황영조는 '여기서 견디는 놈이 이긴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언덕을 내려가며 속도를 높였다.

모리시타와의 간격은 점점 벌어졌고 황영조가 가장 먼저 몬주익 스타디움에 들어섰다.

황영조는 두 팔을 높이 들고 결승점을 통과했다.

8만여 관중과 한국에서 TV를 보며 응원하던 전 국민은 환호와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고 손기정 옹과 한국의 한은 56년만에 풀렸다. 

올해로 황영조가 올림픽 금메달을 딴지 20년이 됐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열리던 해 태어난 아이들은 어느덧 대학생이 됐다. 황영조 역시 불혹의 나이를 넘었다.

그러나 마라톤에 대한 열정은 더욱 뜨겁다.

▲ 황영조 감독 ⓒ뉴스1

한창 신혼의 단꿈을 꿔야할 때 강릉과 제주를 오가며 국민체육진흥공단 선수들을 담금질하고 있는 황영조 감독(42)을 뉴스1이 만났다.

자연스레 오는 7월 영국 런던에서 열릴 올림픽 마라톤에서 메달을 노릴 수 있을지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황 감독은 "가까운 일본부터 최근 마라톤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케냐와 에디오피아, 모로코 등 아프리카 선수 까지 넘어야할 산이 많다"면서도 "하지만 선수는 항상 희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열심히 뛰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내가 올림픽 금메달을 딸 때 이를 예상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고 김연아와 박태환 같은 선수 역시 어느날 갑자기 등장했다"며 "한국은 저력이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뛰어난 선수를 만난다면 일어설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 속에서 후배들에 대한 기대와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났다.

황 감독은 "예전에 비해 대회도 많아지고 상금도 많아졌다. (마라톤 실업)팀도 많아졌다. 어느 정도 성적만 거두면 먹고 살 수 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세계 탑 클래스 수준의 선수를 기대하고 보고싶어 한다"고 한국의 마라톤 환경을 설명했다.

또 "지난해 대구에서 열렸던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2시간 9분대를 뛰는 선수가 출전하면서 기대를 많이 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이 때문에 황 감독은 시선을 해외로 돌리고 있다.

최근 마라톤 대회가 열릴 때마다 아프리카 선수들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이들을 한국으로 불러들여 국내 선수들이 이들과 어릴 때부터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국내 중·고, 대학 육상부와 마라톤 실업팀에 '해외 용병' 개념을 도입하자는 주장이다.

황 감독은 "국내에 이미 여러 팀이 있으니 아프리카 등 외국 출신 선수들을 팀에서 데려 오고 일정 게임을 뛰게 해야 한다. 이 같은 방식으로 페이스 메이커, 훈련 파트너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량이 뛰어난 외국 선수들을 가까이 두고 경쟁함으로써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깨닫고 이 선수를 뛰어넘어야만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느껴야 한다"며 "국내에서 1등만 하면 만족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현 주소를 알고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국내 선수들이 '정신 무장'을 다시 해야 한다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마라톤 등 한국 육상의 저변은 많이 확대됐는데 후배들의 정신력이 부족하다"며 "마라톤은 헝그리 스포츠"라고 설명했다.

"세계 마라톤의 양대 산맥인 케냐와 에디오피아 선수들은 지금도 옥수수 가루를 갈아 물에 넣고 죽처럼 만든 음식만 먹고 달린다"며 "우리는 밤에 치킨을 주식이 아닌 간식으로 먹는 상황인데도 훈련량이 오히려 부족하다"고 비교했다.

황 감독은 훈련 여건이 열악한 해외 선수들을 한국으로 불러 함께 훈련하는 등 국제 스포츠 교류에도 앞장서고 있다.

오는 20일부터 제주도에서 시작되는 국민체육진흥공단 동계 전지 훈련에는 처음으로 몽골 선수 2명이 참가한다.

겨울이면 영하 45~50도까지 기온이 떨어지는 기후 때문에 마음이 있어도 달리지 못하는 몽골 유망주를 위한 황 감독의 배려이고 한·몽 스포츠 교류 차원의 지원이다.

황 감독은 "예전에 몽골 초원에서 팀 후배들을 데리고 훈련을 한 적이 있다. 포장되지 않은 길에서 뛰는 것이 너무 좋았고 그 인연으로 지금은 몽골 체육학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수 천달러 규모의 지원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몽골 꿈나무 2명을 초청해 한국 선수들과 함께 전지훈련을 한 뒤 봄부터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참가시킬 예정"이라며 "몽골은 마라톤 대회조차 없는 나라인데 이 선수들은 마라토너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고 그들의 '헝그리 정신'을 높이 샀다.

황 감독은 지난해 12월 결혼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직 신혼의 단꿈에 빠져 있을 시기지만 후배들을 훈련시키느라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지 않다.

이 때문인지 아직 '좋은 소식'은 없다.

앞으로 태어날 황 감독의 자녀가 마라톤에 대한 열정과 소질을 물려받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황 감독은 "나는 운동선수가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좋아서 한다면 시킬 것"이라는 답이 망설임 없이 돌아왔다.

"물론 운동선수가 힘들긴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다 힘드니 어차피 극복해야 한다. 돈을 많이 준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출처=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