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韓日 무역전쟁②: 예상을 뛰어넘는 안보차원의 전략물자 규제의 새로운 국면
[기고] 韓日 무역전쟁②: 예상을 뛰어넘는 안보차원의 전략물자 규제의 새로운 국면
  • 김도형 한림대학교 일본학과 겸임교수
  • 승인 2019.08.0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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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일반이사회에 참석한 김승호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 (사진=뉴시스)
WTO 일반이사회에 참석한 김승호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 (사진=뉴시스)

 

규제 당시에는 분명 강제징용 배상 판결 후의 제3국 중재위 안에 대한 압력 차원의 경제제재 혹은 대한 경제보복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일본정부는 한국에 대한 신뢰기반이 의심되어 수출관리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의아스럽고도 모호한 논리를 전개했다. 한국 산업자원부 소관 전략물자 관리 위법사례를 제시하며 이들 3개 전략물자 관리가 소홀한 틈을 타 적성국가로 부품소재가 유출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을 공식화하는 데는 며칠 걸리지 않았다. 그 직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수출규제에 따른 국내기업의 대응을 점검하고 WTO 제소를 내비치며 해당 소재의 수입선 다변화, 국산화 등 그 효과가 매우 불확실한 소극적 대응에 급급했다.    

그러나 일본이 추가 수출제재에 나설 경우 상황은 급변할 수 있다. 우리기업이 장기전에 대비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동시에 한국은 WTO 상품무역이사회에 일본의 일방적 수출제한을 긴급안건으로 상정하여 회원국에 무역규제의 부당성을 널리 알리는 한편 관련 국내기업의 피해 최소화를 위해 민관공동 대응체제를 구축하려는 모양세이다.

일본은 반도체 강국의 대표적 기업을 견제하며 한국의 중간재를 수입하는 화웨이 등 대중 대북 제재라고 하는 이른바 미국과의 공조체제에 동참하는 한편 강제징용자 피해보상 문제 해결을 위한 제3국 중재위안 수용에 압력을 행사하려는 다목적의 전략적 의도를 분명히 들러내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줄기차게 해당 소재의 행선지가 모호하며 북한유출을 사전에 방지한다는 안보상의 이유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경제보복은 아니며 자국의 엄연한 권리인 엄정한 수출관리 차원임을 강변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번 수출규제 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우리의 대응도 경제제재와는 다른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2016. 1~ 2019. 3월까지 우리정부의 「전략물자 무허가 수출 적발현황」자료에 의하면 행정처분(적발)된 대량살상무기로 전용 가능한 전략물자의 불법 수출 사례는 142건, 이 중 68건이 생물화학(BC)병기 관련 물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부정수출 대상기업의 형사사건 대상여부와 개별기업명도 불명인데다 처벌과 처분 운용이 솜방망이 식이라 부정수출이 끊이지 않는 것이 아닌지라는 주장이다.

BC 병기는 제조코스트 면에서 「가난한 자의 핵병기」로서 테러조직·국가로의 확산 방지는 세계적 과제가 되고 있다. 일본정부는 물론 우리정부도 중차대한 과제로 여겨 왔고 그만큼 관리도 철저했다. 그러나 일본은 우리의 관리 실태가 철저하지 못하다고 의심을 보내고 있으므로 이번 사태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신속하게 대응해야 할 과제이다. 물자의 사양, 수출입 시기 등에 관해 상대방이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충분히 설명하여 의혹을 제거해야 한다. 여기에 친일이니 반일이니 정치적 대응으로 시종해서는 안 된다.

특히 BC 병기관련은 VX(有機燐系 치사성 신경가스)의 원료인 디이소프로피라민(Diisopropylamine), 사린가스의 원료인 불소화나토륨(sodium fluoride) , 청산가스원료인 청산화나토륨(sodium cyanide), 바이러스 병기연구에 이용하는 조류 인플루엔저(Avian influenza)등의 물질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 외 BC 병기 연구제조에 전용 가능한 열교환기, 원심분리기, 가열관, 벌브 등 광범한 물질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러한 물자가 북한과 우호관계에 있는 이란, 시리아, 파키스탄 등으로 유통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BC 병기는 핵병기에 비해 재료입수, 제조가 용이하고 살상효과가 일정시간 지속되기 때문에 병사나 시민을 위축시키는 효과가 크다.

1995년 동경지하철 사린살포로 6천여명의 사상자를 낸 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사건을 떠 올리는 것만으로 일본인에게는 정신적 피해를 안겨주는 사안이다. 여기에 아베정권의 이달 참의원 선거를 위한 보수진영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포석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도를 넘는 일방적이고 무모한 대응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VX와 같은 민감분야에 대한 일본측의 과장된  행위는 자제되어야 하며 그럴수록 양자간 진지한 대화와 대응이 요구된다.

일본 역시 '나가노 주식회사'가 2003년 대만에 핵무기 동위원소 분리에 사용되는 진공 펌프를 대만 경유 북한에 반출한 것과 관련해 '경고' 조치를 내린 바 있다. 관련제품이 2007년 IAEA 영변핵사찰시 발견되어 실제 북한 핵 개발에 사용된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최근 한국 야당 의원도 일본측 자료에 의거하여 1996~2013년 일본은 대북 부정 수출이 적발되었다는 지적을 한 바 있다. 그렇지 않아도 재일조총련 조직을 통해 관련 부품과 자금이 북한으로 들어간 정황이 자주 적발, 국내법 제재를 받곤 해 왔다.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한국은 WTO 상품무역이사회의 장을 이용하여 일본의 일방적 제재가 무역활동을 왜곡하고 있으므로 철회를, 일본은 안전보장 상 수출관리를 적절하게 강화할 목적으로 수출절차 간소화를 인정해 온 한국에 대한 우대조치를 통상의 수준으로 되돌린 조치일 뿐 결코 징용공 보상 판결과 가해기업의 자산 현금화 조치에 대한 경제보복은 아니라며 쌍방 대결하고 있다.   이에 한국은 사실상 일방적 경제제재가 WTO 협정 위반이라며 WTO 제소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일본은 군사전용이 가능한 물자의 수출관리는 모든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며 병기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이를 적정하게 운용할 국제적 의무를 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국은 지금까지는 북한에 관련물자가 유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도운영상 우대를 부여해 왔다. 그러나 이제 국제 룰(한일협정 및 위안부 합의 등)은 물론 동해상의 7개 다국적군에 의한 유엔 제재에 한국군이 참여하지 않고 있으며 중국과 러시아 비호아래 안보리가 제한 한 연간수입량(2017. 12월) 50만 바렐을 초과하는 석유정제품의 북한선박 환적이 일어나고 있다. 이와 같이 양국간 신뢰기반은 물론 유엔의 대북제재가 허울뿐인 상황에서 한국 우대는 거두어들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강변한다. 병기로 전용 가능한 품목규제도 불충분하고 수출관리 담당직원이 부족한 한국에 대해 제도운영을 개선하라고 촉구해 왔지만 3년 이상 당국간 의견교환 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으로서는 우선 일본은 물론 자유주의 국제사회가 신뢰할 수 있는 전략물자 수출관리체제를 강화하는 한편 현재와 같은 대북편향적인 군사안보체제를 정상수준으로 되돌리는 것이 급선무이다. 동시에 일본도 수출규제 철회를 위한 양자협의와 BC병기 관련 물자를 규제대상으로 하고 있는 국제적 확산방지 프레임인 오스트랄리아 그룹(AG) 규제 등에 관한 다자간 협의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측의 WTO 이사회를 통한 규제의 부당성 호소와 일본이 제기한 전략물자 불법유출 의혹에 관해 상호검증하고 안보리 전문가 패널이나 국제기관에 조사 의뢰하고 혐의 여부를 가려 양국이 합당한 책임을 지자는 제안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양국 정부간 실무협의를 위한 설명회에서 조차 규제철회 요청 진위를 둘러싸고 이견이 충돌하고 있어 수출규제를 둘러싼 양국간 갈등은 장기화할 전망이다.

 

김도형 한림대학교 일본학과 겸임교수

※ 이 기사는 본지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