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이거 아니?] 여성의 우아함을 실체화한 브랜드, '크리스챤 디올(Dior)'
[브랜드 이거 아니?] 여성의 우아함을 실체화한 브랜드, '크리스챤 디올(Dior)'
  • 이지원
  • 승인 2020.07.13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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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여성들은 군복과 같이 딱딱하고 절제된 옷만을 입어야 했다. 전쟁 이후에도 파리의 패션은 새로운 트렌드 없이 밋밋하기만 했으며, 여성들은 돈을 벌기 위해 공장 유니폼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때 "여성이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며 여성을 겨냥한 '패션을 선보인 브랜드가 있다. 타고난 예술적인 감각으로 프랑스 패션의 유행을 주도하며, 프랑스를 대표하는 패션 브랜드가 된 '크리스챤 디올(Christian Dior)'을 소개한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패션 브랜드, '크리스챤 디올(Christian Dior)'

크리스챤 디올은 1905년, 프랑스 서부 노르망디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사업가인 아버지와 패션에 관심이 많던 귀부인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디올은 어릴 때부터 예술적인 감성을 키우며 성장했으며, 부모님의 뜻에 따라 정치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본래 건축과 예술에 더욱 깊은 흥미를 갖고 있던 디올은 학업을 미뤄두고 예술가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기도 했다. 이에 아버지로부터 지원을 받아 파리에 소규모 아트 갤러리를 열며 피카소의 작품을 전시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 

이렇듯 유복한 생활을 보냈던 디올이지만, 영원한 행복은 없었다. 1931년 찾아온 전세계적인 공황으로 인한 아버지의 파산과 어머니와 형의 죽음까지 이어지며 악재가 겹친 것이다. 이로 인해 디올은 갤러리는 물론 디올 가에서 소유하고 있던 재산의 대부분이 모두 팔려나갔다. 

정원에 선 크리스챤 디올의 모습 (사진=디올 공식 홈페이지에서 캡처)

어려운 시기에 생활비를 마련하고자 디올은 친구에게 패션 드로잉을 배우고 색칠하는 법을 배운 뒤 드로잉 그림 한 장에 10센트를 받고 팔며 생활비를 벌었다. 그림 중 일부는 프랑스의 유명 일간지 '르 피가로(Le Figaro)'에 실리기도 할 만큼 전문가들의 눈에 들기도 했다. 이것이 곧 디올이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길로 걸어갈 수 있었던 첫걸음이었다. 

이후 1938년, 크리스챤 디올은 프리랜서의 삶을 청산하고 디자이너 로베르 피게(Robert Piguet)의 회사에 입사하며 디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공부하게 됐으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입대하고 남부 프랑스에서 근무해야 했다. 이후 1941년, 파리에 다시 돌아온 디올은 디자이너 부티크에서 일하게 된다. 

이때 디올이 입사한 곳은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 컬렉션의 단가를 낮춰 오트 쿠튀르를 대중화했다며 극찬 받는 프랑스 디자이너 뤼시앵 를롱(Lucien Lelong)의 부티크로, 41세가 되는 해까지 이곳에서 일하며 디자인의 실력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뤼시앵 를롱의 부티크에서 일하며 파리 패션계에 이름을 알린 디올은 1946년, 마침내 섬유업계의 재력가 마르셀 부싹(Marcel Boussac)의 투자를 받으며 자신의 부티크를 차릴 기회를 얻게 된다. 파리 몽테뉴 거리 30번지에 자리한 작은 부티크는 곧 브랜드 크리스챤 디올의 시작점이 됐다. 

프랑스 패션에 한 획을 그은 디올의 '뉴 룩'

1947년 열린 크리스챤 디올의 첫 오트 쿠튀르는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디올은 "나는 여성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며 부드러운 곡선과 풍성한 스커트 자락을 연출해 여성미를 극대화시킨 작품들을 선보였다. 전쟁 이후 어둡고 경직돼 있던 옷들 사이에서 디올의 옷은 단번에 눈에 띄었으며, 그의 명성에 이끌려 부티크를 찾은 수많은 기자와 관객에게 극찬을 받았다. 

로맨틱한 분위기를 강조한 디올의 옷은 당시 전쟁기간 동안 옷을 배급받아 입어야 했던 프랑스의 여성들 사이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러한 패션은 당시 잡지 '하퍼스 바자'의 편집장이었던 카멜 스노우(Carmel Snow)에 의해 '뉴 룩(New Look)'이라는 이름으로 붙여져 보도되며 디올은 단숨에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로 등극할 수 있었다.

디올은 곡선을 살리기 위해 샤넬이 없앴던 코르셋과 패티코트를 다시 부활시켰다. 최고급의 원단만을 사용하면서도 풍성한 실루엣을 살리기 위해 많은 옷감을 사용해 가격 또한 엄청났다. 이 때문에 "몸매를 억압하고 사치를 조장한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샤넬의 창립자 코코샤넬 역시 "여성에 대해 잘 모르는 남성들이나 저런 불편한 옷을 디자인 할 수 있다"고 비꼬기도 했다. 

뉴 룩은 70년이 지난 지금도 디올하우스에 영감을 주고 있다. (사진=디올 공식 홈페이지에서 캡처)

하지만 디올은 뉴 룩으로 인해 밋밋했던 파리 패션계를 이끌 수 있는 리더의 자리에 오르게 됐다.

더불어 전쟁 이후 다시금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여성들의 욕망과 이를 충족시켜 줄 로맨틱한 의상은 당대 시대 상황과 정확히 맞아 떨어지며 많은 사랑을 받은 것 역시 사실이다. 이렇듯 뉴 룩은 파리를 세계적인 패션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그 후 디올은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면서도 여성스러운 선을 살리는 특유의 우아함은 잃지 않았다. 자연스레 디올의 인기는 해외까지 뻗어나가며 영화계와 왕가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다. 

뉴 룩을 처음 선보인 지 약 70년 가량이 흐른 현재에 들어서도 디올의 뉴 룩 정신은 여전히 디올하우스에 영감을 주고 있으며, 이러한 디올의 고집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스 디올의 초기 디자인 (사진=크리스챤 디올 공식 홈페이지에서 캡처)
미스 디올의 초기 디자인 (사진=크리스챤 디올 공식 홈페이지에서 캡처)

"사랑의 향을 지닌 향수를 만들어 주세요"

디올의 욕심은 패션에서 그치지 않았다. "향기가 패션을 완성한다"고 믿었던 디올은 여성의 우아함과 자신의 뉴 룩이 조화를 이룬 향을 만들고 싶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이에 1947년, 디올은 부티크 설립과 동시에 '퍼퓸 크리스챤 디올'을 설립하고 향수 '미스 디올(Miss Dior)'을 발표했다. 

그는 첫 패션쇼를 준비하며 조향사에게 '사랑의 느낌을 담은 향기'를 부탁했다. 이어 완성된 향수를 패션쇼가 진행될 부티크 전체에 뿌리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초기의 미스 디올은 드레스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모던한 디자인과 골드, 수공예 크리스털로 장식됐다. 200개 한정으로만 판매된 향수는 여성들에게 기존의 향수 개념에서 한층 확장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패션을 담은 향수'라는 새로운 개념을 심어 주기도 했다. 미스 디올이 우리에게 친숙한 모양으로 변모한 것은 1950년에 접어들었을 때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직사각형 보틀과 우아한 리본 장식은 미스 디올의 오랜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미스 디올 이후에도 다양한 향수들을 출시하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그 중에서도 1966년 출시된 남성용 향수 '오 소바쥬(Eau Sauvage)'와 1985년 출시된 '쁘와종(Poison)', 1999년 발표된 '쟈도르(J'adore)' 등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디올은 향수뿐만 아니라 여성의 아름다움을 위해 립스틱을 필두로 메이크업 제품까지 손을 뻗었으며, 현재는 스킨케어 시장에서도 굳건한 매니아층을 마련한 상태다.

디올의 첫 번째 립스틱 루즈 디올
디올의 첫 번째 립스틱, 루즈 디올 (사진=디올 공식 홈페이지에서 캡처)

1953년에는 디올의 첫 번째 립스틱 '루즈 디올'을 선보였다. 루즈 디올은 드레스 소재를 립스틱에 그대로 옮겨놓은 8개의 컬러로 만든 것으로, 모든 여성에게는 옷처럼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컬러가 있다는 점에서 착안해 만들어졌다.

한편 크리스챤 디올은 자신의 이름으로 된 패션 브랜드를 론칭함과 동시에 '라이선스 개념'을 도입하기도 했다. 자신의 이름을 빌려주고, 그 대가를 받는 것이다.

이를 통해 크리스챤 디올은 향수, 모피, 스타킹, 넥타이, 스카프, 란제리 등의 제조업자들에게 크리스챤 디올의 이름을 새겨 넣을 수 있는 권리를 팔았다.

오트 쿠튀르 조합은 이것이 "프랑스의 럭셔리 이미지를 깎아 내리는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지만, 크리스챤 디올의 라이선스 사업은 매우 성공적이었으며, 향후에는 다른 오트 쿠튀르 하우스에서도 이러한 라이선스 사업을 따라하기에 이르렀다.

1957년, 52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크리스챤 디올의 명성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 그가 출시했던 H 라인, A 라인, Y 라인 등의 '알파벳 라인'은 현재까지도 이어지며 패션 업계의 중심이 되고 있다.


(데일리팝=이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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