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대출자, 이자만 내는 77%…'경제 화약고'
주택대출자, 이자만 내는 77%…'경제 화약고'
  • 정도민 기자
  • 승인 2012.06.28 15: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택담보대출이 한국 경제의 `화약고‘로 등장할까?

주택대출 연체율이 지난달 5년 7개월만에 최고치를 찍은 가운데, 원금 상환은 뒤로 한 채 이자만 내는 사람이 80%에 육박했다.

당장 내년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주택대출 규모가 무려 128조원에 이른다.

◇주택대출자 77% 이자만 납부…‘연체대란’ 예고
금융감독원은 28일 5월 말 국내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이 0.85%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한달새 0.06%p 뛴 것으로 2006년 10월의 0.94% 이후 5년7개월만에 최고치다

지난해 12월 0.61%에서 5개월 연속 상승행진을 벌이고 있어 1% 돌파는 이제 시간문제로 남았다.

집값은 곤두박질치는데 세계 경기침체로 수입까지 뚝 떨어지면서 주택대출 연체율은 이미 금융위기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다.

2009년 2월 주택대출 연체율은 0.69%이었다.

빚을 제때 못갚는다는 것도 걱정이지만 더 큰 문제는 가계 파산, 금융권 부실로 연결될 ‘시한폭탄’ 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는 점이다.

금감원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306조5천억원의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원금을 갚지 않고 이자만 내는 대출이 76.8%, 235조 4천억원에 이른다.

120조2000억원(39.2%)은 분할상환 대출이지만 원금 상환시기가 아직 남아 있는 대출이다.

나머지 115조2000억원(37.6%)은 만기에 원금을 한꺼번에 갚아야 하는 일시상환 대출이다.

또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내년까지 거치기간이 끝나거나 대출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은 128조원, 42%에 달한다.

절반 가까운 주택대출자의 원금상환 시기가 임박한 셈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강건너 불구경이다.

일시상환대출은 금융기관이 대부분 만기 연장을 해주는데다 거치기간이 끝나 원금을 갚아야 하는 대출도 10~20년 짜리 장기 분할상환이 대부분이어서 가계에 큰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민간 연구소의 판단은 다르다.

KB금융경영연구소가 통계청의 `2011년 가계금융조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자만 내던 가구가 원금을 갚기 시작할 경우, 수입 가운데 원리금 상환으로 나가는 비율이 평균 49.1%에 달한다.

버는 돈의 절반을 빚 갚는데 써야 한다는 뜻이다.

◇부동산 침체에 수입까지 반토막·...주택대출 답이 없다
주택대출문제가 악화일로를 걷게 된 것은 부동산경기 침체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빚을 얻어서 집을 장만한뒤 벌어서 천천히 갚아나가면 된다‘ 또는 ’집값은 계속 뛴다“ 는 부동산 대마불사의 안일한 생각속에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부동산 경기가 최소한 물가 상승률 이상 정도만 유지해주면 정부가 가계빚 문제를 연착륙 시킬수도 있지만 꽁꽁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은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다.

국민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전국 주택가격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의 주택매매가격은 제자리걸음을 했다.

전국 기준으로는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전월과 비교해 변화가 없거나 소폭으로 상승(0.0~0.2%)하는데 그쳤다.

서울과 수도권은 지난해 11월부터 7개월 연속으로 꾸준히 하락했다. 광역시와 기타 지방도 상승폭이 축소되고 있다.

더구나 전 세계 경기불황으로 직장에서 ㅤㅉㅗㅈ겨나거나 장사를 공치는 서민들이 폭증하면서 주택대출 부실문제는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결국 이자 상환기간이 끝나서 원금을 갚는 시기가 돌아오면 길바닥으로 나앉는 수밖에 없다.

답답한 것은 해결 방안이 없다는 점이다. 유럽에서 촉발된 세계 경기 불황은 미국, 중국을 강타하면서 앞으로 최장 5년 정도 지속될수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우려다.

◇아파트 집단대출, 도화선으로 작용하나?
지난달 집단대출 연체율은 1.71%로 한달새 또다시 0.15%p 치솟았다.

2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가계 집단대출 연체율은 1월 1.31% 수준에서 2월 66.4%, 3월 1.48%, 4월 1.56%로 빠르게 늘고 있다.

집단대출이란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을 대상으로 개별 심사 없이 일괄적으로 이뤄지는 단체 대출로 신규 아파트 분양시 중도금이나 잔금 대출로 활용된다.

최근 집단대출 연체가 늘고 있는 것은 작년 5월 이후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시세가 분양가 밑으로 떨어진 아파트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분양을 앞둔 계약자와 시행사간 분쟁이 늘고 있는 점도 연체 규모를 부풀리고 있다.

전국의 집단대출규모가 100조원대로 급속히 덩치를 키우게 된데는 정부의 이중적인 잣대가 숨어있다.

기획재정부는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위한 DTI(총부채 상환비율) 규제 폐지 요청은 못들은 척 하고 있다.

하지만 건설사 수입을 보장하기 위해 신규분양 집단대출은 풀어놓으면서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일반 아파트 거래 시장에는 DTI로 규제하면서, 신규 분양 아파트는 DTI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건설업계 살리기에 불과하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즉 부동산 시장은 시장대로 죽이고, 가계부채 위기는 전혀 막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반적인 대출 금리 하락세 속에도 집단대출은 나홀로 금리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2년 5월중 금융기관 가중평균 금리'에 따르면 취급액 기준 (주택)집단대출금리는 지난달(5.11%)에 비해 0.04%p 뛴 연 5.15%로 집계됐다.

집단대출금리는 올해 1월 5.19%에서 지난 3월 5.05%까지 떨어졌으나 지난 4월 부터 상승세로 돌아섰다.

◇금융권, 담보비율 초과 대출금 회수 착수
이런 상황에서 시중 은행들이 만기가 돌아오는 주택담보대출의 원금 일부 회수에 나서고 있다.

수도권 외곽지역을 중심으로 집값이 급락하면서 담보가치가 하락하자 빌려준 돈을 떼일까봐 선제 공격에 나선 것이다,

올 연말까지 국내 5대 시중은행에서 만기가 돌아와 일시 상환해야 하는 주택담보대출은 23조원에 이른다.

국민은행은 주택 담보비율(LTV) 이 80%가 넘을 경우 초과 대출금에 대한 회수에 나서고 있다.

하나은행은 LTV 60% 초과분에 대해서는 한도초과 전환대출을 통해 일부 대출금을 상환시키고 있다.

신한은행과 농협도 LTV 60%가 넘어서는 고객에 대해 대출금 상환에 나서거나 신용도와 거래기간 등을 고려해 만기를 연장해주고 있다.

하지만 계속되는 집값 하락으로 김포등 수도권 일부 지역의 경우 아파트 소유자들의 대출 금액이 주택담보인정비율 (LTV)을 넘어섰다.

때문에 대출 연장시한을 맞이했지만 은행에서 추가로 돈을 꾸기 어려운 서민들은 이자가 훨씬 비싼 2금융권으로 내몰리고 있다.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 상환 압박을 받는 대출자들이 보험사의 약관대출이나 후순위 담보대출로 발길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월 보험 약관대출액은 44조원으로 한달전보다 2천400억원 늘었다.

저축은행과 캐피털사도 후순위 주택 담보대출을 문의하는 고객들이 급증하고 있지만, 집값 하락으로 후순위 담보대출 비중을 줄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