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민영화 논의 수면위로...정부, 의료서비스 선진화 정책 추진
의료민영화 논의 수면위로...정부, 의료서비스 선진화 정책 추진
  • 송혜정 기자
  • 승인 2011.08.25 20: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리의료법인, 누구를 위한 것인가

최근 정부가 그동안 수면아래 잠자던 영리병원 도입을 본격 추진하기로 하면서 해묵은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이번 내각개편을 통해 그동안 의료 민영화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던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유임되고, 반대하던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이 교체되면서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에게 관심의 초점이 모여지고 있다. 그러나 의료 민영화는 사회 각 분야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장관 한 명이 교체된다고 당장 추진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 정부는 의료민영화를 향해 꾸준하게 절차를 밟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의료서비스 선진화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와 미국의 의료체계 장단점을 살펴보고 의료 민영화에 대한 논의를 들어보자.

의료민영화에 대해 많은 사회단체와 국민 대다수가 적극적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나서는 가운데서도 그간 정부는 <표>에서 보듯이 의료민영화에 대한 절차를 꾸준히 밟아왔다. 이런 의료민영화는 참여정부에서부터 시작돼 현재에 이르러서는 대세로 받아들여지기까지 한다.

<표> 의료 서비스 선진화 정책 추진 현황
2008년 3월 : 영리의료법인 도입 검토,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해외 환자 유치 활성화
2008년 4월 : 정부 17개 부처 합동회의 발표 ‘성장동력 확충과 서비스 수지개선을 위한 서비스 산업 선진화 방안’
2008년 5월 : 주식회사형 영리의료법인 허용,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상품 도입
2009년 5월 : 외국인 환자에 대한 유인알선을 허용하는 의료법 국회 통과
비영리의료법인 의료채권 발행 허용, 의료기관 합병 근거 마련, 의료법인 부대사업 범위 확대
2009년 8월 : 의료 산업 육성을 위한 첨단의료복합단지 조성 지역 지정
2009년 10월 :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유지 등 일정 조건 하에 제주특별시에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도입 수용 발표

특히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영리병원 금지규정은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규제일 뿐 아니라 이 규제 때문에 시장이 불투명해지고 있다”며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투자개방형 영리의료법인(영리병원) 설립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KDI는 “국내 의료법인은 대부분 개인병원의 병원장들이 소유하고 있는 데다 이사회를 통한 상속도 빈번하게 이뤄져 사적이익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한 비영리기관의 원칙이 무너진 상태”라고 지적했다. 사실상 이윤을 추구하는데도 비영리기관이라는 점 때문에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는 병원도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고 연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비영리의료법인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병원이 산업재해 및 자동차사고를 당한 환자와 결탁해 요양기간을 연장하거나 회계장부를 조작해 수익을 늘리는 불법행위가 행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KDI는 영리병원을 허용하면 병원들이 시장에서 자본을 투명하게 조달할 수 있고 건강관리서비스와 정보통신기술을 연계한 헬스산업이 발달하는 긍정적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의료제도를 산업적인 측면에서만 바라 본 근시적인 시각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우리나라에서는 의료민영화 주장이 나오면 이에 대한 반대의 논조가 나오고, 이를 다시 반박하는 등의 논쟁만 수년째 지속되고 있다. 이는 정부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영리병원제도는 지난해 12월 기획재정부가 “영리병원 제도 도입을 기정사실화해도 된다”고 밝혔지만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재정부 안에 동의하지 못한다”며 부처 간 이견을 드러낸 뒤 도입 논의가 유보된 바 있다. 특히 직접적인 당사자로 볼 수 있는 의료계에서조차도 찬반논쟁이 분분하다.

영리의료법인, 의료 복지의 양극화 초래

영리의료법인은 주식회사처럼 일반 투자자들로부터 자본금을 조달해 병원을 운용하고 수익금을 투자자에게 되돌려주는 형태의 수익 추구형 병원을 말한다. 또한 병원에서 번 돈을 병원이 아닌 다른 곳에도 투자할 수 있다.

의료민영화의 긍정적 측면은 우선 의료기관간의 경쟁 유발을 통해 보건의료서비스를 질적으로 개선할 수있다는 것이다. 또 합작투자방식에 의한 병원 설립이 가능해져 국내 의료산업의 선진화를 이끌수 있어, 소비자 입장에서 양질의 보건의료서비스를 받을 기회를 확대된다는 장점이 있다. 이와 함께 국내 의료인의 해외진출의 기회가 확대된다는 점도 빼놓지 않는 주장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측면에서는 외국의 대형자본이 국내 의료분야에 유입될 경우, 경쟁력이 취약한 중소병원의 경영난과 도산 위험성이 지금보다 훨씬 증가해 오히려 지금보다 경쟁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저질, 저가의 의료인력 유입에 따른 의료서비스의 질적 저하와 의료공급시장의 교란으로 국민보건 서비스의 질적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의료 행위의 공공성마저 훼손할 수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이 가중된다는 사실은 긍정론자나 부정론자 모두가 알고 있다. 이 때문에 각계 지식인과 사회단체들은 “의료 민영화는 의료비용 지불 여력이 있는 이들은 보다 나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돈없는 국민들은 기본적인 의료 혜택조차 받지 못할 수 있는 의료 복지의 양극화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반대의사를 표시한다.

우리나라 vs 미국 의료 체계

국가간의 의료 체계를 비교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는 의료 제도가 각기 다른 사회제도와 맞물려 있어 단순 비교를 통해 우위를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의료 체계에 있어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나은 점은 국민건강보험 제도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GDP대비 보건의료비 비중이 6-7%로, OECD 평균인 8~9%에 미치지 못하고 있지만 국민건강수준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주치의 제도가 아예 존재하지 않아 일차의료가 매우 단편화돼 있다는 점이 문제다. 그래서 의료쇼핑 수준이 세계적이지만, 만성질환 이환율/사망률, 그리고 이로 인한 의료비 증가속도가 매우 빠르고 인구의 고령화 속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향후, 진료보수 지불체계 개편이나 주치의제도 도입이 없이는 건강보험재정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와 반면에 미국의료체계의 약점은 정부의 대국민 건강 보험제도인 메디케이드/ 메디케어(약 15%)가 있기는 하지만, 보험 회사들이 맡는 비중이 65~70%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미국 국민이 15~20%로 4900만 명에 달한다. GDP대비 보건의료비가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봐도 탑 클래스에 속해 있지만, 국민건강수준은 선진국 중 매우 낮아 의료체계 효율성 면에서 최하위에 속한다.

우리나라와 미국 의료체계의 공통적인 단점은 의료기관의 사적소유가 심한 나라로 손꼽힌다는 것이다(한국(90%) 미국(60~70%)). 한국은 얼마 안 되는 공공 의료기관마저 공공성을 상실하고 시장경제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의료기관들은 특히 시장경제에 노출되어 있어 서로 경쟁이 치열해 고가첨단장비를 많이 보유함에 따라 경쟁력을 확보한 듯 보이지만 진료보수 지불체계가 행위별 수가제가 주를 이루고 있어서 ‘과잉진료’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또한 일차의료체계가 매우 부실하다는 점이 공통된 약점인데, 미국은 사보험 체계 속에서 주치의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의료 접근성과 지속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일차의료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운 상태며, 한국의 경우 주치의제도가 아예 없다.

군사정권의 포퓰리즘 정책으로 탄생한 국민건강보험제도

우리나라 의료제도는 사실 많은 국가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으며 다른 국민들이 부러워할 만큼 잘 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나라 의료제도 문제의 시발점이다. 선진화되어 있는 국민건강보험제도에 비해 국민들이 내는 보험료는 턱없이 낮게 책정됐다는 점인데, 이는 역사적 특수성에 의해 비롯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1977년 의료보험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한 이후 1988년 농어촌지역에 이어 1989년에는 전국민 의료보험제도를 시행됐는데,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군사정권에 의해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기형적 의료체제였다.

우리나라 역대 군사정권들은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획득한 만큼 정통성이 취약하다 보니, 그것을 만회하고자 경제나 민생분야에서 일련의 포퓰리즘적인 정책을 도입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오늘날 의료보험제도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은 유럽의 선진국에 비해 GDP 대비 지출율이 현저히 낮고 의료 수가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의 의료보험은 일반 국민들이 보험료를 덜 내는 저비용방식을 쓰면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는 고효율을 지향하는 체제이며, 과거 30년간 이 체제는 비약적인 압축 성장을 거듭하면서, 서민들의 건강과 의료수준에 크게 이바지한 측면이 있기도 하다.

의료보험 체계가 초창기에 환자들에게 부담시키는 보험료를 너무 낮게 책정됐고, 그러다보니 산업화가 이뤄지고 경제가 크게 발전하고 국민들의 생활패턴이나 소득 수준이 크게 늘어나면서 생긴 각종 질병들 이를 테면, 암이라든가 뇌질환 같은 현대 문명의 질병에 대한 보장 폭이 OECD선진국들만큼 넓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이런 간극을 메울 민간 보험들이 매우 발달하게 됐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의료보험의 민영화에 전면 반대하고 있지만, 실상은 국민건강보험이 질병에 대한 보장폭이 선진국의 그것에 비해 현저히 낮으며, 그 간극을 민간 보험 회사들이 맡고 있는 실정에 대해 모두가 침묵하고 있다. 다시 말해 나머지 40%는 본인 부담이나 비급여로 나눠지면서, 국민들의 의료비 지출 가운데 약 40%는 민간 보험회사들이 떠맡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암과 같은 질병에 걸리게 되면 현행 건강보험으로는 도저히 치료를 받을 수 없으며, 따라서 민간보험을 한두개쯤 따로 가입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국민들의 일반적인 행태라는 것은 삼척동자들도 이미 알고 있다.

이런 모순된 의료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면 정부가 의료보험료를 대폭 올리고 질병에 대한 보장폭도 높이면서 낮은 의료수가에 대해 불만이 많은 의사와 병원들에게 보다 많은 급여를 지급해야만 하는데, 그 예산 확보라는 것이 생각이나 말처럼 그렇게 쉽게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의료 보험체계를 지금처럼 유지하거나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대책없이 이분법적으로 무조건적인 의료 민영화 찬성이나 반대를 하기보다는 국민들의 건강보험료 부담은 최대한 억제하면서도, 의료 급여나 수가는 획기적으로 높여 의사나 일선 병원들의 불만을 원천적으로 잠재우는 길을 모색하거나 혹은 이런 방향의 논의가 여야 정치권이나 시민단체, 그리고 언론에서 끊임없이 나오도록 사회여론을 형성하거나 주도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