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맛있는 밥의 조건
[전문가 기고] 맛있는 밥의 조건
  • 김수진
  • 승인 2022.07.01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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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환 밥 소믈리에
사진제공 = 박성환
사진제공 = 박성환 밥 소믈리에

중국 청나라 시대 장영이란 학자는 ‘반유십이합설(飯有十二合設)’에서 ‘조선 사람들은 밥을 잘 짓는다. 밥알이 윤기가 있고 부드러우며 향긋하고 고루 익어 기름지다. 밥을 지을 때는 불을 약하게 하고 물을 적게 부어야 한다’며 우리 민족의 밥 짓기 기술을 칭찬했다. 윤기, 찰기, 향기가 뛰어나도록 밥 짓는 점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현대의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요리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밥심으로 산다는 말까지 하면서도 정작 밥에 대해서만큼은 옛날에 비해 더 모르는 것 같다.

전기밥솥도 다양한 제품들이 나와 있어 누구라도 밥 짓는데 큰 어려움이 없기는 하지만 그냥 밥이 아니라 맛있는 밥을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맛있는 밥은 우리의 오감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 단순해 보이는 밥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맛있게 만들기 위한 조건들이 꽤 많다.

맛있는 밥의 시작은 당연히 좋은 쌀과 도정이다. 잘 고른 국산 품종에 최근 도정한 쌀이 좋다. 아무리 뛰어난 쌀도 구입 후 잘 보관해야 한다. 쌀 품종부터 산지, 기후, 수확, 탈곡, 도정에 이르기까지 복잡하고 많은 과정과 요소들이 맛있는 밥에 영향을 미친다. 반유십이합설에서는 밥을 맛있게 먹는 12가지 조건을 설명했다. 쌀, 불 조절, 여러 종류의 국과 반찬, 시간, 그릇, 장소 등을 언급하며 마지막 조건으로 함께 먹는 사람도 꼽았다.

맛있는 밥은 오감을 다 따져봐야 한다. △시각: 밥알의 색상, 윤기와 형태. 하얗게 윤기 나며 밥알 한 알 한 알이 서있는 듯한 모양에 가지런하면 밥맛이 뛰어나다. △청각: 밥을 씹을 때 거의 소리가 나지 않지만 입으로 호호 부는 소리는 맛있는 밥의 느낌을 강화한다 △후각: 입안에 넣는 찰나의 밥 향기가 좋아야 한다 △미각: 은은한 단맛이 날수록 맛있는 밥이다. △ 촉각: 혀에서 느껴지는 감촉, 찰지고 단단한 정도의 특성도 중요하다. 흔히 밥맛이라고 하면 미각만 떠올리게 되는데 진짜 맛있는 밥은 사람의 오감 전체를 만족시키는 밥이라고 하겠다.

즉석밥에도 맛있는 밥이 있다. 간편하게 데워먹을 수 있는 즉석밥은 급하게 밥을 먹어야하는데 밥이 없거나 밥 짓기가 귀찮거나 밥린이들에게는 최고의 선택이다. 그런데 즉석밥을 애용하면서도 갓 지은 집밥을 더욱 그리워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이른바 즉석밥 냄새라고 하는 특유의 이취 때문에 오래 먹으면 질린다고 한다. 그래서 아예 굶는 한이 있어도 즉석밥은 결코 먹지 않겠다는 반(反)즉석밥파들도 꽤나 많은 편이다.

최근 하림에서 기존 즉석밥과 차별화해 집밥처럼 맛있는 즉석밥인 ‘더미식 밥’ 11종을 한꺼번에 선보였다. 산미료와 같은 첨가물을 전혀 넣지 않고 100% 쌀과 물로만 밥을 지어 갓 지은 밥과 같은 밥향이 나고 본연의 색깔과 모양을 그대로 살린 즉석밥이라고 한다. 부엌과 가공식품의 경계를 허물어버린 이 새로운 즉석밥이 시장에 나와 더 건강하고 맛있는 밥에 도전장을 던졌다. 많은 정성과 시간을 들이고 맛있는 밥의 조건들을 다 따져서 쌀을 보관, 도정하면서 밥하기가 쉽지 않고 집에서도 간간이 밥짓기에 실패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전자레인지에 돌리기만 하면 맛있는 밥으로 변신하는 새로운 즉석밥들에 더욱 눈길이 쏠린다. 물론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는 밥이 되기 위해서는 곁에 사랑하는 가족이나 사람이 함께 있어야 할 것이다.

 

<박성환 밥 소믈리에>

일본 동경조리사전문학교를 졸업한뒤 일본취반협회가 주관하는 밥 소믈리에(2012년)와 워터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한 식품전문가로서 tvN 수요미식회와 농촌진흥청 쌀 소비 지원사업, 경기도농업기술원 등에 자문활동을 해왔다. ‘밥이 답이다’이라는 칼럼을 5년여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