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전도사의 '희망'을 부르는 노래
희망 전도사의 '희망'을 부르는 노래
  • 이지은 기자
  • 승인 2013.05.03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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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동엽 신부가 말하는 <희망의 귀환>

강연가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대중에게 친숙한 차동엽 신부가 ‘희망’ 말하는 <희망의 귀환>을 내놨다. 그는 이 책에서 대중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를 자신의 주제로 여기며 울고 웃는다.

그의 희망 탐사는 집요하고, 끈질기고, 장쾌하다. 그래서 이 책은 아무도 밟지 않은 희망 지평을 새벽처럼 열고 있다.

저자는 “고백하거니와 이 글은 누군가 벼랑 끝에서 희망을 찾는 이를 위한 변호임과 동시에, 나 자신 희망이 절실해질 때를 위한 비상구로서도 의미를 지닌다”라고 말한다.

저자가 가장 호소력 있는 희망 경구로 꼽는 것은 “나도 희망한다, 너도 희망하라 (스페로 스페라 : Spero, spera)” 이다. 얼핏 상투적인 표현이긴 하나, 이 말의 속뜻엔 거부할 수 없는 울림이 있다.

▲ <희망의 귀환> 차동엽, 2013년 4월 ⓒ위즈앤비즈
지금 누군가에게 희망을 권하는 그 사람은 더 혹독한 시련 가운데 있다. 그는 겨우, 간신히, 억지로 희망을 부여잡고 버티는 중이다. 그리하여 그는 살아있음 자체가 주위 사람들에게 힘찬 희망의 응원이 된다는 고백이라는 것이다.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속수무책인 ‘절망문화’의 확산을 우리는 어째야 할까? 이 물음에 대해서도 이 사회 지식층 일각에서 일고 있는 성찰과 일부 날카로운 비평가들의 주장대로 ‘절망문화’의 주범이 바로 과장된 성취경쟁 때문이라고 가차 없는 비판을 가한다.

우리의 사회문화는 지난날 오직 성공만을 향하여 질주할 것을 종용해 왔다. 이로 인해 행복, 기쁨, 사랑, 평화 등 우리네 삶의 본질적 목표가 경제 및 출세 논리에 압도되었다. 당연히 그 부작용은 피로, 과로, 좌절, 우울증 등이었던 것이고. 이런 ‘피로사회’ 증후군엔 치유가 시급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피로사회의 출구는 무엇인가? 저자는 여기서 그 대안 가운데 하나로서 차분한 희망담론을 제시한다.

무책임한 희망 부추기기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희망원리 자체의 발견하는 것을 꾀해 보자는 얘기를 전한다.

이런 맥락에서 ‘피로사회’에 방점을 찍고 있는 지식인들에게 “절망이구 희망이구 차분히 가라앉히고, 호들갑스럽게 희망을 부추기지 말고, 희망으로 하여금 스스로 일어나도록 하라”는 말처럼 설득력 있는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똑같은 하루라면 저자는 어떤 반론에도 굴하지 않고 그의 희망철학을 외쳐댄다. 경제일선의 불경기 때나 호경기 역시 사람들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꿈이다.

그 상승의 붐이 꿈을 부채질하는 그는  “꿈을 뒤집어 보라. 희망이 숨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멀리 보라. 희망이 아스라이 보일 것이다. 폭넓게 보라. 희망이 옆구리를 드러낼 것이다. 꿰뚫어 보라. 희망이 바닥에서 꿈틀거릴 것이다”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