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이 쓴 미국 역사 ‘하워드 진의 미국사’
보통 사람들이 쓴 미국 역사 ‘하워드 진의 미국사’
  • 김지원 기자
  • 승인 2013.10.19 12: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유‧평등‧민주주의의 상징 미국이 ‘공공의 적’이 된 이유

자유·평등·민주주의의 상징이었던 미국이 전세계 테러 위협의 칼끝에서 전전긍긍하게 되고, 세계 제1의 강대국이라는 지위를 위협받게 되었을까.

그것은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기 훨씬 이전부터, 미국이 아메리카대륙에서 원주민들을 처참히 짓밟으며 몰아냈던 그때부터 이미 예정된 일이었는지 모른다.

<만화로 보는 하워드 진의 미국사>는 미국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한 초기 역사에서부터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나기까지, 조용하고 은밀하게 진행되어 온 미국의 침략 역사를 낱낱이 파헤쳐 보여준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미국이 어떻게 세계를 이끄는 초강대국이 되었고, 왜 다른 나라들의 증오 대상이 되었는지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다.

▲ 하워드 진 지음, 마이크 코노패키 그림, 폴 불 각색, 송민경 옮김, 2013. 9. 25 Ⓒ도서출판 다른
200여 년의 짧은 역사지만 미국은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화려한 가면 아래서 행해 온 침략과 폭력의 제국주의 역사가 미국의 덩치를 키웠다. 이로 인해 다른 나라의 증오를 불러일으키며 결국 헤어나올 수 없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인류의 잔인한 행위들에 초점을 맞춰 역사를 바라보기보다는 다른 역사 읽기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워드 진은 이를 통해 “전쟁과 더불어 전쟁에 대한 저항을, 불의와 더불어 불의에 맞선 반란을, 이기심과 더불어 자기 희생을, 폭정 앞에서의 침묵과 더불어 도전을, 무정함과 더불어 연민을 발견할 수 있다”며 역사는 거대한 적과 맞서 자유와 정의를 위해 함께 싸워 승리한 사람들의 얼굴로 가득 차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의 역사책이 특별해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렇게 역사를 보면 그동안 우리가 놓치고 있던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미국의 노동자들은 최저 생계 비용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기 위해, 자신의 안전조차 보장받을 수 없는 환경에서 장시간 노동을 견뎌야 했다.

하지만 이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파업을 벌인 끝에 하루 8시간 노동을 비롯한 여러 권리를 쟁취했다.

또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는 도서관과 식당, 버스 같은 공공장소에서 흑인과 백인의 자리를 따로 구분하는 흑백 분리 정책이 시행되고 있었고 모두가 이를 당연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러한 인종차별이 잘못된 것이고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수많은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인종차별 철폐를 부르짖었고, 결국 흑백 분리 정책은 폐지되었다.

미국이 해외에서 제국주의 전쟁을 벌일 때면, 전국 곳곳에서 당장 전쟁을 그만두라는 평화 시위가 일어났다.

특히 1973년에는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인해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던 베트남 전쟁이 종식되기도 했다.

<만화로 보는 하워드 진의 미국사>에는 투표할 권리를 요구해 참정권을 쟁취한 여성들, 정부가 은폐하려던 베트남전의 진실을 담은 기밀문서를 몰래 빼내 와 언론에 공개한 사람들, 전쟁터에서 학살당할 위기에 놓인 민간인들을 목숨을 걸고 구해낸 사람들이 등장한다.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자유와 민주주의 나라 미국을 만들고 지탱한 진짜 주인공은 링컨이나 케네디 같은 권력자들이 아니라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또한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과거의 일이지만, 현재의 우리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도 많이 만날 수 있다. 지금도 전쟁은 계속되고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국가는 국민들을 억압한다.

그리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는 실로 엄청나다. 이런 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의 역사가 과연 진보의 역사가 맞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하지만 하워드 진은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던 불의와 무적의 권력이 온몸으로 저항하고 투쟁하는 보통 사람들의 힘으로 한순간에 무너져내린 사실을 기억하라”며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최악의 상황과 싸우면서 인간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놀라운 승리”라고 말한다.

그 말은 보통 사람인 우리들이 결국 우리 앞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과 자신감이 생긴다. 지금, 우리에게 <만화로 보는 하워드 진의 미국사>가 필요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현재의 시대, 영원할 것만 같던 세계 초강대국 미국은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시작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은 10여 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며 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결국 미국을 증오하는 목소리만 높아지게 됐고, 자신만만하게 전쟁을 일으켰던 미국은 어마어마한 전쟁비용을 대느라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만화로 보는 하워드 진의 미국사>의 마지막 부분에서 한 소녀는 폭력과 불의로 가득 찬 미국 역사에 대한 강의를 마친 하워드 진에게 “이 어두운 역사가 바뀔 수 있는 희망이 있나요”라며 우리가 묻고 싶었던 질문을 한다.

그러자 하워드 진은 “나의 희망은 지금 보이는 세계의 모습 때문에 우리가 너무 좌절하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라며 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