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 살인, 통제·감시에 대한 규제가 답? 해외사례 엿보기
교제 살인, 통제·감시에 대한 규제가 답? 해외사례 엿보기
  • 김다솜
  • 승인 2024.06.14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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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제폭력, 공권력 개입 한계 명확
‘강압적 통제’ 행위에 대한 규제 마련돼야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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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가족 등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이 피해자의 사망, 살인 등으로 이어지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교제폭력, 친밀한 관계 폭력의 가장 큰 특징인 ‘통제’ 행위에 대한 규제 및 처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거절 살인, 친밀한 관계 폭력 규율에 실패해 온 이유’ 보고서에서는 이같은 내용을 담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교제폭력 신고건수는 7만7000여건으로 2017년(3만6000여건)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반면 검거인원은 1만3939명으로 신고건수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는데 처벌불원이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따른다. 

ⓒ국회입법조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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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년간 현장종결 비율은 평균 55% 수준에 이른다. 현장종결이란 신고전화를 받고 경찰관이 현장에 출동했으나 처벌불원 등의 이유로 사건을 접수하지 않고 종결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교제폭력 가해자 중 구속수사 비율은 2017년 3.5%에서 2023년 2.2%로 되려 감소했다. 

가정폭력 신고건수는 2017년 이후 지속 감소하다 2021년 이후 다시 증가추세를 보인다. 2023년 기준 23만830건의 신고를 통해 현장검거된 인원은 1만1427명, 최종 검거된 인원은 5만5247명에 불과하다. 가정폭력 역시 현장종결 비율은 52% 수준으로, 지난 7년간 신고건수 대비 현장종결 건수 평균 53.3%에 이른다. 

가정폭력으로 검거된 인원 대비 구속율은 1.0% 수준에 불과하다. 2017년 0.8%에서 2020년 0.6%까지 낮아졌다가 2022년에 들어서야 1.0%로 소폭 상향했다. 

 

친밀한 관계 폭력 범죄에 대한 공권력 개입 한계
‘강압적 통제’ 행위 규제 필요성 제기 

보고서는 교제폭력, 가정폭력 등 친밀한 관계 폭력 범죄에 대한 공권력 개입에 있어 한계가 명확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가해자 처벌에 대한 피해자 의사를 사건처리의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어 가해자 처벌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한다는 문제가 있다. 반의사불벌 적용에 따라 가해자가 피해자를 회유·협박해 범죄행위를 무마시키려하거나 고소를 철회하게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신체적 폭력 피해를 기준으로 피해자가 처한 위험도를 평가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이 항상 직접적 신체적 구타나 물리적 학대의 유형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관련 연구들은 그보다 더 위험한 학대를 일명 ‘강압적 통제’로 명명하고 있는데 상대방의 일상에 대한 간섭과 규제, 모욕주고 비난하기, 행동의 자유를 빼앗고 가족·지인으로부터 고립시키는 등의 가해행위를 일컫는다. 

실제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현재의 배우자 또는 파트너에 의해 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피해자의 87.7%는 통제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신체적 또는 성적 폭력 피해율보다 높은 수준이다. 

피해자가 경험한 통제 유형을 살펴보면 ‘행방을 추적하고 감시하며 의심하고 지시하는 태도’, ‘타인과의 교류나 행동의 자유를 간섭하고 통제하려는 태도’가 확인된다. 현행법에서는 모두 폭행 및 협박 범죄로 간주되기 어려운 행위다. 

ⓒ국회입법조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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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피해자들은 상당한 수준의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 결과 ‘상대방의 행동이 폭력적이라 느껴졌다’(72.5%),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맞추게 됐다’(71.9%), ‘자유롭게 행동하는 데 제약을 느꼈다’(70.0%) 등의 응답이 나왔으며 ‘죽고 싶다’는 응답률도 57.5%에 달했다. 

보고서는 “통제 행위는 미래의 신체적 학대를 예견할 수 있는 가장 뚜렷한 전조증상이자 피해자 살해의 위험요인이라는 것은 관련 학계의 정설”이라며 “특히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여성살해가 통제의 고통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결별의 맥락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은 피해자가 처한 위험을 감지하는 기준이 달라져야 함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서는 ‘통제 행위’도 범죄로 규정

해외 일부국가는 이미 친밀한 관계에서의 강압과 통제 행위를 범죄화 했다. 

영국의 경우 최소 2회 이상의 사건을 통해 친밀한 관계에 있는 피해자에게 곧 폭력이 사용될 것이라는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거나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있어 상당한 지장을 초래했을 때 범죄행위가 발생했다고 판단한다. 범죄가 인정되는 경우 최장 5년의 징역형, 벌금 또는 병과 처분될 수 있다. 

영국 내무부는 통제 및 강압적 행동은 일회적이거나 단발적인 것이 아닌, 행동의 과정 및 패턴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피해자의 일상을 감시하고 통제하고 피해자가 하기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하게 만들고 규칙을 만들어 따르게 하는 것을 강압 또는 통제 행위로 보고 이를 금지한다. 

스코틀랜드는 신체적 폭력뿐 아니라 비신체적 학대 행위를 가정폭력 범죄로 판단한다. 파트너 또는 이전 파트너를 종속적으로 만들고, 친구·지인 등으로부터 고립시키고 일상 행동을 규제·감시하거나 통제하고 행동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찬탈하고 위협·모욕·경멸·벌 주는 것을 비신체적 학대로 명시한다. 

이외에 아일랜드, 호주 등도 강압적 통제를 범죄화했다. 

보고서는 “교제 및 배우자 관계에서의 폭력을 ‘사적인 일’로 경미하게 치부하며 중재와 화해의 대상으로만 여겨온 낡은 관행이 오늘날의 비극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친밀한 관계 폭력의 본성을 제대로 반영하는 법률 마련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