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총수 '꼼수' 겨냥…미등기임원 보수 공개 추진
재벌총수 '꼼수' 겨냥…미등기임원 보수 공개 추진
  • 김유현 기자
  • 승인 2014.04.08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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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기임원 보수 공개에 '미등기' 갈아타기 활개
일각에선 오히려 책임 회피 구멍 만들어 준 것 아니냐는 지적 잇따라

최근 5억 원 이상 보수를 챙기는 대기업 등기임원의 연봉이 공개돼 사회적 파장이 일고 있는 가운데 미등기임원 보수 공개 필요성에 대해서도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31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따라 5억 원 이상 급여를 받는 등기임원의 개별 보수가 공시됐다.

공개 대상은 △등기임원이고 △기업당 5억 원 이상 보수를 받으며 △기업이 상장사일 경우로 한정됐다.

하지만 이때문에 총수 일가가 그룹 전체에서 받는 보수 총액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라는 말이 나온다.

공개된 보수에 대해서도 얼마를 지급했다는 사실만 적혀있지 ‘왜’ 그 많은 금액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다.

▲ 지난달 31일 주요 기업 등기임원들의 보수가 공개됐다. ©뉴시스
고액 임금…성과에 따른 정당한 보수? 옥살이 중에도 301억 원 챙긴 SK그룹 최태원 회장

일단 공개된 임원들의 고액 보수와 관련해 기업은 ‘성과에 따른 정당한 지급’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임원들의 기업 성장 기여도가 일반인의 수십 배에 달하는 연봉을 받을 만큼 큰지에 대해 회의감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대표적 사례가 SK그룹 최태원 회장이다. 최 회장은 배임과 횡령 등의 혐의로 지난해 1월 31일 구속 수감됐음에도 한 해 급여를 모두 받았다. 그렇게 최 회장이 지난해 받은 급여는 총 301억 원.

이에 SK그룹 관계자는 “정상적으로 회사 근무가 불가능했음에도 대표이사 회장으로서 책임경영을 다 했다는 점을 높이 사 월급을 지급했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이어 또 다른 관계자는 “최 회장의 순수 급여(24억 원)는 얼마 되지 않는다. 대부분 금액(88억 원)은 SK이노베이션 등기이사로 재직할 당시 브라질 원유 광구를 매각해 2조 원 이상의 수익을 창출해 성과급으로 받은 것”이라며 “성과급을 제한 월급은 글로벌 기업인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여타 그룹의 오너 회장도 배임과 횡령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으면서도 모두 수십억 원의 보수를 받았다.

고액 연봉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은 차치하더라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기업 회장들이 이런 고액 연봉을 챙기는 것 자체가 도덕적 해이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다.

▲ 좌로부터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ㆍ이마트 부회장 ⓒ 뉴시스
그럴듯한 명분 ‘전문경영인 체제 구축?’ 혹은 감춰진 검은 속내 ‘연봉 공개 회피’

뿐만 아니라 몇몇 기업 총수들은 이미 법의 허점(미등기임원은 보수를 공개하지 않는다)을 노리고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실제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신세계ㆍ이마트 정용진 부회장, 메리츠금융 조정호 회장, 오리온 담철곤 회장과 이화경 부회장(부부), 이랜드 박성경 부회장 등은 자본시장법 시행 예정 이후 급작스레 등기이사직을 내려놓았다.

기업들은 이런 행보에 대해 “전문경영인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과정”이라 항변했지만 정계에서는 “보수 공개를 피해가려는 꼼수”라는 비난이 나온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과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은 지난해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앞두고 ‘등기이사’에서 ‘미등기임원’으로 갈아탐으로써 연봉공개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와 관련해 두 기업은 “이들의 등기이사 사임은 전문경영인 체제 구축을 위한 일련의 과정”이라는 천편일률적 답을 내놨었다.

신세계ㆍ이마트 정 부회장이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난 것에 대해 신세계 측은 “정 부회장의 등기이사 사퇴는 지난 2011년 이마트 기업 분할 때부터 계획된 것”이라며 “정 부회장은 그룹 총괄 경영을 강화하고 복합쇼핑몰 등 미래성장동력 사업에 집중해 책임경영체제를 구축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들의 등기이사 포기 원인을 ‘연봉공개 회피’와 ‘경제민주화 바람과 함께 대기업 오너 일가의 책임경영 회피’에서 찾았다.

정 부회장이 등기이사에서 물러난 이유는 신세계에 잇따라 닥친 악재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지난해 정 부회장은 자사 베이커리 계열사에 부당 특혜를 준 혐의로 검찰에 불려갔다. 뿐만 아니라 직원들을 불법 사찰한 의혹으로 검찰과 고용노동부로부터 이마트 본사와 지점을 압수수색 당했다.

때문에 등기이사 사퇴가 향후 정 부회장이 직접 법정에 서야 할 일을 최소화하기 위한 작업이라는 해석이 즐비했다.

오리온 담철곤 회장과 이화경 부회장 부부 역시 법 시행 보름 전인 지난해 11월 14일 임기를 한참 남기고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났다.

▲ 좌로부터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현대제철) 회장, 담철곤 오리온 회장, 박성경 이랜드 부회장과 이외에도 오리온 이화경 부회장, 동서 김상헌 회장 등이 등기임원에서 미등기임원으로 갈아타기를 했다. ⓒ뉴시스ㆍ기업 홈페이지
2011년 회삿돈 300억 원 횡령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을 때도 등기이사직을 놓지 않던 담 회장은 자본시장법 제정 이후 ‘특별한 이유 없이’ 등기이사직을 내려놓았다.

오리온은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이익이 1.88% 감소했음에도, 등기이사 1인 평균 보수는 54.88%나 증가해 논란을 일으켰었다.

실적 악화에도 불구, 연봉 잔치를 벌였다는 세간의 눈총을 피하기 위해 등기이사 사퇴라는 카드를 꺼냈다는 말이 수긍되는 이유다.

하지만 이들이 등기이사직을 내려놓아도 최대주주란 사실은 변함 없다. 회장, 부회장 같은 직함도 그대로다.

결과적으로 기업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은 유지하면서 보수 공개 의무뿐 아니라 배임과 횡령, 각종 사건사고에 관한 책임은 회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재벌총수 일가가 경영 일선에 참여하면서도 책임은 안 지는 악습을 없애기 위해 시행령 개정 등을 통해 미등기임원 중 상위 연봉자는 공개하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명확한 보수 산정 기준을 마련해 연봉과 함께 공개해야 보수 공개가 가십으로 전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정계 한 인사는 “회사 경영진 보수에 대한 주주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이들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 회사 경영의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며 “보수 공개 대상을 등기임원에서 미등기임원으로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한편, 올해 연봉과 배당금 합산 금액은 △이건희 회장 1,079억 원 △정몽구 회장 635억 원 △최태원 회장 587억 원 등의 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