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동 저 ‘우리들은 문득 아버지가 된다’ 출간
이병동 저 ‘우리들은 문득 아버지가 된다’ 출간
  • 김윤희 기자
  • 승인 2011.09.20 17: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80년 1월 17일 막내 6학년 졸업이 가까워 여태까지 해온 저금을 찾아왔다. 6년간 해온 금액이 원리금 5910원이었다고 할 때, 아비 된 이 자신이 너무나도 인색했던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정말 적은 금액이 아닌가. 그래도 밤에 눈이 내려 차디찬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돈을 찾으러 갔다고 돌아오니 떳떳치 못한 내 자신, 부모 된 자격이 한심한가 싶었다’

<아버지의 일기>라는 연재글이 블로그를 통해 네티즌들 사이에 회자되며 감동을 주었다. 1959년부터 1980년 1월 세상을 떠나기 불과 7일 전까지 꼬박 쓴 아버지의 일기가 그의 아들을 통해 공개된 것. 일기를 본 네티즌들은 “아버지가 된다는 것, 아버지로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었구나!” 감탄하며 눈물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감동이 한 권의 책으로 엮여져 나왔다. 예담 출판사에서 출간된 ‘우리들은 문득 아버지가 된다’(이병동 지음)가 그 주인공.

책은 아버지가 남긴 30여 년 전의 기록을 한 장 한 장 다시 읽어보면서 옛 추억을 떠올리고, 엄격하게만 기억했던 아버지가 가족 몰래 흘렸던 눈물과 자식에게 품은 속 깊은 애정을 재발견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담담하게 적어 내려간 잔잔한 감동의 에세이다.

저자의 아버지가 남긴 일기장은 30년간 고향집 벽장 안에 보관되어 있었다. 누구 한 사람 벽장을 열어보는 사람이 없었고 저자 역시 아버지의 일기장이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은 채 살았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저자는 세월이 흘러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창업을 하고 결혼도 하면서 숨 가쁘게 달려왔다. 마흔을 막 넘길 무렵, 앞만 보고 내달리던 정신없던 삶에 갑작스러운 무기력과 회의가 찾아오면서, 생을 포기하고 싶다는 충동에까지 시달리던 저자는 불현듯 아버지를 떠올린다.

“아버지라면 이럴 때 과연 어떻게 했을까?” 그 길로 고향집에서 아버지의 일기장을 가져온 저자는 아내와 함께 아버지가 남긴 생의 자취를 조심스럽게 더듬기 시작한다.

일기장 속에는 저자가 익히 알고 있던 기억 속의 아버지와 전혀 알지 못했던 낯선 아버지의 모습이 공존하고 있었다. 저자가 알고 있던 아버지는 자식 교육에 엄격하고, 불편한 몸을 가졌지만 명석한 머리와 지치지 않는 의욕으로 누구보다 훌륭하게 농사일에 힘쓴 아홉 식구의 가장이었다. 그러나 일기장 속에는 너무나 약하고 흔들리는 모습으로 미래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고민과 갈등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40대에 접어들면서 지독한 무기력으로 침잠하는 자신의 심리적 방황이 아버지의 삶과 닮아 있음을 저자는 깨닫는다. 이제 저자는 30년 전 철없는 아들이 아닌 한 아이의 아버지이자, 어깨가 무거운 40대 가장이라는 동등한 눈높이에서 아버지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깨닫는다. 아버지도 어찌 날 때부터 아버지였으랴. 무섭고 완벽한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 역시 나약하고 고뇌하는 사내였고, 가족에게 큰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스스로를 질책하는 못난 가장이었으며 고생하는 아내에게 미안하여 밤잠을 못 이루는 평범한 남편이었고 자식들을 보며 울고 웃는 여느 아버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