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국의 '펼침의 미학'] 꽃술
[오진국의 '펼침의 미학'] 꽃술
  • 오진국 화백
  • 승인 2015.03.11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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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 Daniel's Digilog Artworks(3630) Original Imge size 5000x5000 Pixels(71.5M) Resolution 300dip 꽃술

사랑이 토해내는 분비물이 왜 전율하도록 피를 말리는지 모른다.
토해내는 가슴앓이도 있고 내던지듯 투쳐내는 사랑의 냉담도 있다. 죽을 때까지 달콤한 사랑이 있던가?

사랑은 이리 아련한 것이다.
아니 사랑은 선명한 것이다. 그렇게 사랑의 모습은 하도 많아서 나는 어떤 것이 사랑인지 어떤 것이 사랑의 본질과 동떨어진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 사랑이 토해내는 분비물이 왜 전율하도록 피를 말리는지도 모른다. 그저 그런 것들이 우리 사는 모습에 파편처럼 박혀 있는데도 애써 무관심한 체 외면하는 사람들의 속내도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일체의 사랑이라는 행위가 어쩌면 가증스러울 만큼의 이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름도 모르는 꽃이다.
아름다워야 꽃이고 사랑스러워야 꽃이다. 또 슬퍼야 꽃이고 눈물이 없으면 꽃도 아니다. '페르몬' 같은 향기를 안개비처럼 뿌려대어도 꽃은 아픔과 동 떨어질 수 없는, 상처를 숙명처럼 타고 태어났다. 내밀한 은어들이 보따리처럼 쌓여도, 풀어서 안 되는 것도 있고 어느 응달진 구석에서 가슴 쓸어내리며 펴 볼 사연도 있다. 꽃은 조바심을 내면서 봄도 기다리고 남풍이 전하는 연인의 소식도 기다리며 꽃술을 태운다. 그래서 슬프다. 꽃이나 여인이나, 사랑이나 손해 보기는 매 한가지다.

눈물이 없으면 꽃도 아니다.
자신의 의지로 숙명적 고리를 삭뚝 잘라내기가 어디 쉬운가?

때론 꽃도 팔랑팔랑 바람을 가르며 날고 싶었다.
가만가만 기다림을 뒤로 하고 노랑나비의 날개짓으로 드넓은 창공에로의 비상을 위하여 파르르한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높새바람에 사뿐히 몸을 날리기 위해서는 얇디얇은 가벼움을 필요로 하였고 일체의 잡다한 중량을 미련 없이 다 벗어 던졌다. 언제나 그랬듯이 자신을 지탱하는 줄기도, 잎사귀도 내다버리는, 못내 작별의 아픔을 감수해야했지만 숙명적 고리를 끊고 난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 이제 그들의 처절한 울음도 애듯한 미련들을 애써 외면하기 위하여 눈도 멀고 귀도 닫고 오로지 한 가지만 생각키로 하였다. 사랑하는 자를 마냥 기다릴 일이 아니야 내가찾아가야지...
바람은 내 님이 어디쯤 있는지 분명히 알테고 그러기 위해서는 오랜 허물을 벗듯 분연히 자리를 박차고 하늘하늘한 날개짓으로 떠나는거야. 그것이 설혹 단 한순간이라도 오랜 시간 애잔한 바람이자 나의 의지니까 두려움이 있을리 만무하지. 널 놀래키고 말꺼야.

'꽃술'이나 '꽃실' 같은 말은 내가 작품명을 위하여 급조하여 만든 말이지만 만약 꽃실이란 것이 정말 있다면 형형색색 얼마나 아름답고 향기로운 천을 짜서 옷을 만들 수 있을까? 작가의 상상이란 이렇게 출발하는 것이다. 어떤 사물을 보거나 대상을 두고 경직된 관념으로 바라보지 않는, 자유로운 상상에 기초를 두어야 그 상상이 날개를 달고 훠이훠이 비상을 하는 것이다. 설혹 그것이 유치하거나 현실감각이 떨어진다 해도 무방한 것이 상상의 유연성이고 환몽적 접근에의 수단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