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천주 한국여성소비자연합 회장, '소비자운동' 50년 역사를 말한다 (上)
[인터뷰] 김천주 한국여성소비자연합 회장, '소비자운동' 50년 역사를 말한다 (上)
  • 정단비 기자
  • 승인 2015.05.27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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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지원 받지 않는 시민단체의 수장…"'신사임당'은 시대가 요구하는 인물"
▲ 김천주 한국여성소비자연합 회장

"소비자가 제대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러한 생각에 소비자 운동에 뛰어든지 50년, 한국여성소비자연합의 전신인 대한주부클럽 총무로 소비자 운동을 시작한 김천주 회장은 어느새 한국 소비자운동의 살아있는 역사가 됐다.

'소비자'라는 개념이 확립되기 전부터 소비자의 권익을 위해 뛰어온 김 회장은 세월의 흐름에 백발이 성성해졌다. 하지만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한복을 곱게 입고 곧곧히 세운 허리에는 한치 흐트러짐이 없었다.

특히 신념에 가득찬 그의 거침없는 열변은 소비자운동을 시작한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변치 않는 강직함을 느낄 수 있었다.

김 회장의 강직함은 지난 2월 '소비자 알 권리 확보와 소비자권익증진 기금의 역할' 토론회에서 선언한 홈플러스 불매운동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김 회장은 홈플러스의 개인정보 유출 문제에 대해 "기업에게 정보를 주고 부당한 유통업체가 많이 생긴다면 소비자는 어떻게 해야 하나. 소비자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일갈하며 "소비자단체는 소비자의 의식을 높이고 상식선에서 소비자와 상담하고 분쟁을 조절해주는 과정을 통해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까지 확대해 활동하고 있다. 정부와 민간 사이에서 소통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매개체가 소비자단체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1973년 소비자 단체들과 함께 국회의원 20명의 동의를 얻어 소비자기본법을 통과시킨 입지전적인 인물인 김 회장은 이제 소비자권익증진기금 대표이사장을 맡으며 소비자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준비를 하고 있다.

김 회장은 6.25 전쟁 이후 나라가 혼란한 시기인 1964년, 가정의 안정과 사회의 건전성을 위해 여성적 역할을 고민하던 12명의 여성이 모여 시작된 대한주부클럽의 일원으로 소비자운동에 몸을 담았다.

김 회장은 아직까지 그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1964년 2월 28일이었다.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그 나라의 주부들이 의식이 깨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됐다. 그때만해도 정부는 생산, 경제발전에 힘을 쏟다보니 문화 쪽에는 관심이 없었고, 환경운동, 소비자와 같은 개념도 없었다"고 설명하며 "소비의 주체인 주부·여성의 단체라 해서 주부클럽이 됐고 와해를 우려해 15~20명의 클럽을 만들어서 활동했다. 하향식이 아닌 상향식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천한 것이다. 당시 선배님들은 이제 글로벌 시대가 온다. 그 속에 살려면 여성들이 깨어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때는 장차 여성 대통령도 나올 수 있다고 말하면 웃었지만 지금 현실화가 됐다"고 회상했다.

당시에도 남녀평등을 말하기 위해서는 여자도 역할을 해야된다는 깨어있는 의식의 소유자였던 김 회장은 '무조건 평등을 외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몫을 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그가 생각하는 이상상은 '신사임당'이라고 한다. 이에 한국여성소비자연합은 매년 신사임당 행사를 개최해 사임당을 선출하고 있다. 어진 어머니이자 착한 아내, 예술적 소양까지 겸비한 신사임당이 바로 시대가 요구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김 회장은 "신사임당은 절대 현모양처만이 아닌 550년 전 이미 가장 진취적이고 개혁적인 여성대표였다. 그 시대 사임당은 글, 시, 그림 등을 하면서 5시간 이상을 자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율곡과도 훌륭한 아들을 키웠다. 율곡은 선생님이 따로 없이 어머니가 선생님이었다"고 전했다.

특히 김 회장이 소비자운동을 하면서 위기를 겪을 때 '사임당 정신'이 도움이 됐다고 한다.

 

▲ 김천주 한국여성소비자연합 회장이 데일리팝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 단체는 1969년 소비자보호운동을 시작으로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주부교실, YWCA연합회와 함께 소비자단체협의회를 만들어 1977년 소비자기본법을 발의하고 국회의원 20명의 날인을 받아 통과시켰다. 소비자기본법이 통과된 것을 기념해 12월 3일을 '소비자의 날'로 제정하기도 했다.

이후 1979년부터는 소비자 고발을 받기 시작했는데, 좋은 제품을 위해 투쟁을 하다보니 기업으로부터 죽음의 위협까지 받기도 했지만 우리나라 물건이 좋아지고 수출되는 과정을 보면서 보람을 느꼈다는 김 회장의 희생정신은 '대단하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이 같은 감탄에 김 회장은 "원동력이라는 것이 필요성을 느낄 때 힘이 생긴다. 용기를 잃어서는 안된다. 필요를 해결하고 따라가려니까 여기까지 왔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많은 이들이 김 회장을 존경하는 이유에는 여러가지 있겠지만, 한국여성소비자연합이 전국 93개 지부, 30만명의 회원들이 속한 대규모 단체로 성장하는 동안 정부 지원금을 받지 않았다는 점도 꼽을 수 있다.

이에 대해 김 회장은 "'소비자 단체들은 어용이다'라는 지적에 오직 1년에 3만6000원 회비로만 운영해왔다. 정부로부터 일원도 받지 않고 주머니 털어서 하는 운동"이라고 강조하며 "외부 압력을 받지 않는다"고 신념을 내비쳤다.

단체에서 매년 개최하는 신사임당 행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국회의원이나 유명인사들의 축사를 찾아 볼 수 없다. 그는 "내 뜻을 아는 사람들은 행사를 한다고 하면 협조를 할 수는 있지만 정부에서 지원금은 받지 않는다. 우리 회원들이 나를 믿지 못한다면 이렇게 모일 수 없다"면서 "과거 사임당상을 문화부 장관이 줄 수 있도록 하자는 요청도 있었지만 임기가 정해져 있는 장관이 상을 줄 경우 의미가 퇴색할 수 있어 거절했다"고 전했다.

이 같은 말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김 회장이 신사임당 행사에 갖는 애정은 남다르다. 김 회장은 (신사임당 행사가) 국민의 정신을 개조시키고 국민 의식을 높여주는 행사라고 표현하며 "지금 가정교육이 다 무너졌다. 가정교육이 제대로 되면 사회교육이나 학교교육이 바로 선다. 사임당 행사를 통해 가정교육 부활을 돕고 싶고 어머니, 주부, 아내, 소비자의 역할을 바로 세우도록 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데일리팝=정단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