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통장 근절 취지는 좋지만.." 통장 없이 사업시작하는 신설법인 '불만 속출'
"대포통장 근절 취지는 좋지만.." 통장 없이 사업시작하는 신설법인 '불만 속출'
  • 정수인 기자
  • 승인 2015.10.20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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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진은 기사와 무관합니다. ⓒ뉴시스

"통장 개설하시려면 물품공급계약서나 세금계산서, 부가가치세 증명원, 납세 증명원, 법인재무제표 중 서류를 제출하셔야 합니다"

최근 신규법인을 설립한 A씨는 사업 시작에 앞서 법인 통장을 만들려는 과정에서 은행원으로부터 이같은 말을 들었다.

하지만 부가가치세 증명원, 납세 증명원, 법인재무제표는 신규 법인이 제출할 수 없는 서류였고, 아직 타 업체와의 계약을 체결한 상황이 아니라 나머지 서류도 제출하기 난감한 상황이 처했다.

이에 A씨는 상담 은행원에 "신규 법인인데 이런 서류를 어떻게 낼 수가 있겠냐"고 항의했지만, "법이 바뀌어서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이어 해당 은행원은 "다른 은행도 마찬가지이고, 요즘은 개인도 통장만들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법인 통장개설 서류가 강화된 배경에는 '대포통장'이 있다. 앞서 상법 개정으로 법인 설립 절차 간소화되고 자본금이 5000만원에서 100원으로 대폭 완화된 이후로 유령법인들이 설립되면서 대포통장을 대량을 만들어 범죄에 악용하고 있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4일에도 숙자를 꼬드겨 유령회사를 설립한 다음 법인 명의 대포통장 2300여 개를 만들어 유통시킨 조직원들이 구속됐다.

게다가 최대 2개월로 사용기간이 끝난 대포통장의 경우 기간을 연장하거나 분실을 이유로 재발급 받은 뒤 다른 조직에 재판매하는 등 유령법인통장을 전문적으로 유통시킨 것으로 드러나 파장이 일고 있다.

이에 지난 3월부터 금융감독원과 시중은행은 대포통장 사기를 근절하기 위해 '통장 사용 목적을 확인한 뒤 통장을 발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렇지만 정당하게 사업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법인 통장개설은 원래도 사업자등록증과 신분증, 법인인감증명서, 법인등기부등본, 인감도장 등이 필요했다. 이 서류들도 적지 않은 서류인데 소득을 증명하는 서류까지 내라고 하는 것은 과한 처사가 아니냐는 것이다.

특히 사업초기 일정 계약사항이 없는 법인은 사업자등록증이 나오기 위해서 필요한 임대사업장의 임대비를 비롯한 기타 경비를 대표 개인 통장이나 현금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한편, 은행원의 말대로 개인 역시 입출금 급여통장을 만들려면 명함이나 재직증명서,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 등을 제출해야하고 아르바이트 통장을 개설하려고 해도 고용주사업자등록증, 근로계약서, 급여명세서 등 소득증빙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특히 학생, 취업준비생, 전업주부 등 특별한 소득이 없는 사람들은 "대포 통장 만들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통장 개설부터 제한을 당하니 기분이 나쁘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 금융당국이나 은행의 감독 책임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일고 있다. 이와 함께 공과금 영수증으로 개설할 수 있는 공과금 입출금 통장을 개설하라는 편법(?)에 대해 귀띔도 찾아 볼 수 있었다.

(데일리팝=정수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