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산책] 이웃과 함께 하는 따뜻한 규범을 찾아서
[법 산책] 이웃과 함께 하는 따뜻한 규범을 찾아서
  • 최영승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법학박사
  • 승인 2016.12.23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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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승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법학박사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지나가던 사제도,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여행하던 한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성경구절에 나오는 것이지만 종교를 떠나서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는 이야기이다. 오늘날 많은 국가들이 이를 본 따 '착한 사마리아인법'(The Good Samaritan Law)이라고 불리는 구조불이행죄를 도입하여 제재를 가하는 추세에 있다. 긴급한 위험에 처한 사람에 대하여 구조의무는 없지만 구조할 수 있음에도 구조하지 않는 자를 처벌하는 법이다.
 
얼마 전 우리에게도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였으나 악한 사마리아인이라는 씁쓸한 기억만 남겼다. 택시기사가 심장마비로 의식을 잃었음에도 승객인 부부는 못 본체 하고 트렁크에서 골프백을 꺼내 다른 택시를 타고 현장을 떠난 것이었다. 택시기사는 길 가던 사람의 신고로 병원에 옮겨졌으나 끝내 숨지고 만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TV 뉴스를 통하여 이러한 사실이 방영되면서 그 동안 종교적, 도덕적으로만 이해되어 오던 성경 속의 사마리아인이 급속히 수면위로 떠오르는 계기가 되었다. 어느 국회의원에 의하여 구조불이행죄를 신설하는 법안도 발의되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현대산업사회의 이면에 가려진 비인간화에 대한 반성과 시대에 맞는 새로운 윤리관의 확립이 우리사회에 필요함을 말해준다.

알려진 대로 프랑스, 독일 등의 자유주의 국가 뿐만 아니라 러시아, 헝가리 등의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법률로 두고 있다. 특히 이 법을 ‘사랑조항’이라고 부르는 독일의 예에서 보더라도 법과 윤리는 별개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인간과 윤리를 외면한 법이야말로 실효성이 없음을 깨닫게 해 준다. 강제성을 띠는 법의 속성 탓에 법이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전통적 사고보다는 도덕도 법에 의할 때 더 잘 실현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법이 도덕의 최대한이라는 사고가 재조명받는 까닭이기도 하다.

온갖 국가사회적 적폐로 인하여 우울하게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길목에 서 있다. 법학자 이전에 한 이웃으로서 택시기사 사건을 계기로 주변이 착한 사마리아인들로 그득 찼으면 하는 소박한 꿈을 가져본다. 그것이 도덕의 명령에 의하든 혹은 법의 명령에 의하든 간에.

최영승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 법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