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트렌드] '유산슬・카피추'...'본캐' 대신 '부캐'가 뜨는 요즘 미디어 트렌드
[이슈&트렌드] '유산슬・카피추'...'본캐' 대신 '부캐'가 뜨는 요즘 미디어 트렌드
  • 이지원
  • 승인 2020.03.19 09: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마미손의 '소년점프' 뮤직비디오에서 캡처)

지난 2018년에는 분홍색 복면을 쓴 래퍼 마미손(MOMMY SON)이 다방면으로 활약했다. 엠넷의 힙합 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777'에 출연했으나 초반에 탈락의 쓴맛을 봤던 마미손은 1등 못지 않은 화제성을 가졌다. 2018년 '소년점프'를 시작으로 2019년에는 한 차례의 정규앨범을 발매했으며, 최근 들어서도 여러 가수들의 피처링을 도맡는 등 끊임없는 인기를 맛보고 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순위권에 속하지 못한 이들은 금세 대중들의 기억에서 지워진다. 그도 그럴 것이 탈락이 되지 않아야 촬영이 계속되고, 시청자들의 눈에 드는 시간도 길어지니 당연한 수순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 슈퍼스타 K 시리즈에서 "췤"을 외치던 장문복과 남다른 소울로 보고 싶다를 열창하던 그렉이 긴 시간이 지난 후까지 시청자들에게 환영받는 이유는 독특하고 차별화된 콘셉트가 있었기 때문이라 풀이된다.

마미손 역시 독특한 콘셉트를 갖고 있다. 사실 콘셉트라고도 할 수 없다. 마미손이라는 캐릭터가 그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마치 SNS에서 사람들이 본인의 실제 계정(본계)이 아닌 또 다른 부계정(부계)를 갖고 있듯, 마미손 역시 비슷하다. 자신의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마미손이 래퍼 '매드클라운(본명 조동림)'이 아니냐는 추측을 던졌지만 마미손은 단호하게 이를 부인했다. 사실상 속이는 사람만 있을뿐, 속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모두가 이 상황에 몰입해 두 사람이 동일인물이 아니라며 해명까지 하고 나선다. 마미손이 깔아놓은 판에 모두가 합류해 이를 즐기고 있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사진=놀면 뭐하니? 채널의 '[Official MV] 유산슬 "사랑의 재개발"' 영상에서 캡처)

2019년 MBC 연예대상 신인상은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에게 돌아갔다. 유산슬은 MBC의 '놀면 뭐하니?'의 '뽕포유' 프로젝트에서 시작된 인물이다. 누가 봐도 유재석이지만 자신은 MBC 소속의 신인 가수 유산슬이며, 소속사 사장은 김태호 PD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또 이 연기에 속아넘어가는 '척'을 한다. 

유산슬은 뽕포유 프로젝트 앨범의 타이틀곡 '합정역 5번 출구'를 향한 인기가 계속되자 '사랑의 재개발'도 잇달아 발매했으며, 실제 행사는 물론 단독 콘서트까지 해냈다. 그런가 하면 본캐인 유재석도 받지 못했던 신인상을 받기도 했다. 그 시기 가장 핫했던 장성규와 어깨를 나란히 했으니, 그때 당시의 인기는 말하지 않아도 알 만하다. 

부캐의 인기에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 역시 유산슬을 기점으로 한 차례 인기의 변환점을 맞았다. 시청자들의 열렬한 반응이 이어지자 '유고스타'나 '라섹', '유르페우스' 등 끝없는 부캐가 생성되고 있다. 그야말로 부캐로 '제 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사진=유병재 채널의 '(꿀잼) 창조의 밤 "표절제로" (with 카피추) 1부' 영상에서 캡처)

최근 뜨고 있는 부캐는 단연 '카피추'다. 우연히 주운 기타로 소소하게 노래하며 살아가는 산남자를 표방하는 그는 사실 속세에 찌들어 유명 노래를 절묘하게 표절한다. 산에서만 살아 유행을 모른다고 하지만 최신 유행하는 가요와 유명한 동요 등 그 종류를 가리지 않고 표절하며 시치미를 뗀다.

표절에 예민한 시청자 역시 카피추의 거짓말에 속아넘어간다. 카피추 유튜브 채널의 댓글에는 "처음 듣는 노래"라거나 "카피추 님 천재"라며 칭송하기도 한다. 심지어 노래의 원작자가 댓글을 달아도 "그냥 넘어갑시다"라며 웃는다. 원작자 역시 가볍게 넘긴다. 

카피추의 본캐는 개그맨 추대엽이다. 개그 프로그램이 막을 내리며 그가 설 자리조차 없어졌다. 긴 세월 동안 무명생활을 이어왔던 개그맨이 본캐였던 그는 새로운 부캐로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야말로 '대박'을 친 것이다.

EBS가 만든 2019년 최고의 인기 캐릭터인 '펭수' 역시 냉정하게 생각해 본다면 누군가의 부캐다. 아이돌을 꿈꾸며 남극에서 대한민국을 찾아온 10살 펭귄이라는 콘셉트의 캐릭터로 자신을 소개하는 펭수는 그 세계관 또한 세밀하다. 하지만 펭수의 인형 탈 속에 사람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은 펭수의 존재를 인정한다. 펭수의 정체가 누구냐는 질문에 "눈치 챙겨, 펭수는 그냥 펭수"라며 과감히 맞선다. 펭수 역시 자신의 존재는 펭귄이라고 주장한다. 

(사진=자이언트 펭TV 채널의 '[단독] 펭귄 의혹 전격 해부! ' 영상에서 캡처)

부캐의 경우 어디에나 스며들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EBS에서 태어난 펭수가 놀면 뭐하니?에 출연하고, MBC의 유산슬이 TBS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식이다. 기존의 예능 프로그램 속 콘셉트는 해당 프로그램에서 사용할 수 있는 콘셉트에 불과했다면, 부캐의 경우 하나의 캐릭터를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기획되고 만들어진 농담의 일종이다. 방송 기획자들이 판을 깔면 시청자들은 기꺼이 그 판에 동참한다. 부캐를 연기하면서도 그 속에서 찾을 수 있는 본캐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재미 요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누군가가 특징을 찾아 동일인물이 아니냐는 이의를 제기하면 다른 이들은 한 마음으로 부캐의 편을 든다. 

이밖에도 최근 '팬슈머'의 열풍도 부캐의 인기에 한 몫 했다는 반응이다. 부캐의 팬으로서 놀이에 동참하고 같은 팬들과 캐릭터를 키워나가고, 이를 보며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물론 다양한 캐릭터를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이해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카피추가 당당하게 표절을 하는데도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분명히 유재석인데 왜 자신의 이름을 숨기는지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이 된다. 하지만 이를 위한 시간이 쌓일수록 더 큰 몰입감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부캐라는 개념 자체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데일리팝=이지원 기자)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