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이거 아니?] 반항적인 자아 표현의 역사를 지닌 '닥터마틴(Dr. Martens)'
[브랜드 이거 아니?] 반항적인 자아 표현의 역사를 지닌 '닥터마틴(Dr. Martens)'
  • 이지원
  • 승인 2020.03.2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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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를 떠올리면 단번에 생각나는 브랜드가 있다. 독일의 부츠 브랜드 '닥터마틴(Dr. Martens)'이 그 주인공이다.  

국내에서는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주연이었던 배우 구혜선이 신고 나와 인기를 끌었으며, 그 후 유명 연예인들의 사복 패션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자꾸 눈에 띄자 탐을 내는 소비자들 역시 많아졌다. 비싼 가격대에도 불구하고 하나둘 사모으는 이들이 늘어나며 매니아층과 고정 소비도 두텁다. 

소비가 계속되자 국내에서도 인기 있는 브랜드로 자리잡게 됐다. 최근에는 JTBC에서 방영하는 인기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주연인 조이서(김다미 분)이 닥터마틴의 신발을 매치하며 다시 한 번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태원 클라쓰는 불합리한 세상 속, 고집과 객기로 뭉친 청춘들의 '힙'한 반란을 다룬 이야기다. 우연일까? 이태원 클라쓰의 이러한 내용은 닥터마틴의 목표와도 완벽하게 부합한다. 반항적인 자아 표현의 역사를 지닌 영국의 부츠 브랜드, 닥터마틴을 알아보자.

반항적인 자아 표현의 역사를 지닌 '닥터마틴(Dr. Martens)' (사진=닥터마틴 공식 홈페이지에서 캡처)

의사가 만든 부츠, 닥터마틴

닥터마틴(Dr. Martens), 그 이름과 같이 해당 브랜드는 의사인 클라우스 메르텐스(Klaus Maertens)에 의해 만들어졌다. 메르텐스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의사로 복무했다. 이때 마틴은 메르텐스의 이름을 영어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예쁜 만큼 발이 아픈 것은 감수해야 한다며 명성이 자자한 닥터마틴이지만, 사실 처음은 발이 편한 신발로 명성을 쌓았다.

1945년의 어느 날, 스키를 타던 메르텐스는 발을 다치게 된다. 군인 신분이었던 메르텐스는 어쩔 수 없이 군화를 신고 활동해야 했지만, 아픈 발목에 딱딱한 밑창의 군화는 메르텐스의 통증을 악화시켰다.

불편함을 느낀 메르텐스는 통증을 줄이고자 기존 군화에 사용되는 딱딱한 가죽이 아닌, 편한 소재를 찾기에 나섰다. 이때 메르테스가 발견한 것이 '에어쿠션'이었다. 이때의 에어쿠션은 기존 군화에 발포 함성 고무를 재료로 만든 밑창으로, 기존 밑창보다 편하고 부드러웠다. 발목 역시 부드럽게 감싸 주기 때문에 편안한 착화감을 제공했다.

군대에서 버려진 재료들을 활용해 만들어진 초창기의 닥터마틴 (사진=닥터마틴 공식 홈페이지에서 캡처)

마틴은 전투에서 구출된 구두 수선공의 구두골과 바늘을 사용해 테스트용 신발을 만들었고, 오랜 친구이자 기계 공학자인 헐버트 펑크(Herbert Funk) 박사에게 보여 주게 된다.

이후 1947년부터는 손을 잡고 동업을 시작하게 된 둘은 그들만의 에어쿠션을 부착한 신발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둘의 신발은 군대에서 버려진 재료들을 활용해 만들어졌다.

밑창의 고무는 독일 공군의 비행장에서, 신발 끈을 넣는 구멍인 '아일렛'은 군용 재킷에서 떼어냈고, 가죽은 군장교들이 입는 바지를 사용하는 식이었다.

1952년부터는 뮌헨에 공장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신발을 생산했다. 딱딱했던 워커와 달리 발이 편안하고, 내구성 역시 뛰어난 둘의 에어쿠션 워커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졌다.

가격마저 저렴해 초기의 닥터마틴은 건설이나 공장 노동자들이 선호하곤 했다. 하지만 패션성은 떨어졌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로부터 외면받게 됐다. 

거리문화를 대변하는 문화의 아이콘이 된 닥터마틴 (사진=닥터마틴 공식 홈페이지에서 캡처)

1960, 진정한 '닥터마틴'의 시작

1960년대에 접어들자 닥터마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시장의 한계를 느낀 그들은 국제 무역 잡지에 광고를 게재했다. 이때 영국의 회사 '그릭스(Griggs)'는 신발 무역 잡지를 보던 중 혁신적인 에어쿠션 워커에 대한 독일의 광고를 보게 됐다.

에어쿠션 워커를 마음에 들어했던 그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릭스는 바로 에어쿠션 워커에 대한 독점 라이센스를 획득했으며, 닥터마틴이라는 브랜드 명칭을 만들고 몇 가지의 주요 사항들을 변경해 생산하기에 나섰다. 

기존 제품에 노란색 스티치를 넣어 독특함을 더하고, 둥글지만 심플한 앞코와 에어쿠션 밑창에 '에어 웨어(Airwair)'라는 상표를 붙였다. 브랜드 이름인 닥터마틴과, 그들의 슬로건 'With Bouncing Soles'도 새겨넣었다. 1960년 4월 1일, 닥터마틴의 첫 번째 부츠가 탄생했다. 부츠가 탄생한 날짜에서 이름을 딴 '닥터마틴 1460 8홀 부츠', 지금까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닥터마틴의 시그니처 제품이 출시된 것이다.

마침 이 시기는 전례 없는 변화의 물결과 문화 격변, 사회 혁명의 시기였다. 이런 급진적인 분위기 속에서 사치스럽고 이국적인 패션이 주를 이뤘지만 닥터마틴은 항상 규범에 반대하며 사회에 반항했다.

저렴하고 내구성이 뛰어난 닥터마틴의 신발은 가난한 영국의 뮤지션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초기 다문화 시기에 영국 노동자 계층을 옹호한 스킨헤드들에 의해서 급속도로 퍼져나간 닥터마틴은 얼마 후 전설적인 록 밴드 'The Who'의 기타리스트 피트 타운센트가 닥터마틴을 신고 무대에 올라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게 됐다.

이들에게 닥터마틴은 주류에 대한 반항이자 자유, 청춘의 의미였다. 이에 1960년대 후반부터 닥터마틴은 거리문화를 대변하는 하나의 문화 아이콘이 됐다.

닥터마틴 1460 8홀 제품 (사진=닥터마틴 공식 홈페이지에서 캡처)
현재까지도 다양한 라인업으로 판매 중인 닥터마틴 1460 8홀 제품 (사진=닥터마틴 공식 홈페이지에서 캡처)

197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영국 펑크록 그룹과 뉴웨이브 뮤지션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닥터마틴은 1980년대 중반부터 미국시장에 진출해 호응을 얻었다. 이후 1990년대부터 그런지가 세계적인 주류 음악이 되면서 닥터마틴 또한 전성기를 맞았다. 그런지와 브리티시팝 음악인들 사이에서 1460부츠는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잡았고, 닥터마틴 역시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영국의 자유분방한 문화를 대변하는 브랜드가 됐다.

이후에는 클래식을 유지함과 동시에 다양한 디자이너와 브랜드, 스타들과의 컬래버레이션을 펼쳤다. 다양한 협업을 펼쳐도 그 속에 자리한 닥터마틴의 뚜렷한 정체성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흔든 것이다.

올해로 60주년을 맞은 닥터마틴은 여전히 반항하는 이들에 응원을 던진다. 최근에도 관련 캠페인을 진행하며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역경과 부조리에 반항하는 이들을 응원하고 있다.

최근 진행한 글로벌 캠페인 'Tough As You(당신처럼 강하다)'는 닥터마틴 고유의 반항적인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바탕으로 삶의 고난과 역경을 극복해온 세계 각국의 닥터마틴 피플의 이야기를 조명하고 있다. 각자의 시련을 극복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 스토리와 함께 닥터마틴을 신은 사람들의 강인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에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여전히 그들을 향해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고 있다.


(데일리팝=이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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