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트렌드] 닥나무 줄기·사과 껍질로 만드는 가죽? 요즘 패션 트렌드는 '비건 가죽'
[이슈&트렌드] 닥나무 줄기·사과 껍질로 만드는 가죽? 요즘 패션 트렌드는 '비건 가죽'
  • 이지원
  • 승인 2020.06.10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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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10월 명품 브랜드 구찌의 '모피 제품 생산 중단'을 선언했다. 구찌를 시작으로 캘빈 클라인, 보스, 샤넬, 버버리, 지미추, 톰포드 등의 내로라하는 명품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모피 제품을 만들지 않겠다는 '퍼 프리(Fur Free)'를 선언했다. 심지어 모피 제품으로 유명세를 탔던 베르사체까지 퍼 프리를 약속했다. 

패션업계가 이러한 운동을 시작하게 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모피 제품의 비인도적인 모습에 관심을 가진 한편, 지속 가능한 '비건 패션' 트렌드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거의 비건 패션은 '모피를 쓰지 않는 것'이라는 근본적인 방안에 그쳤지만, 최근 비건 패션의 트렌드로는 닥나무 줄기나 사과 껍질 등으로 재활용해 만든 '비건 가죽'이 각광받고 있는 추세다. 석유 부산물이 포함되지 않은 것은 물론 식물 섬유질을 기반으로 해 생분해가 가능해 장기적인 환경 보호 효과가 있는 것은 물론, 동물권 단체인 PETA로부터 비건 제품 인증까지 출시되며 비건 패션을 위한 소비자들의 선택권까지 확장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비건 가죽이 등장하며 새로운 비건 패션의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 (사진=피나텍스 공식 홈페이지)

비건패션이란 엄격한 채식주의자를 일컫는 '비건(vegan)'에서 비롯됐다. 가죽과 털 등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지 않은 패션 아이템을 통칭하는 말로, 최근에는 식물 섬유질을 기반으로 한 가죽을 만드는 데까지 그 범위가 확대됐다. 

비건 가죽이라는 말에 '베지터블 가죽'을 떠올렸다면 큰 오산이다. 베지터블 가죽이란 소가죽을 식물에서 추출한 '탄닌'으로 무두질한 가죽을 의미하며, 식물로 만든 비건 가죽과는 거리가 멀다. 

과거에는 화학 소재로 만든 인조 가죽, 일명 '레자'가 비건 가죽의 전부였다. 하지만 석유 부산물인 PVC로 만들어지는 인조 가죽은 환경에 악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이에 최근에는 다양한 식물성 재료로 만드는 비건 가죽들이 주목받으며 패션 업계를 다시 한 번 뒤흔들고 있다. 가죽 생산으로 인한 가혹 행위는 줄이고, 가죽 특유의 고급스러움까지 지킬 수 있어 패션업계는 비건 가죽에 주목하고 있다.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비건 가죽은 파인애플의 섬유질로 만든 '피나텍스(Pinatex)'다. 피나텍스를 개발한 것은 15년 동안 가죽 수입 회사 소속의 가죽 제품 전문가로 일했던 영국 기업 어내너스 아남(Ananas Anam)의 창립자 카르멘 히요사(Carmen Hijosa)다. 

그는 필리핀에서 대규모로 경작되는 파인애플과 버려지는 부산물을 목격한 후 파인애플 줄기가 질기고 강한 섬유질을 갖고 있음에 집중했으며, 추가적인 경작이 필요하지 않음에도 썩은 후 버려지던 파인애플 줄기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카르멘 히요사는 버려지던 파인애플 줄기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비건 가죽을 선보였다. (사진=피나텍스 공식 홈페이지)

이렇게 개발된 것이 피나텍스로, 겉껍질을 벗기고 끈적이는 성분을 제거 후 숙성 및 압축하는 과정에서 방화, 방수, 내구성 등의 기능을 더해 완성된다. 피나텍스 1㎡엔 파인애플 15개 분량에 해당하는 480여 장의 잎사귀가 사용되며, 해마다 전 세계에 버려지는 1300만 장을 모을 경우에는 5억 5000만㎡의 섬유를 뽑아낼 수 있다.

유해한 화학 물질이나 동물성 제품을 포함하지 않은 천연 폐기물로 만들어진 것은 물론 최근 유럽 유해물질 측정 기준 테스트인 'OEKO-TEX'를 통과한 친환경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현재 피나텍스 소재는 푸마(PUMA)나 캠퍼(CAMPER)에 납품되며 소비자들과 만나는 날을 고대하고 있다. 

이밖에도 이탈리아의 와인 생산 기업 '비제아(VEGEA)'는 와인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포도껍질과 씨, 줄기 등의 불순물을 모아 만든 와인 가죽을 선보였다. 재료를 모아 건조와 압축의 과정을 거쳐 붙인 뒤 섬유질과 기름을 짜내 가공하는 와인 가죽은 일반 가죽과 다름없는 내구성을 자랑하며 눈길을 끈 바 있다. 

더불어 미국의 바이오기업 '볼트스레드(Bolt Threads)'는 버섯의 균사체를 활용해 만든 '마일로(Mylo)'를 선보였으며, 멕시코 출신의 두 사업가는 선인장 가죽 '데세르토'를 선보인 바 있다.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비건 가죽으로 만들어진 제품을 만나볼 수 있게 됐다. (사진=타미힐피거)

최근에는 다양한 패션 업계가 식물을 기반으로 한 가죽을 활용한 제품들을 출시하며 비건 가죽으로 만들어진 제품을 국내에서도 가깝게 만나볼 수 있게 됐다.

한섬이 수입·전개하는 타미힐피거는 동물의 가죽이나 털 대신 합성 피혁·과일 껍질 등 대체 소재로 만든 '비건 가죽'으로 만든 애플스킨 스니커즈를 선보이며 '그린슈머'의 눈길을 잡았다.

PAPPER는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폐기되는 과정까지 환경에 도움이 되기를 목표로 하는 브랜드다. 나무를 사용해 가죽을 만들고, 얇은 특수 코팅을 통해 가죽 제품임에도 물에 강한 생활방수 제품을 만들었다. 한지의 주재료인 닥나무 줄기로 제품들을 만들어 항균까지 챙긴 것은 물론 무게까지 가볍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지갑과 파우치 등 실용성이 높은 제품을 만들어 환경 오염의 부담을 줄이고 있다. 

닥나무 줄기를 활용한 비건 가죽으로 만든 노트북 파우치 (사진=PAPPER 공식 홈페이지에서 캡처)

국내 기업인 한원물산에서는 가죽대체 소재를 지향하며 닥나무 껍질로 만든 한지에 면 등을 접합하고, 특수코팅 등의 공정으로 식물성 가죽인 '하운지(HAUNJI)'를 개발했다. 2015년도에 만들어진 하운지는 쉽게 찢어질 수 있는 한지의 단점을 보완해 내구성과 신축성을 구현하여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강한 내구성과 기능성을 지닌 하운지는 1% 미만의 폐기물 발생량으로 환경을 지키고 있으며, 생분해는 물론 소각과정에서도 독성물질 발생이 거의 없어 패션업계와 자동차 업계 등 각 업계에서는 해당 소재에 주목하고 있다. 

가방 브랜드인 '르 마스크(Le masque)'에서는 하운지를 이용한 생리대 보관이 가능한 파우치를 만들었다. 해당 파우치는 인체에 무해한 제품으로 물이 튀어도 안전하고, 물세탁과 낮은 온도에서 다림질도 가능하다.


(데일리팝=이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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