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 인터뷰] 프로세입자 박윤선 작가 "혼자 산다는 것 오롯이 자신 삶 책임지는 것"
[POP 인터뷰] 프로세입자 박윤선 작가 "혼자 산다는 것 오롯이 자신 삶 책임지는 것"
  • 전소현
  • 승인 2020.09.2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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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산다는 것의 첫 시작은 나만의 공간을 구하는 것이다. 처음 독립을 시작해 집을 계약하고, 막 자취를 시작한 혼족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될만한 책이 있다. 바로 프로세입자 박윤선 작가의 "내 집은 아니지만 내가 사는 집입니다(2018)"이다. 나의 월급과는 다른 세상인 것 같은 서울의 집값 앞에서 세입자로 약 16번째 이사를 하며 혼라이프를 영위하고 있는 박윤선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진=박윤선 작가)
(사진=박윤선 작가)

Q. 2018년 이맘때 '내 집은 아니지만 내가 사는 집입니다'를 출간하셨는데요, 벌써 2년이 지났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예전에 지인들이 "책 한 권 내고 나면 삶이 달라진다"라는 말을 하곤 했는데요. 실제로 책을 내보니 크게 달라진 점은 없네요. '본캐'인 직장인으로 돌아와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리기만을 기다리는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글쓰기를 놓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굴러가 어쨌든'이라는 제목으로 초보운전에 관한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기록해 왔는데요. 얼마 전 총 31편의 글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재미있게, 가벼운 마음으로 써보자!'라는 마음으로 도전한 연재였지만, 재미있고 가벼운 글쓰기는 아무래도 이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1년 넘게 한 주제로 글을 썼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Q.아직 책을 읽어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내 집은 아니지만 내가 사는 집입니다' 책 소개 부탁드립니다.

서울에 올라온 '지방러'들에게 이사는 숙명과도 같습니다. 저 역시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하숙집과 고시원, 기숙사, 셰어하우스 등 수많은 집을 전전하게 됐는데요. '내 집은 아니지만 내가 사는 집입니다'는 제가 겪은 총 15번의 이사와 거쳐온 16곳의 집에 얽힌 이야기를 담아낸 수필집입니다. 

짐을 다 빼낸 텅 빈 방을 보며 느끼는 복잡한 감정이라든가, 난데없이 집을 비워 달라는 집주인의 전화에 무너지던 억장 같은 것들. 집을 여러 번 옮겨 다니면서 터득한 나름의 집 고르는 기준과 1인가구를 위한 소소한 생활 팁도 들어있는 알찬 책입니다. 


발간 2년 동안 제가 가장 많이 들었던 감상평이자 개인적으로 보람찼던 반응은 "책을 읽은 후 내가 몇 번의 이사를 했는지 처음으로 세어봤다"라는 것 이었어요. 부족한 글이지만 이 책이 자신이 살았던 삶의 터전과 기억을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습니다.

(사진=박윤선 작가)
(사진=박윤선 작가)

Q. 프로세입자이신데 2년이 지난 지금 다른 집으로 히치하이킹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네, 지난해 7월에 16번째 이사를 했습니다. 이번 이사는 제게 여러모로 의미가 깊어요. 대학에 입학한 이후 10년 넘게 학교 근처에서 살았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그 동네를 탈출했거든요. 학교 주변에 살면서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이 "자취생들은 평생 학교 주변 못 벗어난다"는 속설(?)이었어요. 실제로 학교 인근에서 자취하던 학생들이 직장인이 돼도 익숙한 동네에 계속 머무는 경우가 많아 그런 말이 생긴 것 같아요. 

사실 제 지인 중에는 결혼 후 자녀가 10대가 될 때까지도 학교 인근에 살고 계신 분이 있긴 했습니다. 그 소리가 그렇게 싫으면서도 살던 동네를 못 떠나는 제가 답답했는데, 이번엔 전혀 다른 동네로 집을 옮기는 데 성공했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 대학 생활은 제 삶과 생각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요, 이번 이사를 기점으로 진정한 어른이자 직장인으로 거듭났다는 기분이 듭니다.

Q. 내 집은 아닌 내 공간에 살면서 가장 힘들거나 불편했던 점은 어떤 것이 있으셨나요?

불안감이요. 이것저것 재 볼 것도 없이 무조건 불안감입니다. 월세건 전세건 자가이건 사실 그 공간을 점유하고 거주한다는 건 같잖아요. 유일한 차이점은 내가 2년 후에도 이 집에서 계속 살 수 있느냐는 것이죠. 경우에 따라서는 2년을 다 채우지 못할 수도 있어요. 

제가 처음으로 전세살이를 했던 원룸에서는 계약 기간 2년을 다 채우지도 못한 채 쫓겨났거든요. 집주인이 돈이 없다고 건물을 팔았는데 새로운 주인이 건물을 재건축하겠다면서 모든 세입자를 내보냈어요. 그 집에 1년 반 정도 살았던 저는 그나마 양반이었어요. 알고 보니 이사해 온 지 3개월도 안 된 대학생도 있더라고요.

또 다른 불안감은 나만의 공간을 누군가 침범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사실 저는 운 좋게도 집주인의 잔소리에 시달리거나 무단으로 집에 들어온다 한 적은 없어요. 그런데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집주인이 자기 편의대로 세입자가 있는 집에 무턱대고 들어오는 경우도 꽤 있었습니다. 

이런 '일부 집주인'들의 행태를 보면 그 건물이 자신의 것이라는 생각만 하고, 세입자는 마치 공짜로 그 공간을 사용하는 것처럼 구는 것 같아요. 세입자는 돈을 주고 그 공간의 사용권을 구매한 당당하고 엄연한 권리자입니다. 집주인은 물론이고 세입자 스스로도 이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진=박윤선 작가)
(사진=박윤선 작가)

Q. 작가님에게 '혼자 산다는 것'이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자유와 책임입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혼자 사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자유입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어디든 널브러져 있을 수 있는(?) 자유! 하지만 거기엔 책임이 뒤따릅니다. 밥을 먹었으면 내 손으로 설거지를 해야 하고, 하수구가 막히거나 결로가 생겨도 해결할 사람은 나 한 사람입니다. 물론 공과금이나 관리비 같은 경제적인 부분도 100% 본인의 부담이죠. 저는 이런 책임을 '기꺼이' 지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1인가구'의 타이틀을 얻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혼자 산다는 것은 곧 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새 회사에서도,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소통이 중요하다는 말 참 많이 하죠? 미국 대통령도, 세계 최정상의 가수도 SNS로 만나볼 수 있는, 그야말로 소통의 전성시대입니다. 

그런데 다들 자기 자신과는 얼마나 소통하시나요? 저는 혼자 사는 것이, 혼자 있는 시간이 자기 자신과 소통하는 소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뭘 그렇게 소통하냐고요? 소소하게는 오늘 점심으로 무엇이 먹고 싶은가 하는 것부터, 내 삶에 닥친 이 수많은 일에 대해 내 솔직한 심정은 어떠한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같은 것까지 무궁무진하죠. 이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깨닫게 돼요. 나와의 대화를 통해 스스로를 많이 이해하면 할수록 더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Q. 자취를 갓 시작한 초보 혼족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맘에 안 드는 게 있으면 미세하게라도 고쳐보세요. 처음으로 마련한 금쪽같은 나만의 공간이지만 낡고 지저분하고 맘에 안 드는 곳도 많을 겁니다. 볼 때마다 속상해만 하지 말고 보완할 수 있는 것은 보완해보세요. 

지난해까지 제가 살던 집은 1990년대 지어진 벽돌식 건물이었어요. 장판은 찢어져 있고 화장실엔 세면대가 없었고, 베란다 창문은 바람만 불어도 떨어질 듯 덜컹거렸습니다. 그런데 전셋집이라 못 하나 맘대로 못 박고, 수리를 할 수 있다고 해도 돈이 너무 많이 들 것 같았죠. 

처음엔 한숨만 푹푹 쉬다가 안 되겠다 싶어 바꿀 수 있는 것을 찾아내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짙은 회색 대리석 무늬의 싱크대를 아이보리색 페인트로 칠하고, 세면대는 주인 아저씨께 부탁드려 새로 설치했어요. 잠금장치가 허술했던 베란다 창문에는 마트에서 각종 방범 장치를 사다가 달았고요. 집이 원래 이 모양 이 꼴이어서, 하고 포기하지 말고 자신을 위해 공간을 다듬어보세요. 대단한 인테리어보다 이런 사소한 변화가 더 안락한 집을 만들어 줄 겁니다. 

그리고 끝으로 이미 나오셨다면 어쩔 수 없지만, 가능하다면 부모님 집에 최대한 오래 지내시길 바랍니다. 집값 정말 비싸거든요. 정말이지 너무 비싸요.

(사진=박윤선 작가)
(사진=박윤선 작가)

Q. 주거 공간에 대한 기준이 나날이 바뀌고 있는데, 작가님께서 생각하는 '집'이라는 공간의 변화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렇게 변화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베란다나 테라스가 달린 작은 집들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19로 자가격리니 재택근무니 해서 온 국민이 때아닌 감방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가장 간절한 공간이 야외와 실내를 이어주는 '숨구멍' 베란다인 것 같아요. 

사실 코로나19 이전에도 저는 베란다라는 공간은 주거에 필수라고 여겨왔어요. 빨래를 널거나 식물을 키울 때, 환기를 시키고 잠시 바깥바람을 마실 때 베란다의 진가를 새삼 깨닫곤 하죠. 베란다는 단지 창문을 활짝 열어놓는 것과 엄연히 다른 고유의 존재감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더 넓은 실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베란다가 실종된 지 오래예요. 베란다는 고사하고 창문이 제대로 달린 원룸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이고, 아파트에서도 거실을 확장한다며 베란다를 다 없앴으니까요.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다른 전염병이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고, 앞으론 재택근무가 일상화할 가능성이 높다고들 하더라고요. 이런 현실을 고려해서라도 베란다가 달린 작은 집들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집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또 한 가지는 1인가구의 공간에 대한 것입니다. 막연하게 1인가구에겐 방 한 칸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아요. 

실제로 저는 방 세 개 달린 집에서 살고 있는데 오는 분마다 혼자 살기엔 너무 넓지 않냐고 물어보시거든요. 하지만 전 너무 넓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따지고 보면 1인가구나 2~3인 가구의 삶의 규모는 크게 다르지 않아요. 밥통이나 식탁, 화장실, 싱크대도 똑같이 하나가 필요해요. 

이렇듯 생활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공간을 고려하면 1인가구에게도 10평 안팎이 아닌 최소한 20평대 초반의 공간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1인가구를 대상으로 한 정부의 주거 정책을 보면 대부분이 원룸 사이즈 공급에 그치고 있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앞으로 다양한 연령, 상황의 1인가구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이에 맞는 정책과 주택이 더 많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Q. 앞으로의 계획

<굴러가 어쨌든>에서 실패했지만 다시 한 번 재미있고 가벼운 글쓰기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또 올해 코로나19로 취소된 다도(茶道)사 자격증 시험이 재개되어 내년에는 꼭 응시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충실한 생활인으로서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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