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 정체성 정립 논쟁 조짐
민주통합당, 정체성 정립 논쟁 조짐
  • 김민주 기자
  • 승인 2013.01.11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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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 내에서 당의 정체성 정립을 둘러싼 노선투쟁이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당내에서는 지난 대선을 통해 결집된 범야권의 결속력을 공고히 하면서 더욱 명백하게 보수 대(對) 진보의 대결구도를 정립해야한다는 주장과 선거공학적으로 좌편향에 치우친 것을 비판하며 민주당만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또 지난 대선을 통해 보수지형이 넓어진 것으로 확인된 만큼, 합리적 보수 진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한다는 목소리와 오히려 노동자, 서민·중산층으로부터 지지받지 못한 이유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는 자성론이 또 다른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이 같은 논쟁은 대선평가작업이 본격화할 경우 대선패배책임론을 둘러싼 공방과 맞물리면서 더욱 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차기 지도부 선출을 앞두고 논쟁은 한층 첨예해질 수 있다.

'환골탈태'의 혁신작업을 수행해야 할 차기 지도부에게는 현실성에 맞는 당 정체성 정립이 필수적이다. 또 이 정체성에 부합하는 인사가 당권에 보다 가까워질 수 있다고 봐야 한다.

▲ 민주통합당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9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권교체 실패와 노동자들의 죽음 등 모두가 부족한 저희 민주당 탓"이라며 "모든 기득권 버리고 치열하게 혁신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뉴스1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지난 9일 위원장으로 추대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번 전대의 가장 중요한 대목은 당의 정체성 (논란)"이라며 "끝장 토론을 해서라도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말하는 등 정체성 논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던 박준영 전남지사는 11일 라디오방송에서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이 자기 정체성을 확고하게 국민에게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며 "민주당이 통합이나 연대 등의 정치공학적인 접근을 하는데 너무 많은 관심을 두다보니 국민들로부터 이탈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당내 비주류 좌장격인 김영환 의원은 전날 보도자료를 통해 "그동안 민주당은 김대중 대통령이 만들었던 중도개혁주의에서 통합진보당과 진보세력을 하나의 빅텐트로 묶으려 좌편향을 했었다"며 "진보의 정체성을 가져가면서 중도를 포용할 수 있는 중도진보주의로 회귀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뉴 민주당 플랜이 필요하다. 1991년 미국 민주당의 빌 클린턴은 신민주당(New Democrat)을, 1992년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는 제3의 길을 주창하며 새로운 비전과 노선을 구체화했다"고 말했다.

이는 치열한 논쟁을 통해 민주당의 좌편향을 극복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시 비주류인 '민주당의 쇄신을 바라는 의원 모임' 소속 황주홍 의원도 이날 "마인드한, 온건한, 부드럽고 따뜻한 진보, 부드러운 개혁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대선 때 중도층이 두텁게 늘어나는 형국이 나타났다"며 "민주당이 이념정당을 지향한다면 모를까 집권을 지향하는 대중정당이라고 본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온 경로는 결코 성공적인 경로라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반면 친노(친노무현)가 주축인 주류 측은 당의 정책 노선을 정립해야한다는 것에 공감하면서도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 전체, 지난 대선 때 모였던 모든 세력의 통합 또는 힘을 모으는 형태의 야권 통합정당의 건설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우원식 원내수석부대표는 "지난 선거가 (보수 대 진보)일대일로 한 선거였고 야권 전체가 다 모인 선거였다"며 "대선에 대한 평가와 관련해서도 야권 전체의 평가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생각이고, 일대일(대결구도)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패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항상 일대일로 (선거를)할 수 있도록 야권이 분열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시각을 보였다.

우 부대표는 다만 "추가적인 지지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야권 전체는 기본적으로 하나로 묶고, 이번 선거에서 부족한 2~3%를 어떻게 더 채워나갈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전 대선후보 캠프에서 공동선대본부장을 맡았던 이인영 의원은 최근 "독일에서 슈뢰더나 라퐁텐, 영국에서 블레어나 고든 브라운, 미국에서 클린턴과 고어, 그리고 오바마로 이어지는 이런 정치혁신의 흐름들은 각기 그 나라에서 보수의 시대가 장기집권을 거치면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나타났던 정치혁명들"이라며 "우리가 이렇게 유럽과 미국에서 있었던 자유주의정당이나 진보정당의 경험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시점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비대위원장 추대가 있던 지난 9일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당 중진·원로그룹이 정대철 상임고문을 추대하려고 했던 움직임과 관련해 "지금 이 당의 위기는 새로운 세대를 전면에 내세워서 당의 가치와 문화, 리더십, 이런 것을 일신하는 것을 통해서 국민 속에서 다시 태어나야 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는 보수적 인사보다 진보·개혁적 성향을 가진 인사에게 비대위를 맡겨 당의 정체성을 정립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이 같은 정체성 논쟁을 우려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한편 손학규 상임고문은 독일로 출국하기 전 자신의 싱크탱크 격인 '동아시아미래재단' 신년회에 참석, "혁신과 쇄신이 계파 간 싸움의 구호로 전락하거나 정체성과 선명성이 국민의 삶과 무관한 주도권 쟁투의 도구가 돼서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국민은 '진보'니, '보수'니 이념의 틀 속에 갇히길 원하지 않는다"며 "계사년 뱀띠의 교훈은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가 아니라 허물을 벗고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