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소개하는 책
선생님이 소개하는 책
  • 한경화 자유기고가
  • 승인 2013.02.26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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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향과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몇 해 전 학교 도서관 서가에서 먼지를 뽀얗게 쓴 채 다른 책들 사이에 깊숙이 숨어있는 한 권의 책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못 박힌 채 퇴근 시간을 훌쩍 넘길 때까지 읽었던 책이 있었다. 조선시대 ‘책만 보는 바보’라 불렸던 이덕무와 그의 벗이었던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 박지원, 홍대용과 협객 백동수의 이야기까지 신비하면서도 맛깔스런 문체로 그려낸 18세기 조선의 이야기를 읽으며 큰 보물을 얻은 양 마냥 행복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책냄새가 참 좋았다, 또, 책장을 넘길 때 손가락에 느껴지는 종이의 바스락거림도 좋았고, 책을 다 읽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 느꼈던 알 수 없는 성취감도 참 좋았다.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부터 사면이 책으로 둘러싸인 '나만의 서재'를 갖고 싶은 소망을 가슴 가득 품고 책 욕심을 한껏 부리며 살았다.

그러다 작년에 발견한 또 한 권의 보물이 바로 ‘지식인이 서재’다. 총 429쪽이나 되는 책의 두꺼움과 우리 시대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지식인 15인의 서재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은 가슴 벅찬 흥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지식인의 서재’에는 세상과의 소통과 사회참여를 위해 노력하는 법학자 조국,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통섭되기를 바라는 자연과학자 최재천 교수를 비롯해 솟대예술작가 이안수, 시인 김용택, 북디자이너 정병규, 한복 디자이너 이효재, 사진작가 배병우, 블로거 정치인 김진애, 아트스토리텔러 이주헌, 소셜 디자이너 박원순, 건축가 승효상, 풀판문화인 김성룡, 영화감독 장진, 바이올리니스트 조윤범, 전통예술 연출가 진옥섭의 서재가 소개되어 있다.

책을 읽는 동안 그들이 책을 통해 바라본 세상의 모습,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책, 그들의 영혼을 울렸던 책, 그들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온 책들을 만나며 이덕무처럼 ‘간서치(看書痴)’-책만 보는 바보-가 되고 싶은 열망을 품게 되었다.

지루하리라 여길 수도 있는 지식인과 책 소개 이야기 같지만, 우리 시대 책벌레들의 책과 인생 이야기는 참 재미있다. 그들의 책에 얽힌 숨은 이야기들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느낌을 주며 읽는 내내 감동과 잔잔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책이 말한다. ‘서재에는 그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태어나고 만들어졌다. 삶에 위대함이 있다면 인간이 서재를 만든 것이다. 책은 그들의 삶을 유혹했고 그들은 책의 영혼을 탐닉했다. 책은 그들의 정신과 영혼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누군가의 책이 되었다’고.

‘독서는 삶이고 인생이고 과거 수 백만 년의 역사로 가는 통로이자 새로운 미래를 향해 가는 교량이다.’ 라는 한 지식인의 서재에서 나온 말은 우리가 ‘간서치(看書痴)’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말해주는 것 같아 책임감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래서 미래를 짊어지고 나아갈 우리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큰 한숨을 쉬면서도, 정작 스스로는 책읽기에 시간을 못내는 선생님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천안 동성중학교 국어교사ㆍ충청남도교육청 독서논술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