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 고령자 특화 서비스 내놔
해외에서는 다시 현금에 주목
현금없는 사회, 나아가 지갑없는 사회로의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은행권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줄어들고 있다. ATM 이용자가 감소하면서 수수료 수익이 낮아지고, 그에 따라 운영비 부담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ATM이 사라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보는 시각도 있지만, 고령자 등 취약계층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 6월까지 6년여간 국내 은행이 철수시킨 ATM은 총 1만4426개로 집계됐다.
연도별로 보면 사라진 ATM은 2018년 2102개, 2019년 2318개, 2020년 2770개, 2021년 2506개, 2022년 2424개, 2023년 1646개, 올해 상반기 660개였다. ATM 철수가 가장 많이 이뤄진 지역은 서울(4468개)로 전체의 31%를 차지했고 경기(2847개)와 부산(1179개)이 뒤를 이었다.
은행 지점 수도 줄어들고 있다. 같은 기간 폐쇄된 은행 지점수는 총 1003개로, 은행별로 보면 신한은행이 179개로 가장 많이 줄었고 우리은행(161개), 국민·하나은행(각 159개) 순이었다.
은행 지점이 가장 많이 폐쇄된 지역은 서울(404개)로 전체의 40.3%였고 경기(176개), 대구(70개) 등의 순으로 이어졌다.
은행권은 기계 관리나 냉난방비 등 유지 비용 문제로 ATM을 줄이고 있다고 설명한다. 현금을 사용하는 이들이 줄면서 ATM 이용자가 감소하고 이에 따라 수수료 수익도 낮아지고 있는 점도 한 몫한다.
실제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은행 영업점을 통한 대면 거래와 ATM 비중은 각각 4.1%, 11.0%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반면 입출금 거래 기준 인터넷뱅킹 비중은 83.2%로 사상 최고치로 증가했다.
그러나 은행 지점과 ATM이 동시에 줄어들고 있어 비대면 거래에 익숙치 않은 고령층 등 금융 취약계층의 편의성·접근성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강 의원은 “ATM 철수는 은행이 지켜야 할 공공성과 고령층 등 금융 소비자의 접근성을 무시한 처사”라며 “금융당국은 은행들이 점포 폐쇄 공동절차를 충실히 이행하는지 확실히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은행권, 고령자 금융소외 해소 위한 노력 기울이고 있지만…
시중은행들도 오프라인 점포·ATM을 줄이는 가운데 소외될 가능성이 높은 고령층을 위해 특화 점포 신설, 디지털 금융교육 실시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 2021년 12월 금융권 최초로 시니어 고객을 위한 디지털 맞춤 영업점을 신림동 지점으로 오픈, 현재 전국 6곳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 지점은 발행기 화면을 크게 하고 항목을 단순화한 게 특징이다. 업무별로 고유 색상을 적용한 유도선을 설치하기도 했다.
KB국민은행은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특화점포 ‘KB 시니어 라운지’를 운영하고 있다. 이 공간은 어르신이 많은 복지관을 방문해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동 점포다. 대형 밴에 탑승한 전담직원이 오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현금 및 수표 입출금, 통장 재발행, 연금수령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KB 시니어 라운지는 그동안 서울 내 고령인구가 많은 5개 행정구(강서·구로·노원·은평·중랑)를 대상으로 운영돼 왔는데 올 초 인천 5개 행정구(남동·미추홀·부평·서구·중구)로 확대했다. 이와 별개로 시니어 고객을 위한 디지털 교육 서비스도 진행 중이다.
하나은행은 시니어 특화점포인 탄현역 출장소와 광주지점 등을 활용, 디지털금융 문해교육 및 현장 실습을 지원한다. 이외에도 교육부 산하기관인 국가평생교육진흥원과 함께 디지털 금융 문해력 향상을 위한 앱과 교과서를 개발, 출시했다.
우리은행은 ‘우리 어르신 IT 행복 배움교실’을 마련했다. 우리은행이 순차적으로 개소한 ‘우리 어르신 IT 행복 배움터’에서 진행되며, 우선 서울 시내 시니어 세대 85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배움터 추가 오픈에 맞춰 교육과정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같은 특화 점포 운영, 관련 교육 서비스 등은 대개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어 고령자들의 금융 소외 문제를 완전히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있다.
디지털 결제 못하는 이들 위해
다시 현금에 주목하는 해외 국가들
해외에서는 다시 현금 사용을 유도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전만큼 현금 이용을 늘리지는 못하더라도 완전한 멸종은 막아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일례로 노르웨이의 경우 최근 금융계약법을 개정, 소비자의 현금 지불 권리를 대폭 강화했다. 노르웨이는 결제 비율이 3%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로 꼽힌다.
개정된 금융계약법은 자동판매기나 무인 가게가 아닌 모든 판매점은 현금을 받도록 의무화하고, 이를 어길시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디지털 결제가 일반화됐다고 해도 현금이 아니면 결제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아일랜드 정부도 최근 국회에 현금에 대한 접근성을 유지하기 위한 법안을 제출했다. 이 법안은 아일랜드 3대 상업은행의 ATM 수를 어느 정도로 유지할지를 재무부 장관이 정할 수 있도록 했다.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은행이 함부로 ATM을 폐쇄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세계에서 모바일 결제 보급률이 가장 높은 중국 역시 다시 현금에 주목하는 추세다. 중국의 중앙은행인 런민은행은 올 들어 현금 거부 매장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다. 현금을 쓰기 어려운 환경이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어렵게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외에도 미국, 스웨덴, 영국, 뉴질랜드 등도 현금 접근성 유지를 위한 대응 방안을 내놓고 있다. 스웨덴의 경우 ‘지급결제서비스법’ 개정을 통해 예금 규모가 700억크로나(약 9조원) 이상인 상업은행에 대해 입출금 서비스 의무를 부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