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이거 아니?]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던 조향사, 그녀의 향수 브랜드 '조 말론 런던'
[브랜드 이거 아니?]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던 조향사, 그녀의 향수 브랜드 '조 말론 런던'
  • 이지원
  • 승인 2019.09.1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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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속 한 장면 (사진=영화진흥위원회)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천재적인 후각 외에 모든 것이 결핍돼 있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는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태어날 때부터 후각이 유독 발달했던 주인공은 모든 냄새에 예민하게 반응한 주인공은 주위의 사람들은 그를 떠나 자연스레 외로워진다.

모순적이게도 천재적인 후각을 가진 그에게서는 일말의 체취마저도 느껴지지 않는다. 냄새가 있다면 사람이 되리라 믿었던 그는 매혹적인 향취가 나는 이들의 냄새를 뺏고 싶어 하며, 그로부터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일반적인 책에서 청각과 시각을 전달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후각을 전달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이 책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으며, 어디서도 본 적 없던 특이하고 파격적인 소재에 2007년에는 동명의 영화로 개봉되기도 했다. 

위 영화를 보고 허무맹랑한 생각을 한 관객 또한 있을 것이다. "저런 사람이 만든 향수는 어떤 향기가 날까?"

하지만 이는 더이상 허무맹랑한 상상이 아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향수 브랜드, '조 말론(Jo Malone)'의 이야기다.

조 말론 런던의 창립자이자 조향사였던 조 말론 역시 천부적인 후각의 소유자였다. 그녀의 후각 수준은 암 세포의 냄새까지 구별해낼 수 있을 정도였다.

실제로 개의 후각 능력을 통한 암 진단을 연구하는 영국 단체 '메디컬 디텍션 독'에서 후각 실험을 받은 결과, 그녀의 후각 수준은 '암 진단만을 위해 훈련된 개와 동등한 수준'이라고 확인되기도 했다.

각각 다른 오일이 담긴 5개의 병 중 극소량의 '아밀아세테이트'가 들어간 병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진행된 실험에서 조 말론은 10만 방울 중 단 1방울의 화학물질이 들어간 병을 찾아냈다. 일반인들은 1000방울 중 1방울이 들어간 병을 찾기에도 힘든 수준이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색깔에서 향기를 맡을 수 있으며, 사물을 향기로 표현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재능을 찾기까지 쉽지만은 않은 길이 존재했다.

천부적인 후각을 가진 조 말론의 이야기는 어떨까? (사진=조 말론 공식 홈페이지에서 캡처)

사실 조 말론의 어린 시절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행복한 향을 낸다'는 조 말론의 기업 목표와는 조금 다른 과거를 갖고 있다.

도박을 즐기던 아버지와 조 말론이 14세가 되던 해부터 신경쇠약에 시달렸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와 다섯 살 터울의 동생을 돌보는 것은 난독증을 앓던 조 말론의 몫이었다.

조 말론은 어머니의 상태가 호전되자 고향을 떠나 런던으로 이사했다. 런던 엘리자베스 거리에 있는 작은 꽃가게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조 말론은 일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오면 미용 관련책을 읽고, 어머니가 만들던 미용 크림의 제조법을 익혔다.

그녀의 천부적인 재능이 발견되고 화장품을 팔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었다. 여성 고객이 화장품을 구입하러 오면 감사의 표시로 '너트맥 앤 진저' 목욕용 오일을 작은 병에 담아 선물했다.

몇 년 후 크리스마스에는 수백 병의 오일을 만들어야 할 정도로 입소문이 퍼졌다. 부동산 감정사였던 그의 남편은 재능에서 사업 기회를 엿봤으며, 1994년 조 말론 런던이 출시됐다.

뉴욕 진출 초반, 그녀에게는 홍보를 담당하는 부서조차 없었다. (사진=조 말론 런던 공식 인스타그램에서 캡처)

조 말론은 영국 상류층이 애용하는 브랜드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영국에서 고급 주택가에 가고 싶다면 조말론 매장을 찾으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그녀는 작약이나 사과, 블랙베리, 얼그레이, 설탕 등 향수에서는 흔히 사용하지 않는 원료를 사용해 고급스러운 향을 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모두 그녀의 천부적인 후각 능력 덕분이었다.

고급스러운 향으로 사랑을 받았던 조 말론은 곧 1998년에는 뉴욕에도 발을 들였다. 낯선 곳과 새로운 고객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홍보를 담당하는 부서는 조 말론에게 없었다. 조 말론에게 홍보는 초기와도 같이 '입소문' 뿐이었다.

그녀는 뉴욕에 매장을 열기 전 모델과 가수 등 50명의 유명인사들을 찾아가 제품을 10개씩 선물했다. 집들이 선물로 사용해 달라는 명목이었다. 친구들에게는 조 말론 쇼핑맥 200개를 나눠 준 후, 쇼핑백을 들고 거리를 활보해 달라는 부탁을 남겼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뉴욕 진출 반 년 만에 조 말론은 100만 달러(한화 약 12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사람들은 걸어다니는 광고판이 됐으며, 조 말론은 자연스레 입소문을 타게 된 것이다. 

사업이 크게 성장하며 조 말론에게는 사업 파트너가 필요했다. 회사 경영과 제품 개발을 동시에 소화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당시 바비브라운과 아베다 등을 소유하고 있던 '에스티로더'에 조말론을 매각했다. 매각 이후 조 말론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했으나,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2003년 조 말론은 유방암 진단을 받게 되며 자신과의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를 원했다. 그 결과 2006년에는 자신의 모든 지분을 에스티로더에 매각하기에 이르렀다.

유능한 사원은 동료로 있을 때에는 반길 수밖에 없지만, 적으로 돌아설 경우에는 무조건적으로 경계해야 할 상대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에스티로더는 5년 동안 동종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조항에 동의하게 했다. 조 말론은 이때를 회상하며 "매일 같이 일어나자마자 향기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말하곤 한다.

그녀는 자신이 일하던 런던 엘리자베스 거리에 '조 러브스(JO LOVES)'라는 새로운 향수 브랜드를 런칭했으며, 이는 현재 영국의 런던에서만 맡아볼 수 있다. 가볍고 프레쉬하면서도 흔하지 않은 향을 담고 있는 이 브랜드는 '브러시로 바르는 향수' 등을 출시하며 여전히 독특한 행보를 걷고 있다.

조 말론의 사퇴에도 조 말론 런던은 분위기 전환을 완벽히 해냈다. (사진=조 말론 런던 공식 인스타그램에서 캡처)

조 말론 없는 조 말론?
성공적인 분위기 전환

조 말론의 사퇴에 에스티로더는 기존 에스티로더의 메이크업 부문에서 오랜 시간 일했던 셀린 루를 영입했다.

조 말론 없는 조 말론이라니, 모두가 조 말론의 실패를 예감했지만 분위기는 성공적으로 전환됐다. 셀린 루의 '프레그런스 컴바이닝 시스템'과 특별한 기프팅 시스템의 도입 덕분이다.

사실상 조 말론 런던이 국내에 출시됐을 때는 이미 조 말론의 부재가 익숙해졌을 시기였다. 조 말론이 국내에 입소문을 탄 이유 또한 셀린 루의 프레그런스 컴바이닝 시스템 덕분이다. 한 개 이상의 향수를 겹쳐 뿌리는 것을 의미하는 프레그런스 컴바이닝 시스템은 국내 향수 시장의 흐름마저 뒤바꿔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나만의 개성을 찾고 싶어 하는 국내 소비자들의 특성 덕분에 조 말론 런던의 새로운 시스템은 국내에서 찬사를 받게 됐으며, 곧 국내에서 조 말론 런던은 '레이어드 향수'로 이름을 알렸다. 현재 조 말론 향수로 조합할 수 있는 향만 하더라도 최소 400가지 이상이 된다. 즉, 이 서비스는 여타 브랜드와는 다른 조 말론 런던만의 핵심 기술이자 곧 특장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오직 나를 나에게 맞춘, 나를 위한 시그니처 향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조 말론 런던의 코롱과 홈 프레이그런스 제품은 기획 단계부터 프레그런스 컴바이닝이 가능하도록 제작되며, 어떤 향과 조합하더라도 조화롭게 어울리도록 하기 위해 원료의 개수를 제한하기도 한다.

물론 향수를 사랑하던 일부 마니아층의 소비자들은 알음알음 향수를 레이어링 후 사용하곤 했지만, 확고한 컨셉트를 지니고 나온 브랜드는 조 말론이 최초이다.

조 말론 런던은 행복한 브랜드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완벽하게 구축해 냈다. (사진=조 말론 런던 공식 인스타그램에서 캡처)

제품을 구매할 때 증정하는 박스 또한 허투루 제공하지 않는다.

조 말론 런던을 대표하는 크림박스는 검은색의 리본을 묶어 멋스러움을 더했으며, 그 속 검은색의 완충제에는 조 말론 런던의 시그니처 향인 '라임 바질 앤 만다린' 향기를 입혀 고객에게 전달한다.

선물 상자에도 정성을 입혀 전달하는 조 말론 런던은 선물하는 즐거움을 선사하며, 이러한 철학은 곧 조 말론 런던을 '선물의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만들었다. 이처럼 조 말론은 향수 하나를 사더라도 나를 위한 선물이라는 인식과 행복한 브랜드 이미지를 완벽하게 구축해 낸 것이다. 

 

(데일리팝=이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