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해양조, 여객선 침몰로 '대자보' 마케팅 접어…
보해양조, 여객선 침몰로 '대자보' 마케팅 접어…
  • 김유현 기자
  • 승인 2014.04.25 10:04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자보' 마케팅…대학생들 '분노'케 했던 이유?
학생들 의견 교류의 장…기업의 부적절한 마케팅 수단은 근절 돼야

보해양조(대표이사 유철근)가 대학생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대자보’를 활용해 신제품 마케팅에 나선데 대해 일각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보해양조 측은 마케팅을 진행함에 있어 소비자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한 수단으로 대자보를 선택했다는 입장이지만, 일부 대학생들은 학생들의 의견을 게시하는 대자보의 의미를 훼손시켰다며 반발하고 있다.

보해양조는 최근 국민대학교, 성균관대학교 등 수도권 대학가와 전남지역 일부 대학가에 신제품 ‘아홉시반’ 홍보 대자보를 붙였다. 언뜻 보면 연애, 취업 등의 애환을 담은 내용에 걸음을 멈춰선 대학생들은 마지막 줄에 ‘주(酒)문학부 OOO’를 보고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대자보 내용은 “아홉 시 반이네요. 그래요. 저 좀 마셨어요. 그런데 종성오빠, 저는 그냥 오빠가 좋았어요. 오빠가 솔직히 말해서 완전 훈남은 아니잖아요?전 그냥 오빠가 춥지 않냐고 커피 사주고 술 취했다고 집에 데려다 주는 모습에 설렜고 새벽 두 시에 ‘자니? 뭐해?’에 김칫국 한 사발 들이켰어요. 그런데 오빠 이슬언니랑 CC라면서요? 저 한마디만 할게요. 그냥 제가 오빠 많이 좋아했다는 것만 알아주세요. 그리고 저 오빠 어장 속 몇 번 물고기에요? ‘아홉 시 반’에 만나서 얘기 좀 해요”로 적혀 있다.

남자가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고백하는 버전도 있다.

이는 “아홉 시 반이네. 그래. 나 좀 마셨다. 그런데 나는 그냥 네가 좋았어. 근데 솔직히 네가 진짜 예쁜 건 아니잖아. 난 네가 나한테 오빠 할 때 콧소리가 좋았고 맛있는 거 쏘라고 총총 뛰는 게 귀여웠고 오밤중 선톡에 김칫국 한 사발씩 들이켰다. 근데 너 뭐 2년 사귄 남친 있더라? 내가 너한테 쓴 돈이 아깝거나 네가 어장관리 했다는 게 아니고 그냥 진짜 좋아했다고”라며 앞서 대자보의 답글 형식이다.

웃음을 머금고 보던 학생들은 대자보 마지막 “아홉 시 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酒)문학부 OOO”로 끝나는 문구에 비로소 주류광고임을 깨닫는다.

▲ 보해양조가 ‘대자보’를 활용해 신제품 마케팅에 나서고 있지만 상당수 대학생들은 학생들의 의견을 게시하는 대자보의 의미를 훼손시켰다며 반발하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이에 일부 학생들은 ‘참신하다’ 혹은 ‘기발하다’며 호평을 내놨지만 전체적인 의견은 그렇지 못했다.

대자보는 학생들 '의견 교류의 장'임에도 불구…상업적 이용?

상당수 학생들은 대자보 의미를 퇴색시켰다며 불쾌감을 보였다. 대자보는 지난해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과 함께 학생들의 생각을 교류하는 상징적 수단으로 떠올랐다.

이에 많은 대학생들이 ‘대자보가 상업적 마케팅에 악용됐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한 학생은 “기업들이 대자보까지 점령할 줄은 몰랐다”며 “학교마저 대학의 돈벌이 창구가 돼 가고 있는 것 같다”고 보해양조의 행태를 꼬집었다.

또 다른 학생은 “상업 마케팅에 굳이 대자보를 이용해야 했나?”며 “대자보는 대학에서 보여주는 지성이라 생각했는데 그 의미가 퇴색된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런 비난에 대해 보해양조 관계자는 “신제품 아홉시반의 컨셉은 ‘진짜 이야기’로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봄직한 이야기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진행된 전략이었다”며 “전국 주요 30여 개 대학교 캠퍼스 주변으로 게재한 바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당분간 대자보 마케팅을 철수할 계획은 없다’고 앞서 일부 언론에 밝힌 것에 대해서는 “현재는 세월호 사고 이후 어떠한 마케팅 전략도 시행하지 않고, 전사적으로 애도 기간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히며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여지던 해당 논란의 답을 대신했다.

덧붙여서 “대자보와 관련된 향후 계획 또한 없다”며 “대자보 마케팅과 관련하여 부정적인 의견 또한 소중히 반영하도록 하겠다”고 해명했다.

한편, 보해양조의 야심작 ‘아홉시반’은 도수를 낮춰 판매율과 영업이익을 높이려는 사측의 얄팍한 상술이라는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다.

‘아홉시반’의 알코올 도수는 17.5도다. 도수가 1.5도나 낮아지면서 들어가는 주정의 양이 줄어 원가가 10원 가량 절감됐지만 가격 변동은 없었다. 용량이 15㎖ 늘었을 뿐이다.

보해양조 측은 원가가 낮아진 만큼 용량을 늘렸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원가 보전 차원에서 소주잔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15㎖를 늘렸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말이 나온다.

지난해 4.1%의 점유율로 소주시장 5위를 차지한 보해양조는 신제품 ‘아홉시반’의 대대적 홍보를 시작으로 전라남도에서 전국 각지로 영업망을 넓히겠다는 포부를 내놨다.

하지만 ‘대자보 마케팅’과 영업이익만을 늘리려는 보해양조 측의 욕심에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