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숭갤러리 이행로 관장 "미술은행으로 미술문화 대중화 이끌 것"
동숭갤러리 이행로 관장 "미술은행으로 미술문화 대중화 이끌 것"
  • 정단비 기자
  • 승인 2015.04.24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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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미술은행 설립 후 30년..혁신도시로 퍼지는 미술품 열기

▲ 동숭갤러리 이행로 관장
국내 최초로 미술은행을 개설해 미술 대중화에 앞장 서고 있는 동숭갤러리가 벌써 개관 40년을 맞았다.

지난 1985년 3월 한국미술애호가협회 창립과 더불어 미술은행을 개설한 동숭갤러리는 한국 현대미술의 선구자적 역할을 하고 있는 김구림 작가의 대표작을 비롯해 한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근·현대작가의 작품을 다량 확보하고 있으며 소장작품만 2만5000점에 달한다. 고객층도 구청, 국회 등 국가 공공기관부터 대학병원, 호텔, 대기업, 외국계 회사, 로펌 등으로 다양해졌다.

동숭갤러리가 개관한 지난 1975년부터 현재까지 역사를 함께 하고 있는 이행로 관장은 "그림은 보는 것이 교육"이라는 철학을 전하며, "일반 대중들도 쉽게 미술품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 보니 미술은행을 설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철학처럼 미술은행은 미술품을 임대하는 운영 시스템으로 그림이나 조각품을 일정 비용으로 원하는 기간동안 빌려주는 시스템을 구축해 미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다양하고 풍요로운 감상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관장은 "처음 미술은행을 시작할 때는 50% 정도는 작가에게 일정 수수료를 주고 위탁을 받고 나머지는 컬렉션으로 운영을 했다"며 "시간이 지나다 보니 작가들 작품은 신경도 쓰이고 미술품이 파손이 될 경우 등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면서 대대적인 컬렉션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미술은행을 이용하면) 계절마다 작품을 변경해주거나 교체 요구가 있는 작품은 언제든지 바꿔줘야 하기 때문에 작품 보유가 많을 수밖에 없다"며 "현재 많은 갤러리들이 미술은행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보유 작품수가 적어 어렵다. 운영한 역사가 가장 오래된 만큼, (우리 갤러리가) 국내 미술은행 중 소장작품수가 가장 많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미술품을 구입하게 되면 추후 작품성의 인정 가치나 주변 환경의 어울림 등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하는 것이 많지만, 미술은행을 통해 작품을 빌리는 것은 구입 보다는 부담감이 적다"고 설명하며 "노하우가 있다보니 공간의 색상, 성격 등을 파악해 작품을 선정하면 거의 불만이 없다"고 미술은행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관장은 '문화에 대한 안목은 한번 높아진 경우 낮아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전하며 "한번 그림이 걸린 자리에는 계속 그림이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한다.

문명의 혜택을 받다가 갑자기 받지 못하면 불편함을 겪는 것처럼 문화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혁신도시로 이전 공기관 관심↑
미술은행 활용한 사회공헌 계획도

같은 맥락으로 최근 혁신도시로 이전한 공공기관들이 미술은행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이 관장은 "공공기관들이 지방으로 가면서 넓은 부지에 건물을 짓고 디자인도 공모를 통해 멋있게 짓고 있으나, 주변 환경이나 실내는 너무 황량했다"며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는 곳이다 보니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들 수 있는 미술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전했다.

실제 혁신도시로 이전한 공공기관들은 직원들과 지역주민들의 문화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문화 공간 확립에 힘을 쏟고 있다. 4월 기준으로 혁신도시로 이전하는 154개 기관 중 완료된 공공기관만 해도 104개에 육박한다.

집과 자동차를 비롯해 생활가전까지 '렌탈 시대'에 도래한 지금 미술은행의 시장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만한 대목이다. 건축비용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미술작품 설치에 사용하거나 문화예술진흥기금을 출연해야하는 문화예술진흥법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 동숭갤러리 이행로 관장이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한편, 혁신도시와 더불어 미술은행의 수요가 많은 곳은 병원이라고 한다.

이 관장은 지난해 서울대학병원 본관, 어린이병동 등에 228점의 그림을 대여했다고 전하며 "몇 년 전만해도 병원에서는 그림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림으로 치료도 가능하다는 인식이 펴졌다"고 설명했다.

작품 대여비 전액이 경비 처리가 가능하며, 미술은행을 이용하면 세금이 감면된다는 점도 기업 측에서는 매력적인 요소다.

동숭갤러리 미술은행에는 월 100만원이하 3%, 100만원~1000만원이 2%, 1000만원이상이 1.5%이라는 30년 동안 변하지 않은 임대료 규정이 있다.

이 관장은 "공공기관, 병원과 같은 공익성이 있는 곳에서는 더욱 저렴한 가격을 받고 있다"고 말하며 "그동안 미술은행이 받았던 사랑을 되돌려주기 위해 요양원이나 소년원 등에 무료로 그림을 제공하는 방안"을 생각 중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이 관장은 "미술계가 끝없는 불황을 겪고 있는 지금이 미술은행을 활성화해야 할 시기"라며 미술은행을 통해서 "문화 공간을 확산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고 포부를 전하기도 했다.

"화랑은 신뢰가 생명"
신진작가는 '작가정신' 필요

이 관장은 갤러리를 40년 동안 운영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신뢰'라고 강조했다.

그는 "화랑은 신뢰가 중요하다"며 "미술을 하는 사람들 중 천재들이 많다. 그렇다보니 많게는 50~100년을 앞서가는 경우도 있어 작품을 추천하는 화상의 말이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간의 세월이 증명하듯 이 관장의 작품을 선정하는 안목은 돋보인다. 작품을 보는 눈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갤러리를 할 수도 없었을 터이다. 게다가 국내 최대 규모의 미술은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진작가 발굴이 필수적이기도 하다.

이 관장이 신진작가를 발굴할 때 중요시 여기는 부분은 '작가정신'이다. 그는 "화랑업이 잘 될 시절, 하루에는 전시소식과 카달로그가 수도 없이 왔다"며 "마음에 드는 작가가 있으면 전시장에 직접 찾아가 그림을 본 후  작업장을 방문하고 작품활동을 꾸준히 지켜본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주목하고 있는 신진작가로 '양의 탈을 쓴 남자' 등 현대인을 주제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여소연 작가를 꼽았다. 작가의 작품이 석채 등 특이한 재료를 이용해 그림이 독특하다는 평가다.

또 인체를 다룬 모든 그림을 실제 모델을 보고 그리고 있으며, 사회비판적 메시지와 소외 계층의 삶을 풍자적으로 전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와는 별개로 갤러리 자체에서도 역량 있는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위한 지원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더 좋은 작품을 소장하기 위해 여러 분야의 미술품을 접하고 있다.

한편, 동숭갤러리는 그동안 루피노 타마요, 살바도르 달리, 엔릭 이루에스떼, 왕환신, 루오왕 등 유명 외국 작가들과 김구림, 이석주, 김일해, 민복진, 윤영자, 최기원, 이일호 등 국내의 원로작가와 중견작가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작가라 불리는 작가들의 초대 개인전을 기획했다.

이와 함께 그룹전 200여회, 개인전 80여회, 국제 미술전, 도쿄아트엑스포, 시카고아트엑스포, 파리FICA 등 세계 유명 아트페어에 참가하여 국,내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미술은행 이외에도 환경조형물 사업을 운영하는 가운데, 도시의 환경 미술에 관한 자문기구를 설치해 도시의 건물과 환경조각과의 조화에 대하여 자문을 하고 있으며, 지난 1988년부터 연례행사로 '도시의 환경 조각전'을 동숭동 대학로에서 서울시와 공동기획으로 전시한 바 있다.

(데일리팝=정단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