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위해 희생한 6·25 전사자들…"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6·25 전사자들…"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
  • 김태균 기자
  • 승인 2015.06.25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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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발굴감식단, 현재까지 전사자 중 6.5% 발굴…"전사자 유해발굴은 영원한 책무"
▲ 지난해 12월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6·25 국군 전사자 818명 유해 합동봉안식이 열리고 있다. ⓒ뉴시스

지난 1950년 6월 25일, 우리는 지독히 잔인한 싸움을 벌인 뒤 남과 북으로 갈라섰다. 수많은 전사자와 상처를 남기며 결국 휴전에 들어섰지만 반백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동생의 손에 엿가락을 쥐어준 채 떠난 형, 전쟁 통에 차마 구하지 못한 동료 등 누군가에게는 가족이고 친구일 6·25전쟁 참전 용사들 중에는 아직도 기다리는 이들의 품에 돌아오지 못한 경우가 많다.

떠나간 이들의 생산만이라도 확인하고 싶었던 남겨진 이들은 어느새 백발의 노인이 됐지만, '유해만이라도 거둬들이면…'하는 마음으로 벌써 65년째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야간에다 비까지 내려 전사한 전우는 두고 눈에 보이는 중상자만 싣고 후퇴를 했습니다. 달빛에 비쳐 어렴풋이 보이던 전사한 전우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립니다. 분명 지금도 그 지역에 전우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올해로 민족상잔의 비극이라 불리는 6·25전쟁이 발발한 지 65년째다. 누군가에겐 역사 속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을 수 있지만, 아직도 당시 참전용사들의 유해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유해발굴 15년째 진행
13만여위 중 6.5% 찾아

누구든 가장 최근의 일에 관심을 보이기 마련이다. 냄비 끓듯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면 금방 식어버려 마침내는 잊혀지는 경우가 많다. 결국 가장 가까운 사람의 마음에만 남게 되는 것이다.

6·25전쟁 참전 용사들도 마찬가지다. 결국 돌아오지 못한 이들은 곧 잊혀졌고, 기다리는 이들의 마음에 멍울을 만들었다.

이에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나라를 위해 희생된 분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취지로 전사자들의 유해를 찾아 넋을 기리고 명예를 높이고자 한다.

이들은 6·25전쟁에 참전해 목숨을 바쳤으나 아직 수습되지 못한 13만여위 호국 용사들을 찾는 유해발굴사업을 진행하며, 유가족들의 60여년의 한을 해소하고 국민통합의 계기에도 일조하고 있다.

유족 및 동료들뿐만 아니라 국가에서도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한 참전 용사들을 찾는 모습에 많은 이들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은 물론, 국민들이 6·25전쟁을 되새기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유해발굴사업은 지난 2000년 6·25전쟁 50주년을 맞아 3년 한시적으로 시작했다가 이후 2007년 육군에서 국방부 직할 기관으로 사업주체를 전환해 지난해까지 국군전사자 8476위를 발굴했다.

유해발굴은 '조사·탐사'→'발굴·수습·운구'→'감식'→'안장·봉안' 4단계로 진행되는데 첫 번째 단계에 해당하는 조사는 지역주민 및 참전용사의 증언을 수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65년이 지난만큼 이미 연세가 많이 든 이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발굴을 실시한다는 것부터가 불가능해 보이지만 유해발굴감식단은 끊임없이 가능성을 찾아가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이들의 과업에 일각에서는 이들의 사업을 통해 국가와 국민들의 신뢰가 구축되고 국가 정체성 확립에도 큰 힘이 되고 있다며 응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마지막 한명 찾는 그날까지"
증언 부족·현장 훼손 등 어려움

▲ 6·25전쟁 참전 용사들의 유해발굴이 계속되고 있다. ⓒ뉴시스
당장 일어난 사고 현장에서도 사망자를 찾기가 쉽지 않은데 65년 전에 실종된 전시자를 찾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유해발굴사업은 올해로 15년째 진행되고 있으나 참전용사 13여만 위 가운데 발굴된 전시자 유해는 6.5%(8476위)에 불과해 성과는 높지 않은 편이다.

증언만으로는 전사자 유해가 묻혀 있는 정확한 장소를 찾기가 힘들뿐만 아니라 지역주민과 참전용사 대부분이 사망하거나 고령이라 기억이 혼미한 경우가 많아 증언마저도 듣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울러 매장 위치를 찾는다고 해도 그간의 국토개발로 인해 전투 현장의 훼손이 심해 가능성이 있는 곳을 수없이 굴토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고 국방부는 분석했다.

전사자를 발굴해 내도 신원확인을 위한 단서 제한으로 DNA 검사에 의존해야 하며, 직계 유가족이 감소하면서 전후 2~3세대까지 참여해 검사를 진행해야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까닭에 지금까지 발견된 전사자 유해 8657구 가운데 신원이 확인돼 유족에게 전달된 유해는 박 일병을 포함해 100여구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해발굴감식단에 따르면 신원이 확인된 국군전사자는 현충원 묘역에 안장(화장)되며, 미확인 된 경우는 중앙감식소에 보관된 후 국립서울 현충원 충혼당에 임시 안치된다.

이처럼 해당 사업에는 다양한 어려움이 산재해 있지만 유해발굴감식단은 올해 전사자 유해발굴 800위 이상, 신원확인을 위한 유전자 시료 채취 3500명 이상, 신원확인 전사자 10위 이상을 목표로 삼고 있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6·25전쟁 당시 떠나간 이의 마지막 모습을 되새기며 편치 않은 남은 생을 보내고 있을 유족들을 위해, 민족의 슬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유해발굴감식단은 말한다.

"마지막 한 분의 유해를 찾을 때까지 사업은 계속돼야 합니다.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영원한 책무이기 때문입니다"

(데일리팝=김태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