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최태원의 'AI 국가론'…반도체 넘어 지능 수출, 한국 경제 판 바꾸나
[인사이트] 최태원의 'AI 국가론'…반도체 넘어 지능 수출, 한국 경제 판 바꾸나
  • 정단비
  • 승인 2026.11.06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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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의 15GW 데이터센터 구상과 맞닿은 국가 성장전략…한일 경제연대·기업 성장 유인체계 개편도 제안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인공지능(AI) 시대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모델로 '지능 수출국'을 제시했다. 반도체를 생산해 수출하는 산업구조에서 나아가 AI 연산능력과 서비스까지 공급하는 국가로 전환해야 한다는 구상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 육성론과는 차이가 있다. AI 산업에 필요한 막대한 자본과 에너지를 확보하고, 시장 규모를 확대하는 동시에 기업의 성장 유인을 높이는 경제 시스템 전반의 재편을 전제로 한다. 특히 SK그룹이 추진 중인 대규모 AI 인프라 사업과도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최 회장은 지난 5일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AI 시대, 세계 경제 패러다임 변화와 대한민국의 비전' 특강에서 한국 경제의 해법으로 AI 네이티브 국가, 한일 경제연대, 뉴 캐피탈리즘, 인센티브 시스템 등 네 가지 방향을 제안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5일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에서 ‘인공지능(AI) 시대, 세계 경제 패러다임 변화와 대한민국의 비전’을 주제로 특별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서울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에서 ‘인공지능(AI) 시대, 세계 경제 패러다임 변화와 대한민국의 비전’을 주제로 특별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서울대)

반도체 경쟁력만으로는 부족…AI 산업의 수익구조 바뀐다

최 회장의 AI 국가론에서 주목할 부분은 산업 경쟁력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그는 엔비디아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제시한 AI 산업의 5개 층인 에너지·반도체·인프라·모델·애플리케이션을 소개하며 한국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할 영역을 설명했다.

한국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AI 반도체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AI 산업의 수익은 반도체 판매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데이터센터에서 연산능력을 제공하고, 이를 활용한 모델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과정에서도 부가가치가 발생한다.

반도체 경쟁력이 AI 산업 전체의 주도권으로 자동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이러한 관점은 SK그룹의 사업전략에서도 확인된다.

SK그룹은 2026년 6월 전국에 총 15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겠다는 중장기 계획을 발표했다. 2029년부터 5GW 규모를 단계적으로 가동하고, 2035년까지 전체 규모를 확대한다는 목표다. 같은 해 7월에는 엔비디아와 국내 최대 2GW 규모 AI 팩토리 구축 등을 포함한 협력 의향서(LOI)를 체결했다.

SK하이닉스의 AI 메모리 사업에 SK텔레콤의 데이터센터 사업을 결합해 반도체 공급업체를 넘어 AI 인프라 사업자로 영역을 확장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한일 경제연대, 미중 경쟁 속 시장 규모의 한계 돌파 시도

최 회장이 제안한 한일 경제연대 역시 AI 산업의 자본집약적 특성과 연결된다.

AI 산업은 초기 투자 규모가 크고 기술 변화가 빨라 충분한 시장과 자본을 확보한 기업에 유리하다. 미국과 중국이 거대한 내수시장과 투자 여력을 바탕으로 경쟁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독자적으로 대응하기에는 제약이 있다는 판단이다.

최 회장은 강연에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약 2조 달러와 일본의 약 4조 달러를 결합하면 경제적 파급력이 단순한 규모의 합산을 넘어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2026년 10월 전망에 따르면 양국의 올해 명목 GDP는 한국 약 2조2500억 달러, 일본 약 4조3400억 달러다. 합계는 약 6조5900억 달러에 이른다.

사회문제 해결에 대한 경제적 보상

최 회장이 내놓은 나머지 두 가지 해법은 경제활동에 대한 보상체계를 바꾸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뉴 캐피탈리즘은 사회문제 해결을 민간의 경제활동으로 연결하자는 구상이다. 기업이 창출한 이윤에 세금을 부과해 공공서비스 재원을 마련하는 기존 구조를 보완해, 사회문제를 해결한 민간 주체에도 경제적 보상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이는 SK그룹이 2015년부터 운영해 온 사회성과인센티브(SPC)와 맥락을 같이한다. 사회적기업이 만들어낸 사회적 성과를 금전적 가치로 측정하고 현금으로 보상하는 방식이다.

관건은 보상 기준과 재원이다. 사회적 성과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 보상에 필요한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가 정해지지 않으면 개별 기업의 실험을 국가 차원의 제도로 확대하기 어렵다.

인센티브 시스템 개편은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규제 부담이 증가해 성장을 주저하는 문제를 개선하자는 취지다. 작은 규모의 기업이 규제를 피하고자 대기업으로의 성장을 스스로 포기하지 않도록 해야 한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민주주의와 함께 한국의 한 축인 자본주의가 건강하게 작동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편 최 회장이 생각하는 AI 인재 육성 방향을 묻는 질문에 최 회장은 ‘경험’을 꼽았다.

그는 “어디서나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닌, 직접 새로운 걸 자유롭게 설계하며 경험하는 게 ‘AI 네이티브 국가’로 가는 기초가 될 것”이라며 “이전의 시도가 실패해도 그걸 경험으로 삼고 도전을 계속하면 ‘시스템’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