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국의 '펼침의 미학'] Sketch-Book-그리다 만 그림
[오진국의 '펼침의 미학'] Sketch-Book-그리다 만 그림
  • 오진국 화백
  • 승인 2015.06.23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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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북'…
나의 소년시절에서 가장 빼 놓을 수 없는 '키워드' 중의 하나가 '스케치북'이다. 그 4절 '캔트'지 '스케치북'은 단순히 그림을 그리기 위한 노트가 아니라 내 생활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꿈과 희망의 산실이었고 당시만 해도 최고 품질로 인정받던 日産 '톰보우'(Tombow) 4B 연필이나 '사쿠라' 수채화 물감을 같이 사는 날은 온 세상이 다 내 것만 같았다.

아마도 요즘 학생들 같으면 값비싼 '노트북'을 하나 장만하는 그런 기분이 아니었을까? 어쩌다 일제 '홀베인' 수채화 붓(12호나 15호 둥근 붓)을 하나 두 개 장만하면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는 아무 것도 그리지 않은 '스케치북'을 한 페이지쯤 화판 위에 펴 '이젤' 위에 올려놓으면 그저 바라만 보아도 좋았다. 하얀 '캔트'지가 마구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아 눈만 말똥말똥하며 난생 처음 애인이 생긴 양, 가슴을 두근거렸다.

40년이 지난 후, 나는 종종 화방에서 '스케치북'을 보아도 아무런 감흥도 생기지 않았다. 혹시나 하여 두 세권을 사와도 펼쳐 볼 시간도, 그럴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물론 내가 요즈음 디지털 작업을 주로 하므로 그런 도구가 많이 쓰여지지 않는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세월이 지나면서 피할 수 없이 얻은 경험, 또는 온갖 체험이라는 과정이 하나의 사실을 단면으로 보지 않고 입체적으로 보는, 그림으로 인하여 감동의 '채널'이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자꾸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이면을 보려 하고 실상과 허상을 구별하려 하는 이성의 조율로 인하여 감동 지수가 오존층처럼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순수와 거리가 멀어지는 병폐가 생긴 것이다. 세상에 예술한다는 사람이 이래가지고서야…

그래도 어쩌랴? 억지로 일어나지 않은 감흥이라도 일깨우고 나를 찾기 위한 노력도 안 한다면 그저 장사꾼과 다를 바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찾자, 찾자 한다고 될 일도 아니라는 것 아니 그게 고통이다. 그렇다면 그 고통의 흔적이라도 남겨두어야 하지 않을까…그래서 그린, 낙서 같은 추상화(?)가 이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