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브리프] 그리스 사태의 본질과 교훈 (下)
[한선브리프] 그리스 사태의 본질과 교훈 (下)
  • 한반도선진화재단
  • 승인 2015.07.20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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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전 한국금융연구원장

대한민국의 외환위기 극복

그리스의 재정위기는 우리의 경우와 대비해보면 분명해진다. 우리나라는 1996년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GDP 대비 4.2% 정도였다. 결국 외환보유고 부족과 해외자본의 동시적 이탈 즉, 서든스톱 현상이 발생하면서 1997년말 위기를 맞았다. 그러자 800원이었던 원달러 환율은 2000원 가까이 상승하면서 원화의 대규모 평가절하가 일어났고, 결국 수입은 줄고 수출은 늘어나기 시작해 달러가 많아지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1998년 430억 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면서 외환위기 극복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원화는 비기축통화였다. 따라서 불균형이 나타나자 금방 외환위기를 당하면서 통화의 대규모 평가절하가 일어났는데 이로 인해 역설적으로 빌려온 달러를 갚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흑자가 발생한 것이다. 빚을 다 갚고 외환보유고를 충분히 쌓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은 살아있었다. 비기축통화국이라서 불균형이 커지기 전에 위기를 당하고 불균형을 조정한 것이다. IMF에서 지원 약속을 받은 액수는 210억 달러, 그리고 실제로 우리가 가져온 돈은 195억 달러였다. 우리는 '금모아 수출하기' 캠페인을 벌이면서까지 해외에서 빌려온 돈을 한 푼의 탕감 없이 이자까지 전액 상환하는 모범적 모습을 보였다. 그리스가 소위 트로이카로부터 지원받은 돈은 2400억 유로(약 2700억 달러)이다. 비록 시점이 다르기는 하지만 우리의 13배 쯤 된다. 그런데 그래도 모자라다. 그만큼 불균형이 오랫동안 누적된 것이다.

최근 상황

그리스 사태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좌파 정당인 시리자가 집권을 하고 치프라스 총리가 취임하더니 스스로를 괴짜 마르크스주의자라 부르는 바루파키스 재무장관이 취임해 협상을 벌였다. 최근 긴축안이 제출되고 EU가 이에 반대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치프라스는 긴축안을 국민투표에 붙였다. EU는 당황하는 분위기였고 이 국민투표에서 긴축안이 결국 부결이 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치프라스는 투표를 통해 정치적 신임을 얻으면서 판을 주도하고 있다. 우선 재무장관을 교체했다. 강경파 바루파키스 대신 옥스퍼드 경제학 박사 출신의 온건파 차칼로토스가 재무장관이 되었다. 또한 예상을 뒤엎고 지난번에 부결된 79억 유로 규모의 긴축안 대신 더 강도 높은 130억 유로 규모의 긴축안을 EU에 제출하고 국회의 승인까지 얻어냈다. 아주 흥미진진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그렉시트(Grexit)?

아직은 지켜봐야 하지만 그리스는 그렉시트 즉, 유로존 탈퇴를 싫어한다. 기축통화 쓰는 것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물론 불균형의 축적이라는 단점으로 인해 이러한 사태가 왔기는 했지만 역내 동일통화가 주는 장점은 상당하다. 환율이 필요 없고 국제결제도 자유롭다. 외환위기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도 큰 이점이다. 만일 유로존을 떠나서 과거에 쓰던 드라크마 체제로 돌아가면 고통은 상당하다. 언제 외환위기를 당할지 모른다. 드라크마 가치는 엉망이 될 것이고 빚은 천문학적 숫자가 될 것이다. 언제 다 갚을 지도 미지수이다. 유로존을 떠나는 것은 이처럼 고통스럽다.

그리고 다른 국가들도 부담스럽다. 그리스가 떠나면 다음은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이 될 수 있다. 어렵게 이룩한 통합체제에 균열이 가면서 유로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각국 지도자들은 자기가 재임하는 시기에 이런 상황이 오고 본인이 이러한 균열과 붕괴의 주범이라는 비난을 듣기 싫어한다. 따라서 그렉시트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유럽의 통합을 깬 장본인 소리를 들을까봐 겁을 내고 있는 것이다.

유럽은 유로화 출범과 함께 재정동맹 즉 여유 있는 나라의 세금으로 힘든 나라를 지원하는 메커니즘을 구축했어야 했다. 이러한 체제가 있었으면 지금처럼 엉망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 사태의 교훈

사실 그리스의 연금체계는 유명하다. 너무 후하게 책정되어 있다. 공무원의 경우 소득대체율이 90% 정도이고 교사의 경우 거의 100%이다. 분필 가루를 먹는 위험 직종으로 분류하여 연금을 올려놓았다. 교원 노조가 나서서 이처럼 말이 안 되는 수준의 제도를 만들어 놓았다. 퇴직 후 연금이 현직 때의 봉급과 동일한 액수가 되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받는 사람이야 행복하지만 국가가 무슨 수로 이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결국 국가부채를 통해 이를 해결하다가 무너진 것이다. 게다가 탈세도 심하고 세금도 잘 걷히지 않는다. 부정부패도 심각하다. 끼리끼리 문화도 심하고 일도 열심히 하지 않는다. 이러한 많은 것들이 결합되면서 위기로 이어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조업이 시원찮다. 국가경쟁력 내지 국가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기반이 잘 조성되어 있지 않다. 관광업, 해운업 등 서비스업의 비중이 거의 90%에 육박한다. 수출 기반이 취약한 것이다.

과도한 연금수준 그리고 제조업 기반의 취약성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였다. 이러한 문제점이 있는데도 동일통화를 사용하는 그룹에 가입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냥 드라크마를 사용하였더라면 문제가 이렇게 커지고 복잡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상황은 훨씬 나은 편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의 제조업 기반 수출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게다가 중국의 주식시장이 심상치 않다. 중국 정부가 이를 떠받치고 있는데 영 힘이 부치는 모습이다. 인위적 부양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복지 포퓰리즘의 위험성과 경쟁력에 기초한 경제의 건실함이 왜 중요한지를 우리는 그리스 사태에서 교훈으로 얻는다. 불균형의 지속은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비기축통화국으로서 외환과 환율부문의 안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된다. 동시에 제조업을 통한 굳건한 수출기반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부문의 경쟁력과 안정성을 확보해야만 우리 경제는 어려운 파고를 넘어 지속적인 발전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는 점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이 글은 Hansun Policy Brief 2015년 7월호에 게재됐습니다. (www.hansu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