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 ISSUE & FOCUS] 역사교과서 문제의 역사학적 배경과 사(史)피아의 구조
[한선 ISSUE & FOCUS] 역사교과서 문제의 역사학적 배경과 사(史)피아의 구조
  • 한반도선진화재단
  • 승인 2015.11.03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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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희 공주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1. 요즘, 역사교과서 문제는 '국가 정체성'의 문제다!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검정'으로 할 것인가의 문제가 모든 국정 이슈를 흡수할 만큼 대단한 문제인가?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역사를 바로잡는 것은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미 이 문제는 가장 큰 정쟁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대한민국에서 역사교과서 문제가 왜 이렇게 중요하고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일까?

작금의 국정 교과서 사태는 어떠한 국민적 합의도 없이 국사학자들이 중심이 돼 결성한 '사피아' 조직이 모의해 미래의 국가 정체성을 몰래 훔쳐가고 있는 데서 발생했다. 대통령과 정부가 이를 깨닫고 시정하려고 하자, 야당은 '사피아' 조직에 합세해 '국가 정체성 절도사건'을 편들고 있다.
 
오늘날의 역사교육은 미래의 국가 정체성을 준비하는 활동이다. 과거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밑그림이 달라진다. 역사교과서 문제는 근원부터 제대로 따져봐야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2. 40년 전부터 국사학계는 대한민국을 훔치는 '밑그림'을 그려왔다!

강만길 전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는 저서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에서 1970년대에 당시의 국사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을 가했다. 한국 근·현대사를 [근대화운동과 주권수호운동]이 활발히 추진되었던 제1기, [3·1운동을 비롯한 줄기찬 민족해방운동]이 계속되었던 제2기, 그리고 [민족분단과 동족상잔을 겪고도 근대화·공업화에 성공]해가고 있는 제3기로 구분하는 것은 "우리 근대사는 온갖 시련을 겪고도 결국 선진 자본주의의 수준에 접근해가고 있는 성공한 역사"로 파악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시각을 달리해 제1기는 [식민지로 전락]해간 시기, 제2기는 [스스로의 힘으로 해방되지 못하고, 통일 민족국가의 기반조차 만들지 못했던] 시기, 제3기는 [민족분열과 동족상잔을 겪고 분단체제가 굳어져가는] 시기라고 규정 짖고 "19세기 후반기에 시작된 실패의 역사가 1세기를 넘어선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국사학계의 주류가 우리 한민족과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성공한 역사'로 정립하는 것이 왜 비난받을 일인가? 백번 양보해 강만길의 위와 같은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이 단지 한 국사학자의 순수한 학문적 관심에서 우리 근·현대사를 다양하게 인식하려는 시도라면 귀기울여 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의 분단사론은 지난 40년을 거치면서 국사학계와 역사교육계의 주류가 된 것을 넘어서 독점적 지배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이 오늘날 역사교과서 문제의 배경이다.

나아가 그들은 지난 100년을 실패의 역사로만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청소년들에게 학교 역사교과서를 통해 <미래는 현재와 같은 대한민국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대한민국은 원래 사회주의 이념으로 무장한 노동자와 농민 등 기층 민
중이 중심이 되어 투쟁적인 민족 부르조아지와 통일전선을 형성하여 인민민주주의 국가가 되었어야 한다고 주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훔치는 밑그림이 아니고 무엇인가?


3. 대한민국은 분단체제이며, 그것은 식민체제와 같다고 부정한다!

강만길 전 교수는 또 "분단시대 국사학 스스로는 분단체제 속에서 객관적 위치를 확보하면서 통일운동의 일환으로서의 성격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다하지 못하였고, 분단시대를 연구대상으로 삼는 일을 전혀 포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일제시대 실증사학이 식민지시대 현실을 외면하였던 것과 같이 분단시대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했다. 식민지 시대의 '실증사학'과 해방 후 1970년대까지의 '민족사학'을 반민족적이라고 동일시해 비난한 것이다.
 
나아가 20세기 전반기에 식민지 기간이 길어지고 일제의 민족분열정책과 동화정책이 강화됨에 따라, 국내의 일부 민족진영은 식민지 지배체제를 인정하고 그것에 타협해가는 경우가 있었는가 하면, 식민지 지배체제와 밀착함으로써 절대독립을 부인하고
반민족적 친일의 역사를 걸었다고 주장한다. 똑같이 20세기 후반기에 분단시대가 지속되자 분단체제 자체에 무관심하거나 혹은 분단체제를 현실적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편승하여 이 불행한 역사를 연장시키는 데 이바지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강 전 교수는 분단체제에 저항하여 싸우지 않고 대한민국 체제를 인정하면서 그것의 발전에 이바지 하는 역사연구는 식민지 시대에 독립투쟁을 전개하지 않고 일제에 협력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매우 무서운 논리를 펴고 있다. 일제의 식민체제와 똑같이 대한민국의 '분단체제'가 동일하게 부정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과 싸우지 않는 것 자체가 비난받아야 한다는 전체주의적 논리다. 그에게 있어 대한민국 체제는 단지 민족분단이 지속되고 있다는 이유로 부정되어야 하고, 투쟁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분단과 동족상잔의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와 통일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북한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함으로써 교묘하게 대한민국 자체를 부정하는 역사인식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분단된 시대를 사는 민족의 일원으로서 통일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분단체제를 지탱하고 있는 현실과 싸우지 않는다고 해서 통일을 외면한다고 비난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통일에 대해 대한민국의 박정희 전 대통령과 북한의 김일성 전
주석은 입장을 달리하였다. 박 전 대통령은 '선 경제, 후 통일'의 국가 전략을 통해 경제건설에서 승패가 통일의 주도권을 가름한다고 믿고 경제 건설에 주력하였다. 반면에 김 전 주석은 통일을 우선으로 내세웠지만 그 귀결은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다.

4. 통일의 길은 좌익 중심의 통일전선이어야 한다?

강 전 교수의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에 뒤이은 작업은 '분단극복사론'으로 연결되었는데, 그 작업은 두 가지 방향에서 진행되었다. 하나는 식민지 시대의 독립운동사가 우익운동 중심으로 엮여져 있고, 좌익운동은 공산주의운동으로서 분리되어있는 것 자체가 분단시대적 역사인식의 산물로서 식민지시대의 민족해방운동이 하나의 통일전선을 형성하기 위한 과정으로 재정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하나는 식민시대의 민족운동이 해방 후의 민족국가 건설문제까지 포함해서 추진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이를 기초로 '통일민족국가 수립운동'으로서 민족해방운동사를 체계화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것이 바로 '분단극복역사학'의 당면과제라고 밝혔다. 따라서 그는 "(무엇의) 1980년 후반기의 작업은 주로 민족혁명당의 통일전선운동과 통일전선론 문제에 매달려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 결과가 『조선민족혁명당과 통일전선』이란 책으로 되어 나왔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1930년대 이후의 운동이 "통일전선운동에 초점이 맞춰지지 않은 채 좌익계 운동만으로, 혹은 우익계 운동만으로 설명되는 일에 불만을 가지면서 30년대 이후의 민족해방운동을 통일전선운동 중심으로 엮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통해 분단극복역사학의 줄기를 바로 잡아야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8·15공간'에서 민족통일전선운동은 "건국준비위원회활동, 민주주의민족전선활동과의 관계가 해명된 위에서 좌우합작운동, 1948년의 남북협상 등 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쓰여진 것이 『한국현대사』(창작과비평사, 1984년)라고 밝히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현대사의 주체를 민중으로 설정하였고, 8·15공간에서의 '민전'운동과 '합작'운동 그리고 1948년의 남북협상을 통일민족국가 수립운동으로 평가하였다. 이상과 같은 연구는 결국 분단 극복의 주체를 찾기 위한 노력이며, 그 답은 곧 1930년대 후반 이래 좌익이 중심이 된 통일전선의 역사에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역으로 말하면, 대한민국은 분단극복의 주체, 곧 통일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5. '분단사론'이 드디어 '사피아'를 만들어 역사교과서를 지배하고 있다!

강만길의 '분단사론'에 의한 '계획' 제시된 이후, 진보-좌파 역사학에서는 분단극복사론의 입장에 따라 착실하게 후속연구가 추진되었다. 그 첫 번째 공동 작업이 1980년대를 풍미한 『해방 전후사의 인식』시리즈이며, 두 번째 공동 작업이 한국역사
연구회의 『한국역사』이다. 그 책머리에는 "이 책의 편찬을 계획한 것은 1990년 7월이었다. …(중략)…50여명의 연구회원이 초고를 작성하였다. 초고는 연구 분과와 연구반에서 수차례의 토론을 거쳐 수정하였다. 편찬위원회에서는 전체적인 체계를 세우고 각 분과 내부와 분과 사이에서 서로 다른 견해가 제기될 때 이를 조정하였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한국역사연구회가 생각하는 '진정한 민주화와 자주화'를 목표로 하는 역사교재를 집단 작업을 통해 완성한 것이다. 그 세 번째 공동 작업은 '전국역사교사모임'에 의한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이다.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에 이은 3차에 걸친 공동 작업을 통해 한국의 역사학계와 학교 역사교육 현장을 장악한 '사피아' 집단의 핵심이 완성되었다. 그들은 1970년대 말 이래 '분단사학'의 영향을 받고 정부나 언론계 및 출판계 등에 진출한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해 역사교과서를 완전히 지배하게 되었다. 2013년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를 완전히 초토화 시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지난 40년에 걸쳐 형성한 '사피아'가 배경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필자의 견해로서 한반도선진화재단·데일리팝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