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줌인]'임대인' 아니면 장사하지마?..'내집 아닌' 설움
[뉴스줌인]'임대인' 아니면 장사하지마?..'내집 아닌' 설움
  • 이성진 기자
  • 승인 2015.11.20 1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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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차인의 권리금 회수 방해하는 임대인, 법 개정에도 허점 노려…막을 수 없는 임대료 상승

▲ 권리금을 받지 못하고 쫓겨나게 생겼다며 임대인의 강제집행을 저지하는 상인

임대인으로 부터 가게를 빌려 운영하는 임차인들이 거리로 내몰리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명목으로 마련된 '상가임대차보호법'으로 인해 '권리금'이 보호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허점이 속속들이 발견되고 있다.

7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결같이 자리를 지켜왔다고 주장하는 A치킨집 B사장님은 오늘도 한숨이다. 북적거리는 치킨집은 얼핏 보기엔 장사가 잘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마저도 집회를 준비하는 사람들, 호기심을 갖고 다가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B사장님은 언제까지 장사를 계속할 예정이냐는 질문에 "이미 계약기간은 만료됐고 지금도 '명도소송'으로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언제 철거용역이 들이닥칠지 모른다"며 고개를 떨궜다.

상인들의 노력으로 일궈낸 상권
권리금 둘러싼 공방…법은 임대인의 편

권리금이란 주로 상가를 양도할 때 발생하는 일종의 자릿세이며, 유동인구가 많은 상권일수록 가치가 높다. 구체적인 금액을 산출할 수 없지만 임차인 간에 원하는 금액, 주변 상가 시세 등을 고려해서 합의하에 책정된다.

하지만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지난 5월 개정되기 전까지 임대인의 허가 없이 세입자가 다른 임차인에게 양도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부 임대인들은 '건물이 노후해서 재건축을 해야 한다', '더 이상 음식점은 받지 않을 계획이다' 등 다양한 사유로 재계약을 거부하면서 세입자의 권리금을 약탈하는 사례도 종종 등장하고 있다.

법적 근거가 존재하지 않았던 권리금은 세입자가 양도를 하지 못하고 상가를 비울 경우 다음에 들어올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직접 권리금을 건네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됐던 임대인의 강제집행을 온몸으로 막으며 시민들에게 호소하고 있는 B사장과 삼청동에서 여성의류 판매점을 운영하는 C사장 등 많은 상인들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와 인근 지역 일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시위하는 상인들
이런 가운데 B사장과 한 건물 안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임대인의 아들 D씨는 이들이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다'는 플랜카드를 걸어두면서 맞대응하고 있다.

D씨는 "다른 임차인에게 세를 주기 위해 계약만료 9개월 전 2억원을 제시하고 가게를 비워달라고 했지만 이를 거절하고 만료일까지 가게를 운영하겠다고 하더니 이제 와서 권리금 1억5000만원을 요구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B씨가 이같은 D씨의 주장에  반박하며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만큼 양측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상인 위한 보호법…개정됐지만 허점은 여전히 많아
폭등하는 임대료는 여전히 사각지대

이번 '치킨집 사건'의 경우 개정된 법에 의하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계약은 그 전에 이뤄졌고, 소급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

법무부 한 관계자는 "이전 법에서는 (세입자의 상가 양도를 방해하는 행위가) 건물의 소유주인 임대인의 당연한 권리로 봤다"고 전했다.

이처럼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 권리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상인들을 위해 법이 개정되면서 '임대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임차인이 권리금을 회수하기 위한 행위를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해 두었지만 여전히 법의 허점을 노리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한 예로 법에서 정한 '계약만료 3개월 이내'에 해당하지 않다면, 불가피한 상황이 발생해도 세입자는 상가를 임대인의 허가 없이 양도할 수 없는 것이다.

합정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E씨는 "계약기간이 앞으로 1년 가량 남았지만 임신으로 인해 더 이상 가게를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라 다른 임차인에게 양도하려 했지만 임대인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제 발로 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 개정된 상가임대차보호법 (자료=법제처)
상가임대차보호법의 일부 개정으로 권리금에 대한 보호가 조금이나마 가능해졌지만 치솟는 '임대료'는 여전히 막을 수 없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내 건물에서 장사해야 해" 최근 각종 요리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 중화요리의 대가 이연복 쉐프가 방송에서 종종 하던 소리다. "장사가 잘 되는 것은 좋지만 집주인이 월세를 많이 올린다"며 웃음을 자아내지만 이는 많은 상인들의 하소연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이 편재해 있는 시각이다.

임대료의 상승 제한은 환산보증금 4억 이하(서울 기준) 상가에 한해 계약 5년까지만 보증금과 월세의 인상을 9%로 제한하고 있을 뿐 그 외는 '주변 시세보다 월등히 높지 않아야 한다'는 애매한 기준을 두고 있어 200~300% 인상되는 월세를 막을 방법이 없다.

환산보증금이란 월세에 100을 곱한 금액에 보증금을 더한 것으로 지방은 이 금액을 2억으로 규정하고 있다.

서울시는 새로운 상권의 활성화로 임대료가 폭등해 상인들이 거리로 내몰리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심화되자 내년부터 '장기안심상가'를 운영하는 방침을 내놓았다. 시가 공공건물을 매입해 싼값에 제공하거나 상인들이 상가를 공동 매입할 수 있도록 장기저리로 자금을 융자하는 방식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9일 "뉴욕시장처럼 기본적으로 임대료 상한선을 서울시장이 정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그런 권한이 없는 상태에서 차선 대책을 마련했다"며 "상인들이 연합해 상가를 매입하면 서울시가 장기저리로 융자해주는 자산화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일각에서는 "효력이 없을 것 같지만 상인들을 위한 움직임은 긍정적이라 생각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상인들은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하루하루 영업하고 있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이 계속해서 허점을 노출한 채 개선되지 않는다면 상인들의 불안감은 더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데일리팝=이성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