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 '품격 있는 죽음' 웰다잉법, 끝나지 않은 숙제
[뉴스포커스] '품격 있는 죽음' 웰다잉법, 끝나지 않은 숙제
  • 이성진 기자
  • 승인 2016.02.03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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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회의 통과로 도입을 앞둔 웰다잉법, 부작용 남발할 수 있어 우려도 높아
▲ 연명의료 중단 결정 절차 (자료=보건복지부)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이른바 '웰다잉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2년 뒤부터 시행될 예정이지만 아직까지 이에 대한 찬반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연명의료의 중단은 환자에게는 육체적 고통을, 가족들에게는 경제적·정신적 고통을 덜어주지만 생명을 인위적으로 중단하는 것은 종교적 관점에서 이해하기 어려울뿐더러 자칫 경제적인 이유로 연명치료 중단이 남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편안한 죽음' 위해 도입된 '웰다잉법'
부작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3일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지난달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공포됐다고 밝혔다.

'웰다잉법'으로 불리는 이 법안은 회생가능성이 없고 치료를 해도 회복이 불가해 사망에 임박한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 대해 연명 의료를 중단하는 것으로, 임종기간만 늘리는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인공호흡, 항암제 투여 등 무의미한 연명의료로 고통을 겪는 환자의 고통을 완화하고 환자의 자기결정을 존중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됐다.

웰다잉법은 자칫 '안락사'로 오인하기 쉽지만 안락사는 약물 등을 환자에게 투여해 죽음의 시기를 앞당기는 행위로 엄연히 다르다.

복지부는 의료현장에서 관행적으로 시행되던 연명의료 중단이 제도화됨으로 혼란이 줄어들고 사회적으로 죽음에 대해 미리 생각하고 이를 준비하는 문화가 형성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웰다잉법이 시행되면 경제적인 이유로 연명의료 중단이 남발될 가능성 등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명의료를 위한 전산화단층영상진단(CT), 혈액투석, 중환자실 입원, 양전자단층촬영(PET) 등의 비용은 의료급여를 지원 받아도 상당히 고가이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을 느끼는 가족들이 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주장은 환자 본인의 결정이 아닌 가족의 대리동의를 허용한다는 애매한 규정으로 인해 가능하며,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또 회생 가능성이나 임종기를 두고 의료진이 오판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밖에 종교적 관점에서는 연명의료 중단은 섭리에 어긋나고, 말기라고 할지라도 생사를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데 인위적으로 죽음을 몰고갈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 지난 2009년 존엄사법 제정을 반대하는 천주교 단체의 기자회견 ⓒ 뉴시스

10여년 이상 지속된 논란
해외 사례 적극 반영해야

연명의료 중단 논란은 지난 1997년 '보라매 병원' 사건으로 처음 불거졌다. 환자의 아내가 경제적 이유로 퇴원을 요구했고, 이를 수락한 의료진은 '살인방조죄'로 기소된 바 있다.

보라매 병원 사건 이후 2008년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한 김 할머니가 내시경 검사 중 과다출혈로 '식물인간' 상태에 이르자 자녀들은 연명치료를 중단하라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병원 측은 이를 거절했다.

이를 두고 당시 여론은 보라매 병원의 영향이 없지 않아 법원으로 사건을 넘긴 것으로 내다봤다. 대법원은 2009년 연명의료 중단을 확정했다.

이후 2013년부터 의료계·법조계·종교계·윤리학계 등 사회 각계각층이 모인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서 관련 권고안을 만들고,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들이 발의되면서 현재의 웰다잉법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이번 웰다잉법 공포로 인해 국내에서도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전문가들은 명확한 기준 없이 법을 시행할 경우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방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웰다잉법 취지를 인정하면서도 "진술만으로 연명의료를 멈출 수 있다면 치료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보호자가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며 "연명의료중단을 남용하는 데 방지책이 강화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미 해외에서는 적지 않은 곳에서 웰다잉법이 시행되고 있으며, 미국의 경우 41개 주에 사전의료의향서 관련법이 있고, 대만은 2000년, 영국과 프랑스는 2005년, 오스트리아는 2006년에 환자 자기결정법을 제정했다.

네덜란드의 경우는 2000년 11월 세계 최초 불치병 환자의 안락사를 인정하는 법안을 제정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해외 말기 암환자 호스피스 이용률은 미국이 43%, 대만 30% 등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호스피스 병상을 운영하는 의료기관이 턱없이 부족하고 전체 말기 환자의 약 15% 수준만 수용이 가능할 만큼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현재 전국적으로 약 1000병상 수준인 호스피스 병상을 최소 2500병상까지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호스피스를 선택할 수 없는 의료적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연명의료법'이 자칫 남용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도입을 앞둔 웰다잉법이 '죽음을 앞당기는' 법이 아닌 고통을 겪는 환자에게 '품격 있는 죽음'을 맞게 하기 위해서는 해외 모델을 우리나라에 반영하는 등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방편을 마련해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데일리팝=이성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