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 되면 다하는 대기업..이번엔 영세 밴(VAN)사 생계도 위협
돈만 되면 다하는 대기업..이번엔 영세 밴(VAN)사 생계도 위협
  • 정단비
  • 승인 2018.06.07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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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사-대형 가맹점, 손잡고 영세 밴사 '밥줄 끊어'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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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이 동네 장사에 뛰어들면서 골목상권을 위협한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에 유통산업발전법 등이 제정되며 변화가 찾아왔으나 또 다른 형태로 영세 사업자의 생존을 위협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유통업을 비롯해 소비자들의 카드를 이용할 수 있는 곳이라면 카드 단말기는 필수로 설치된다. 이러한 카드 단말기는 부가통신업자(VAN·밴), 일명 '밴사' 통해 거래조회나 승인, 매출전표 매입·자금 정산 중계 등을 진행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하지만 최근 카드사들에서는 이들에게 지급하는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 대형 유통가맹점을 들쑤시고 있다.

카드업계와 밴 업계 등에 따르면 신한·삼성·KB국민·우리카드 등은 지난해부터 이마트와 롯데마트·신세계백화점·현대홈쇼핑 등 대형가맹점과 결제 직승인을 하고 있다.

대형 유통회사들이 이러한 카드사의 '영세업자 밥줄끊기'에 동조하면서 영세 밴사들은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농협하나로마트도 '신용카드 밴 시스템 구축사업자 및 보조 밴 선정을 위한 제안요청서'를 발송하는 카드사와 직거래에 나서기 위한 시동을 걸고 있다. 더불어 GS칼텍스 등 정유회사도 직승인 추진을 서두르고 있어 영세 밴사들의 상황은 급속도로 나빠질 전망이다.

가맹점을 하나만 잃어도 영세 밴사들은 큰 타격을 받는다. 이에 아무런 조치도 없이 먹이사슬 최하위 구조에 있는 영세 밴사들의 밥줄을 하루아침에 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처사라고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2015년 여신금융전문업법 시행령 개정 이후 리베이트가 금지되면서 밴사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을 수 없게 되자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밴사 지급 수수료가 정액제에서 정률제로 변경된 것도 타격이 크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밴사의 주요 수익원인 중계수수료 수익은 지난해 1조1508억원으로 거래 건수는 증가했지만 전년(1조1662억원) 대비 154억원(1.3%) 감소했다.

밴사의 주 수익원인 카드 거래 승인 중계 수수료와 매출 전표 수거 수수료 등 중계 수수료 수익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또한 영세 밴사의 수익 급감은 소상공인들의 피해로도 이어진다.

영세 밴사들의 가맹점들은 주로 중소·영세 가맹점이다. 이들은 영업을 위해 소규모 가게나 재래시장 등의 단말기 교체를 비용을 받지 않고 해주곤 했다. 하지만 생존을 걱정해야할 상황에서 이러한 제반 비용 부담을 소상공인들이 떠안아야하는 상황이 됐다.

더불어 영세 밴사 고사 문제는 물론 실업 문제까지 대두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청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청원

청와대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카드사의 밴대리점을 향한 횡포'에 대한 청원이 올라오고 있다.

한 밴대리점 운영자는 "밤낮없이 주말없이 지역에서 열심히 카드 단말기를 설치하며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살아온 사람"이라며 "수입악화로 돈안받고 그동안 무상 서비스 제공되던 일들이 이제 돈을 왜 안 받으면 안되는지 설명이라도 해줘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밴 대리점 사람들만 경쟁사들 눈치를 보며 수입만 줄어든 채 힘들게 버티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카드사 '갑'질 때문에 일자리 잃게 생겼어요'라는 제목의 또 다른 청원에서는 밴 대리점의 신규 가맹점 유치 및 가입신청 과정에서 카드사의 갑질이 심각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 청원자는 건당 800~1000원 수준의 신규 가맹점 모집 수수료를 받으면서 신규 가입을 위해 이용해야하는 테블릿피씨 사용료로 매달 4만원 정도의 비용 발생한다며, 1만원 이하 거래는 20~30원 정도 밖에 남지 않는데 '수만개의 업체 직원들은 농약이라도 먹을 판'이라는 겪한 감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특히 신규 가맹점 1개를 유치하기 위해 부산, 제주 등 지방도 다녀와야하는데 인건비, 기름값을 생각한다면 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상황이 이어지면 영세 밴사는 문을 닫고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

이는 현 정부의 정책에도 역행하는 일이다. 대기업들이 손을 잡고 영세 밴사를 사지로 몰아가는 형국에 대해 유통산업발전법과 같은 해법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편, 금융당국은 금융위, 기재부, 중기부, 금감원, 금융연구원, 여신금융협회, 한국공인회계사회, 민간 법률·회계·소비자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카드수수료 관계기관 TF를 구성해 카드 수수료 체계를 전면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특정 부문에서 부담이 줄어들면 다른 부문의 부담이 커지는 제로섬 구조인 카드수수료에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인지 귀추가 모아진다.

 

(데일리팝=정단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