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韓日 무역전쟁④: 일본 소재 5천억원이 우리의 170조원 수출 발목 잡아
[기고] 韓日 무역전쟁④: 일본 소재 5천억원이 우리의 170조원 수출 발목 잡아
  • 김도형 한림대학교 일본학과 겸임교수
  • 승인 2019.08.23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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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전자 천안 사업장을 방문해 반도체 패키징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일본 정부의 한국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에 따른 위기 상황 점검과 미래 경쟁력 확보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사진=뉴시스)
8월 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전자 천안 사업장을 방문해 반도체 패키징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일본 정부의 한국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에 따른 위기 상황 점검과 미래 경쟁력 확보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사진=뉴시스)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수백 종의 소재는 생산업체에 따라 미세하게 성능이 달라지고 동일품목이라도 브랜드마다 요구되는 화학물질이 상이하다. 다시 말하자면 화학물질을 변경할 때마다 전체 공정의 미세조정이 필수적이다. 여기에 일본이 규제 강화한 포토 레지스트의 경우 전 세계의 90%를 일본 기업이 생산한다. 일본 기업을 제외하면, 삼성이나 하이닉스가 세계 최고 수준의 공정에 쓸 만한 포토 레지스트를 만드는 곳이 없다. 국산화에도 막대한 시간이 필요하다.

화학물질을 다루는 소재 개발은 오랜 노하우에 기반한다. 일본은 100년 넘게 정밀화학 소재산업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해왔다. 특히 화학물질 생산의 경우 다양한 재료의 혼합비율과 미세조정 여부가 매우 중요하고 제품자체가 온도 차이에 너무나 민감하여 수송 중에도 전혀 다른 물질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이런 소재·장비 산업과 공정기술 특성 탓에 우리 기업들은 대일 의존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번 조치는 한국 기업에도 큰 충격이지만 일본 기업은 물론 구미기업에도 상당한 피해를 줄 것이다. 삼성전자 SK 하이닉스는 D램 반도체와 낸드플래시 메모리, LG와 삼성디스플레이는 대형 TV와 OLED와 스마트폰용 중소형OLED를 소니, 파나소닉, 도시바, 후지쯔, 샤프  등 일본기업과 구미기업에 납품하고 있다. 여기에 필요한 핵심소재는 스미토모, 스텔라, 모리타, 신에츠, TOK, JSR 등 일본기업이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입총액 5천억원 수준의 일본의 3개 소재가 대세계 수출총액 170조원의 한국 주력 제품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볼모로 잡은 셈이다. 일본이 반도체 소재와 장비를 수출규제하면 대만 이외는 시장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만큼 반도체 소재-부품-중간재의 동아시아생태계는 손상될 것이 분명하다. 일본이 그동안 한국에 수출절차를 간소화하는 등 우대조치를 취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생산차질을 막기 위해 우선 이재용 부회장이 일본업체의 대한 직접수출 규제를 피해 해외공장에서 3개 소재의 긴급 물량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불충분하여 비상대책방안을 강구중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소재와 장비업체도 손실이 불가피할 것이다. 8월부터 백색국가에서 한국이 제외되어 반도체 소재 이외의 통신기기와 첨단소재까지 실질적인 수출중단이 되면 한일 IT 산업 생태계는 공멸하고 단기적으로는 중국이 이외의 승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사태 때 중국의 보복 조치로 롯데와 현대차가 입은 상처가 여전히 아물지 않고 있다. 2012년 일본의 센카쿠 열도 국유화 조치로 중일 마찰이 증폭되면서 중국은 희토류 대일수출을 금지했고 중일기업간 신뢰관계도 깨어지기 시작했다. 중일 희토류 분쟁 이후 일본은 희토류 대체 소재개발에 나섰지만 이번 일본이 수출 규제한 핵심소재는 한국이 당장 수입선 다변화나 국산화에 나설 수가 없는 분야이다. 기술격차 때문이다.

일본측은 이번 조치가 강제징용 보상 판결에 대한 경제보복이 아니며 WTO 규칙에 따른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양국간 신뢰기반 우려가 그 이유라면 이에 대한 충분한 거증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자행된 규제는 납득하기 어렵다.

일본정부는 8월7일 한국을 화이트국가(안보우호국)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공포했다. 개정안은 28일 시행예정이다. 다음날은 한일합방조약이 체결된 경술국치일이다. 이후에는 일본산 제품의 대한 수출 절차는 매우 까다로워지고 양국업계의 불확실성이 커진다.개정안의 시행세칙인 포괄허가취급요령에는 한국에 대해 기존 반도체 핵심 소재 3개품목 이외는 개별허가 대상품목이 추가되지는 않았고 이들을 제외한 1300개 자율준수 프로그램(CP)기업과 거래해 온 한국기업들은 이전과 같이 3년 단위로 포괄허가가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경제규제로 타격을 입게 될 분야는 여전히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업체에 한정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삼성이 미래 먹거리로 키우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 필수소재인 일본 독점기업 신에츠의 극자외선 포토레지스트 제품이 7월4일 규제된 지 30여일만에 수출허가를 받았다. 그래서 관련업계는 다소 안도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안심을 금물이다. 언제 어떤 품목을 추가제재할지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국이 모든 전략물자에 대한 개별 수출허가를 받아야 하는 품목수는 첨단소재·전자·통신·센서 등 약 1100여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제조업 전반에 미칠 파장 역시 예측이 어렵다. 우리한테 영향을 미칠 일본 전략물자는 ‘손 한줌에 지나지 않는다’는 통상전문 관리의 인식은 현장과 너무나 동 떨어진다. 그래서 통상전문가는 산업에 대한 지식과 현장 감각을 지녀야 하는 이유이다.

김도형 한림대학교 일본학과 겸임교수

※ 이 기사는 본지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