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트렌드] '키덜트의 힘' 달빛천사 OST 펀딩, 15억 원 돌파, 역대 후원자 수 '최고치'
[이슈&트렌드] '키덜트의 힘' 달빛천사 OST 펀딩, 15억 원 돌파, 역대 후원자 수 '최고치'
  • 이지원
  • 승인 2019.10.04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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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의 축제날에는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사진=페이스북 '이화여자대학교 총학생회' 페이지에서 캡처)

지난 2019년 5월 15일, 이화여자대학교의 축제 '대동제'에는 뜻밖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일대를 울리는 학생들의 힘찬 함성 뒤로는 힙합과 아이돌의 노래가 아닌, 어릴 적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멜로디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날 대동제 본무대 공연 첫 번째 초대 가수는 2004년 '달빛천사' 주인공 루나 역을 맡아 오프닝과 엔딩곡을 불렀던 이용신 성우가 올랐다. 이용신 성우의 출연 소식이 전해지자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뜨거운 반응이 쏟아졌다. 

현장에서의 호응 또한 아이돌 가수 못지 않았다. 현재 대부분 대학교에 다니고 있을 그 시대 학생들은 본인들이 듣고 자랐던 익숙한 목소리에 환호했으며, 학생들은 어릴 적 즐겨봤던 애니메이션 달빛천사를 다시금 되새기며 너도 나도 주제곡을 '떼창' 하기에 이르렀다.

축제가 끝난 후에도 그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계속됐다. 하지만 예전의 감성을 떠올리며 음원을 찾아 들으려 해도 쉽지 않았다. 1990년대 생이라면 단번에 흥얼거릴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한 노래였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풀문이 불렀던 명곡들의 음원이 정식으로 발매되지 않았다. 6곡 중 단 한 곡만을 음원 유통사에서 찾아들을 수 있어 결국 달빛천사의 다른 곡들은 유튜브 등 어둠의 경로로 들어야만 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하지만 최근 올라온 이용신 성우의 글은 이러한 '어른이(어른+어린이)'들의 마음에 다시금 불을 지폈다. 이용신 성우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을 통해 달빛천사 15주년 기념 국내 정식 OST 발매를 위한 자금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9월 27일부터 시작된 펀딩은 시작된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후원금액 15억 원을 돌파했다. (사진=텀블벅에서 캡처)

애니메이션 '달빛천사'는 2002년 제작된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만월을 찾아서'라는 원제를 갖고 있다. 한국에서는 2004년 방영되며 많은 인기를 얻었다.

가수가 꿈인 소녀 '루나', 하지만 그녀에게는 생명이 단 1년밖에 남지 않은 시한부의 인생을 살고 있다. 달빛천사는 루나를 주인공으로, 그녀를 안쓰럽게 여기며 그녀를 도와주는 사신의 이야기와 함께 가수 '풀문'이 되어 가수의 꿈을 이룬다는 내용을 다뤘다.

극중 주인공이 가수라는 직업을 다룬 만큼 애니메이션 내 OST는 명곡의 연속이었다. 1990년대생들의 기억속에는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기도 했다.

가슴 속에 묻고 살았던 달빛천사의 OST가 이화여대의 축제를 통해, 그리고 라이브 직캠 영상을 통해 유튜브에서 큰 인기를 끌며 이용신 성우에게 OST 음원을 요청하는 팬들의 요구도 계속됐다.

이용신 성우는 달빛천사 방영 15주년을 기념해 개인적으로 진행하려고 했으나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현실이 계속됐다. 일본 원곡자 저작권 권리대행인 소니에 문의 결과 한국에 정식발매를 허락하는 조건으로만 곡당 200만 원이 필요했으며, 이밖에도 ▲커버 라이센스 비용과 ▲새로운 MR 제작 ▲편곡 ▲가창 ▲믹싱 ▲마스터링 비용까지 확실히 개인이 모두 부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금액이었다.

이에 크라우드 펀딩이 진행됐다. 달빛천사의 주인공 역을 맡았던 성우 이용신은 지난 2019년 9월 27일부터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을 통해 달빛천사 15주년 기념 국내 정식 OST 발매를 위한 자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펀딩 소식이 알려진 후 반응은 뜨거웠다. 펀딩 개시 하루만에 목표 금액이었던 3300만 원을 달성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펀딩이 시작된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2019년 10월 2일, 21일의 기간을 남겨둔 현재의 모금액은 15억 5000만 원을 돌파(10월 2일 오후 5시 30분 기준)한 지 오래이다. 후원자 수는 약 4만 명, 국내 크라우드펀딩 사상 가장 많은 후원자 수를 기록했다.

애초에 ▲NEW FUTURE ▲MYSELF ▲LOVE CHRONICLE 등 총 3곡만을 담으려 했던 음반은 성원에 힘입어 요청이 많았던 'ETERNAL SNOW와 'SMILE'까지 수록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용신 성우와 만화가 타네무라 아리나는 펀딩 소식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사진=성우 이용신TV 채널에서 캡처)

이용신 성우는 성공적인 펀딩 진행에 자신의 유튜브를 통해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용신 성우는 "나도 15년을 기다렸지만 내 기다림보다 팬들의 기다림이 더 컸었던 것 같다"며 소감을 전했다. 또한 "콘서트를 해 달라는 댓글도 많았는데, 올해가 가기 전에 반드시 콘서트를 열겠다"며 "펀딩해 줘서 너무 고맙고, 이렇게 듬직하게 잘 자라줘서 고맙다"고 말해 진솔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또한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그날까지 나도 최선을 다하겠다"며 포부도 함께 전했다.

이러한 소식은 일본에 있는 만화가 타네무라 아리나(種村有菜)에게도 전해졌다. 달빛천사의 원작 만화를 그린 타네무라 아리나는 펀딩에 대한 소식을 듣고 "한국에서 만월을 찾아서의 음반 프로젝트를 하고 계신다고 멘션이 오고 있다"며 "지금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너무 기쁘다"는 감사인사와 함께 소감을 전했다.

15억 원이라는 이례적인 모금액의 배경에는 어릴 적 눈물을 훔치며 달빛천사를 시청하던 어린이들의 성장에 있다. 그 시절의 감성을 추억하는 어른이들의 향수와 15년간의 오랜 기다림이 곧 엄청난 시너지를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키덜트(Kidult: 아이 같은 감성과 취향을 가진 어른)'들의 성장이 이번 펀딩 사례와 같은 감동 시나리오를 완성한 것이다.

 

(데일리팝=이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