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동네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담는 우리동네 마을잡지 ‘인터뷰, 마을이음’
[인터뷰] 동네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담는 우리동네 마을잡지 ‘인터뷰, 마을이음’
  • 김수진
  • 승인 2022.09.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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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시민나루
사진제공 = 시민나루

“당신은 어떤 동네에 살고 있습니까?” 단번에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오르락내리락하는 부동산 시세라든지 다른 지역에서도 찾아올 만큼 유명한 맛집에 관해서라면 몇 마디 할 수 있겠지만, 그 후에는 어쩐지 입을 꼭 다물게 된다.

우리 동네가 거쳐온 변화를 차분히 들여다본 적이 없고,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웃의 얼굴은 너무나도 적다. 동네가 간직한 역사는커녕 바로 옆집에 사는 이와도 인사조차 제대로 나눈 적이 없으니, 삶을 일구어가는 터전이라고 부르기엔 영 낯설다. 그렇기에 문화플랫폼 시민나루 협동조합은 부지런히 질문을 던진다.

동대문구 14개 동을 구석구석 누비며 마을과 사람을 향해 말을 걸고,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수집한다. 이웃과 마주 보고 대화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동네는 귀하고 정다운 공간이 되어 간다. 역시 홀로 사는 삶보다는 함께 사는 삶이 훨씬 재밌다.

■ 마을은 나의 노후를 위한 곳

우리동네 마을잡지 ‘인터뷰, 마을이음’을 발행하고 있는 시민나루 협동조합 대표 심소영 활동가에게 동네 문화를 만들어가는 일은 일종의 노후 대비와 같다.

“점점 나이를 먹고 있잖아요. 어떻게 하면 늙어서도 잘 살 수 있을까? 돈을 아주 많이 벌어서 나중에 시설 좋은 시니어 아파트에 들어가는 방법도 있겠죠. 근데 제 생각에는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며 취미 생활도 하고 수다도 떨면서 사는 편이 한결 즐거울 것 같더라고요.”

조합을 꾸리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일부러 거창한 목표는 세우지 않았다. 시민나루를 일류 기업으로 만들겠다거나, 이를 통해 마을미디어의 1인자로 우뚝 서겠다는 욕심은 없다. 장애인직업훈련 교사, 사회복지사, 작은 도서관 프로그래머 등으로 직함을 바꾸며 여러 일터를 거치는 동안, 활동의 의의와 가치만큼이나 지속가능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우쳐서다. 더불어 살아가는 문화는 경쟁이 아닌 협동을, 속도보다는 꾸준함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단기간에 성과를 낼 일회성 사업 대신, 시민나루는 기록에 초점을 맞춘다. 시간과 에너지가 몇 배로 들지만, 문화적 토대를 갖추는 데 꼭 필요한 활동이다.

“보통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들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데, 주류 매체에서는 대개 유명인에 관해서만 다루잖아요. 우리 이야기를 스스로 기록하고 공유하면서 서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거라 봤어요.”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기에 앞서, 시민나루는 동네별 취재에 나섰다. 통장협의회와 주민자치회를 통해 정보를 얻고, 동네에서 오래 사신 분들을 수소문했다. 직접 발품을 팔며 돌아다니다 보니 동네의 새로운 모습이 눈에 들어왔을 뿐만 아니라, 집값과 자녀 교육 문제에만 맴돌던 주민들의 대화에도 서서히 물꼬가 트였다.

“한번은 경로당에서 총무 일을 하시는 할머니를 뵀어요. 동네 이야기를 들으러 갔는데, 본인이 그동안 살아오신 여정을 쭉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러다 끝에 울음을 터뜨리셨어요. 여태 아무도 내 얘기를 이렇게 들어준 적이 없다면서 너무 고맙다고요.”

대화를 청하면, 사람들은 저마다 고유한 빛깔과 향기를 지닌 열매를 선뜻 내어준다. 마음속에 숨어 있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과정은 질문하는 이와 답하는 이 양쪽 모두를 치유한다. 물론 부작용도 생긴다.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는 것도 모른 채 대화에 집중하는 바람에, 인터뷰를 마친 후 풀어야 할 녹취록 양이 산더미처럼 불어나는 것이다.

“아무래도 피로감이 큰 편이죠. 그래도 인터뷰하고 나면, 힘을 얻어요. 이 활동으로 누군가 위안을 얻는다는 사실이 제게는 보람으로 돌아오거든요. 덕분에 ‘그래, 잘하고 있어’ 최면을 걸면서 계속해나가는 것 같아요.”

▮인터뷰, 마을이음의 새로운 시작

작년까지 진행한 ‘인터뷰, 마을이음 시즌1’이 마을을 조사하며 주민 내 관계를 쌓는 과정이었다면, 올해 시즌2에서는 본격적으로 동네 이슈를 다루면서 공론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 봄에는 대통령 선거를 둘러싼 시민들의 생각과 감정을 귀담아들었다.

나이와 직업 등 서로 조건이 다른 유권자를 대상으로, 각 후보를 선택한 이유부터 향후 5년을 내다보는 마음까지 폭넓게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 호 주제는 돌봄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주목하며, 지역사회에서 돌봄을 어떤 방식으로 책임지고 배분하는지 살펴보려 한다.

한편, 시민나루는 전문성과 접근성을 높이려는 노력에도 적극적이다. 본래 편집과 디자인을 포함한 제작 과정 전반을 조합에서 소화했는데, 올해부터는 출판사와 계약하여 가이드를 얻는다. 마을잡지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되, 전체 레이아웃과 꼭지 구성 등을 다각도로 검토하여 내실을 갖춘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생각이다.

“사실 우리는 취미 생활처럼 잡지 만들기를 시작했잖아요. 예전에는 기사 분량을 못 줄이면, 글자 크기를 줄여서 넣었어요.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이번에 출판사를 통해 일반 잡지는 어떻게 기획 및 출간되는지 들어볼 수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우리 잡지를 전문적으로 리뷰하는 시간도 가졌고요.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독자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구나 싶었죠.”

하반기에는 인디자인 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다. 현재까지 쌓아온 경험과 새로운 배움을 바탕으로, 이르면 내년 또는 늦어도 내후년에는 외부 도움 없이 잡지를 출간하려 한다.

좀 더 많은 이와 소통하고자, 작년부터는 영상 콘텐츠 제작에 도전했다. 초반에는 전문가를 초빙하여 워크숍을 열었고, 이후 유튜브를 통해 틈틈이 공부하는 중이다. 현재 인터뷰 현장을 생생하게 담은 ‘마을인’과 동대문구 소식을 발 빠르게 전하는 ‘나루뉴스’ 등 다양한 영상을 유튜브 채널에 공유하고 있다.

콘텐츠 제작 역량을 강화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시민나루는 문화재단, 복지관, 주민자치회 등 각종 단체 및 기관과의 연계 사업에도 힘쓴다. 공익 활동과 수익 사업의 균형을 맞추기가 쉽지 않지만, 핵심은 명확하다.

“주민들 이야기를 아카이빙하는 일, 그건 놓지 말자는 생각이에요. 수익 사업이든 뭐든 우리가 축적한 이야기를 토대로 연결해나가자고요.”

최근에는 동대문구에 자리한 역사적 자원을 재료 삼아, 지역 관광 콘텐츠를 개발하는 시범 사업을 진행 중이다. 골목마다 숨어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엮어서 관광 코스를 만들고, 주민이 직접 마을해설사가 되어 이를 소개한다.

심소영 활동가는 시민나루 앞에 ‘문화플랫폼’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지역 의제를 발굴하고 동네 콘텐츠를 제작하는 마을미디어 활동을 이어가면서, 그는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문화 디지털 공간을 조직하기를 꿈꾼다.

“더글라스 홀트의 『컬트가 되라』를 읽고,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책에는 스타벅스, 나이키, 구글 등 문화를 활용해서 변화를 시도한 기업들이 등장해요. 그중 미국 프리랜서 노동조합 사례가 무척 와 닿았어요. 조합은 조합원에게 의료보험이라는 실질적 혜택을 제공하는 동시에,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해요. 소속감을 느끼도록 지역이나 직업별 소모임도 운영하고요. 우리가 그런 플랫폼이 될 수 있기를 바라요.”

어느덧 시민나루는 5년이라는 시간을 동네에서 보냈다. 독자적 마을공동체미디어 플랫폼을 개발하겠다는 꿈은 단지 소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연구하며 점차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응원을 담아, 앞으로 시민나루가 열어갈 새로운 시즌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