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들이 마이데이터를 무기로 '생활금융 슈퍼앱'으로 변신하고 있다. 은행·카드·증권·보험·퇴직연금·통신비는 물론, 가상자산까지 연결해 고객의 모든 금융 생활을 한 앱에서 관리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모두가 똑같이 "다 연결하겠다"고 외치는 가운데, 차별화는 은행마다 제각각이다.
마이데이터 2.0 시대, "50곳 제한 풀렸다"
2025년 6월 '마이데이터 2.0' 시행 이후, 시중은행들의 슈퍼앱 경쟁이 본격화됐다.
가장 큰 변화는 연결 가능한 금융회사 수 제한이 사라진 것이다. 기존에는 최대 50개 금융회사까지만 연결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제한 없이 본인의 모든 금융자산을 등록할 수 있다.
업권별로 일괄 연결도 가능해졌다. 개별 금융회사를 일일이 선택하지 않고, 은행, 증권, 보험 등 업권만 선택하면 전 금융업권에 흩어진 자산을 한 번에 조회할 수 있다. 심지어 휴면예금, 소액 계좌 해지까지 가능해졌다. 마이데이터 앱에서 장기 미사용 계좌를 조회한 후, '어카운트 인포' 시스템과 연계해 즉시 해지하거나 잔액을 이체할 수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마이데이터 누적 이용자는 2022년 1월 1400만명에서 2025년 5월 1억6531만명으로 약 11.8배 증가했다. 마이데이터 가입이 가능한 국민 한 명당 평균 3.5개의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5대 시중은행의 '슈퍼앱' 개성…기술과 생활의 결합
모든 은행이 '통합 조회'를 제공하지만, 그 안을 채우는 핵심 전략은 각기 다르다.
■ KB국민은행: '국민지갑'으로 생활 밀착 공공서비스 모아
KB국민은행은 모바일 앱 'KB스타뱅킹' 내 'KB국민지갑'을 통해 30여 가지 생활 밀착 공공서비스를 한 곳에 모았다. △주민등록증 모바일 확인 △도서관 이용증 △내차등록증 △전자증명서 같은 신분·증명 서비스부터, △여권 재발급 신청 △책이음 전국 도서관 출입 △예비군 동원훈련 확인 △운전면허 벌점감경 예약 △국립생태원·수목원·휴양림 예약까지 한곳에서 처리할 수 있다.
주민등록증 모바일 확인서비스 가입자는 2025년 10월 말 기준 938만명에 달한다. KB스타뱅킹에서 인천공항 탑승수속·혼잡도 확인이 가능하고, 병원에서도 신분증 대신 이 앱을 제시하면 진료를 받을 수 있다.
2025년 상반기에는 △건강보험공단 연계 의료기관 본인확인 QR서비스 △한국은행 디지털화폐(CBDC) 파일럿 '프로젝트 한강' 참여(예금 토큰 전환·결제) △국세·고용·산재보험 미환급금 조회·신청 '숨은 환급금 찾기' 서비스를 추가했다.
■ 신한은행: 배달앱+계열사 통합+가상자산 선점이 핵심
신한은행은 '신한SOL뱅크'와 그룹사 통합 슈퍼앱 '슈퍼SOL'을 운영하고 있으며 금융권에서 보기 드물게 은행 앱에 배달앱 '땡겨요'를 접목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션 참여 시 우대금리를 주는 '오락실 적금'을 출시하며 앱 체류시간을 늘리는 중이다.
'슈퍼SOL'은 은행·카드·증권·보험·저축은행 데이터를 한 곳에 모은 그룹 통합 슈퍼앱이다. MAU(월간 활성 이용자)는 608만명(2024년)으로 전년 대비 364% 급증했다. AI 챗봇/보이스봇 MAU도 729만명(97% 증가)을 기록했다. 2026년 6월 목표로 진행 중인 '뉴슈퍼SOL 프로젝트'는 AI 기반 개인화 맞춤 추천을 강화한다. '슈퍼SOL'을 '신한SOL뱅크'에 흡수 통합하는 과정이다.
신한은행은 가상자산 영역에서도 가장 앞서 있다. 2025년 9월부터 '신한 SOL뱅크' 앱에서 가상자산거래소 '코빗' 계정을 연동해 보유 가상자산의 종류, 시세, 수익률을 조회할 수 있다. 디지털자산태스크포스(TF)를 통해 스테이블코인, 해외송금, 국가 간 지급결제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
■ 하나은행: 하나원큐 재구축+생애주기 세분화로 차별화
하나은행이 운영하는 '하나원큐'는 카드·증권·캐피탈·저축은행·보험 등 하나금융 계열사의 주요 서비스를 통합한 슈퍼앱이다. 차세대 전산시스템 구축 사업 '프로젝트 퍼스트(FIRST)'를 통해 2026년까지 하나원큐를 전면 재구축할 예정이다. 고객의 거래 유형을 분류해 각자 선호하는 서비스에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맞춤형 구조를 구현한다.
'My금융진단' 서비스에서 고객을 사회진출준비→사회초년→가족형성기→은퇴준비→은퇴/안정기 등 5단계로 나누고, 각 단계별로 맞춤형 상품을 추천한다.
또 '아이웰스'는 AI 기반 디지털 자산관리 플랫폼으로 PB 수준의 초개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 2025년 11월부터는 영업점 창구에서도 생성형 AI를 활용한 마이데이터 자산관리 서비스를 시작했다.
하나금융융합기술원은 70여명의 석박사급 연구원과 3개 랩을 운영하며 기술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 우리은행: 그룹사 통합+전세안전·공공서비스
우리은행은 그룹사 통합, 주거 안전, 공공서비스 연계, 구독 서비스 관리라는 독특한 틈새를 공략한다.
'우리WON뱅킹'은 2024년 우리금융 전 그룹사 핵심 서비스를 담은 슈퍼앱으로 재탄생했다. 주식거래가 가능한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이 접목됐으며, 최근에는 큐뱅과 글로벌 전 세계 QR 결제 서비스 도입도 추진 중이다.
'전세지킴이' 서비스는 전세사기 예방 플랫폼 '세이프홈즈'와 제휴해 보증금과 주소만 입력하면 AI가 보증금 안전도를 분석하고, 임대인 관련 리스크 정보를 안내한다. 전세계약 이후에도 '등기변동알리미' 기능으로 사기 위험을 사전 방지할 수 있다.
'우리WON지갑'은 2025년 6월 리뉴얼을 통해 행정안전부의 '디지털서비스개방' 기반 공공서비스를 탑재했다. △국세 미환급금 조회 △고용·산재보험 과납금 환급신청 △자원봉사 신청 및 조회 △혜택 알리미 등 공공행정 분야 서비스가 대폭 강화됐다.
구독 서비스 관리에서는 '우리 마이데이터'를 통해 업계 최초로 바디프랜드, 에치와이(구 한국야쿠르트), 빨간펜, 교원 웰스, 블라이스(웹소설) 등 제휴사 구독 상품 정보를 한 곳에 모아 조회하고 가입까지 가능하다.
■ NH농협은행: '농협 DNA' 특화 콘텐츠+이원화 앱 구조의 딜레마
NH농협은행은 농업 특화 콘텐츠로 차별화를 시도하지만, 이원화된 앱 구조가 약점으로 지적된다.
'NH올원뱅크'는 2025년 5월 생활서비스를 개편하며 NH포인트 적립 콘텐츠 '포인트 쌓기'와 일상 혜택 중심의 '생활혜택' 메뉴를 신설했다. △미션형 리워드 '오늘도 포인트 받기' △게임형 콘텐츠 '기억력 게임' △농산물과 포인트를 함께 제공하는 '올리네농장' △퀴즈 참여형 '디깅퀴즈' 등 농협만의 차별화된 콘텐츠를 제공한다.
'생활혜택' 메뉴는 부동산·헬스케어·모빌리티 등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강화했다. △전국 도서관 도서 대여 서비스 '책이음' △관심 이슈 리포트 제공 'NH트렌드+' △반려동물 생애정보 관리 '반려동물 정보관리'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하지만 NH농협은행은 'NH스마트뱅킹'과 'NH올원뱅크'라는 두 개의 앱을 운영하면서 사용자는 필요에 따라 각기 다른 앱을 오가야 하는 상황이다.
농협은행의 올원뱅크 슈퍼플랫폼 전략은 △일생금융(청소년·어린이 대상 라이프낸싱) △공감금융(맞춤 솔루션) △일상금융(펫케어·여행·부동산·자동차·기부) △애착금융(온·오프라인 통합)이라는 4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알뜰폰 자체 출시, 쇼핑플랫폼 역할까지…"슈퍼앱의 길"
시중은행들은 마이데이터에서 단순히 통신비 납부일을 조회하는 수준을 넘어, 자체 알뜰폰(MVNO) 사업자로 직접 뛰어들고, 포인트·우회쇼핑 혜택으로 쇼핑 통로 역할까지 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2019년 금융권 최초로 알뜰폰 서비스 'KB Liiv M(리브모바일)'을 출시했다. 급여이체·카드 실적에 따라 최대 월 3300원 할인, 멤버십 제공 등으로 은행 거래와 통신을 결합한 락인 효과를 노리고 있다.
2025년 4월에는 우리은행이 '우리WON모바일'을 출시하며 후발주자로 진입했다. 월 5000원대~3만원대 요금제를 제공하며, 급여이체·예적금·카드 실적에 따라 할인을 제공한다.
이런 가운데 카드 혜택과 연계한 포인트 적립, 제휴 쇼핑몰 우회 링크 제공 등으로 고객이 은행 앱을 거쳐 쇼핑하도록 유도하는 것으로도 수수료 수익을 창출하는 중이다.
하지만 알뜰폰 요금제 자동 비교·전환 같은 서비스나 본격적인 쇼핑몰 통합 기능은 아직 초기 단계다. 2027년 개인정보 마이데이터 10개 부문 오픈 이후에야 통신·유통 데이터까지 완전히 통합된 '생활 슈퍼앱'이 가능할 전망이다.
의료·통신·유통까지…'개인 마이데이터' 확장
금융 마이데이터가 자리잡은 가운데, 이제는 개인정보 마이데이터로 확장이 시작됐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2024년부터 통신·유통 분야를 대상으로 중계시스템과 전송지원플랫폼 구축에 착수했다.
1차 우선추진 5개 부문(통신·유통 포함)은 2025년에, 2차 우선추진 5개 부문은 2026년에 구축을 거쳐, 2027년에는 10개 부문 전 분야 마이데이터가 오픈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시중은행 슈퍼앱은 금융을 넘어 통신요금, 쇼핑 이력, 배송 정보까지 통합 관리하는 진짜 '생활 슈퍼앱'으로 진화할 수 있다.
다만 개인정보 마이데이터는 금융 마이데이터와 별도 법체계로 운영되며, 결합 사용 기준이 아직 불명확해 실제 서비스 출시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