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 안 하면 돈 아낄 수 있는 거 맞는데, 돈 줄줄 새더라도 독립하고 자취한다는 건 또 인생의 새로운 시야를 주는 것 같아요. 자취는 자동차 같은 거예요. 차 할부, 유지비 엄청 나온다는 걸 알지만, 차 생기면 나의 활동반경이 넓어지는 거니까요"
2025년 기준 서울 원룸 평균 월세(보증금 1000만원 기준)는 72만원을 기록했다(다방 실거래가 분석). 청년 취업자 세전 월소득 평균 266만원(2024년 청년의 삶 실태조사)의 약 27%를 주거비로만 써야 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자취를 선택하는 1인가구는 줄지 않는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4년 기준 1인가구는 전체 가구의 36.1%인 804만5천 가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월세·관리비·공과금이 줄줄 빠져나가는 현실을 뻔히 알면서도 독립을 택하는 이들에게 자취는 단순한 주거 형태가 아니다. 그 이유를 직접 들어봤다.
"자취하고 나서야 집 살 생각이 생겼다"
서울 마포구 원룸에서 3년째 혼자 사는 직장인 박수현(33) 씨는 자취를 '경제 감각을 키운 학교'라고 표현한다. "매달 월세 내고 공과금 정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집값도 들여다보게 되고 부동산 관심도 생겼어요. 자취 안 했으면 집 살 생각을 이렇게 구체적으로 못 했을 것 같아요"
생활비를 직접 쪼개고 관리하는 경험이 장기적인 자산 계획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생활력이 강해지는 게 스스로도 느껴지고, 자취하면서 인생 살아가는 레벨이 올라간다는 말이 진짜인 것 같아요"
실제로 2024년 기준 1인가구의 월평균 소비지출(168만9천원) 중 주거·수도·광열비가 18.4%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지출 압박이 크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재무 감각이 단련된다는 경험은 자취 경험자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이야기다.
"요리도 못 했는데, 혼자 살면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게 됐다"
워킹홀리데이로 일본에서 1년을 보낸 최아름(27) 씨에게 자취는 자기 발견의 시간이었다. "한국에서는 자꾸 이런저런 이유로 자취를 못 했는데, 일본에서 혼자 살아보니까 완전히 달라졌어요. 요리도 집에선 하나도 안 했는데 혼자 이것저것 만들어 먹고, 내 스스로 한다는 게 다 재미있더라고요"
귀국 후 그는 서울에 자취방을 구했다. "가족들이랑 화장실 공유하는 게 이제 안 되겠더라고요. 사소한 것 하나까지 내 취향대로 할 수 있다는 게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였어요"
공간에 대한 주권 의식은 1인가구 자취의 핵심 동기 중 하나다. 2024 통계로 보는 1인가구에 따르면 혼자 살고 싶어서 독립을 선택한 비율은 14.3%로, 학업·직장(22.4%)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이유였다.
"가족과 완전히 분리 안 되면 괴로운 삶도 있다"
모든 자취가 자유와 성장을 향한 선택은 아니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올라와 혼자 사는 이민정(38) 씨는 독립의 이유가 달랐다. "가족과 완전히 분리가 안 되면 괴로운 삶이 있어요. 저한테는 자취가 선택이 아니라 필요였던 거죠"
같이 살아도 괜찮은 가족 관계라면 굳이 돈 써가며 나올 필요 없다고 했지만, 본인은 나와야 했고 나오길 잘했다고 말했다. "월세가 아깝다는 생각보다, 내 공간에서 숨 쉴 수 있다는 안도감이 더 커요"
"꼭 자취해야만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반론도 있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정태호(41) 씨는 자취 없이도 충분히 독립적인 삶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걸 직접 경험해야만 아는 건 아니잖아요. 인생은 할 일이 많은데 시간은 짧아요. 저는 그 시간과 돈을 다른 데 쓰는 주의예요" 다만 자취 경험자들을 폄하하지는 않는다.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고, 자취가 맞는 사람이 있다는 건 알죠.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1인가구 자취, 비용인가 투자인가
네 사람의 이야기는 자취에 정해진 답이 없다는 걸 보여준다. 누군가에게는 경제 감각을 키우는 학교였고, 누군가에게는 자기 취향을 발견하는 공간이었으며, 또 누군가에게는 관계로부터의 탈출구였다.
1인가구가 전체 가구의 36%를 넘어선 지금, 자취는 일상적인 일이다. 세전 월급의 4분의 1 이상을 월세로 내면서도 자취를 꿈꾸는 청년들의 선택은, 숫자로는 설명되지 않는 이유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