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이하 SKT)이 내수 중심의 통신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글로벌 AI 인프라 시장을 향한 체질 개선에 나선다. SKT는 최대 15GW(기가와트) 규모의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구축 계획을 공개하고, 한국을 아시아 지역의 AI 인프라 허브로 도약시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국내 AI 컴퓨팅 인프라를 선제 확보해 아시아 지역의 AI 인프라 허브로 도약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번 다년도 프로젝트는 기존 통신 사업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AI 인프라 공급 및 운영업으로 확장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정재헌 SKT CEO는 “이번 AI 데이터센터 구축은 글로벌 AI 생태계가 필요로 하는 컴퓨팅 인프라를 선제적으로 준비하기 위한 것”이라며 “정부·산업계·지역사회와 긴밀히 협의해 대한민국이 아시아의 핵심 AI 인프라 허브로 성장하는 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글로벌 공급 부족 대응과 국내 입지 활용
맥킨지앤컴퍼니 조사에 따르면 글로벌 데이터센터 수요는 매년 19~22% 증가하고 있으나 공급 부족이 지속되는 추세다. 오는 2030년에는 미국 시장에서만 약 15GW 규모의 공급 쇼티지가 발생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따라 아마존을 비롯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자본지출(CAPEX)을 확대하며 인프라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SKT가 대규모 데이터센터 유치 기지로 한국을 택한 배경에는 국내 제조 및 인프라 환경의 이점이 작용했다. 한국은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AI 반도체 공급망이 인접해 있고, 원자력 및 액화천연가스(LNG) 중심의 안정적인 전력 공급 여건을 갖췄다. 대규모 반도체 생산시설(Fab)을 운영하며 축적한 GW급 인프라 관리 노하우도 글로벌 수요를 끌어들이는 요인이다.
SKT는 2029년부터 단계적으로 가동할 5GW 규모의 인프라를 우선 확보한다. 울산 1호 센터를 시작으로 영남권에 2GW 이상, 서남권에 1GW를 추가 구축하는 흐름이다. 이후 시장 수요와 가동률을 검토해 오는 2035년까지 최종 15GW로 공급량을 순차 확대할 예정이다.
재무적 리스크 분산과 자금 조달 구조
고성능 컴퓨팅 장비 도입과 메모리 가격 변동성으로 인해 1GW급 인프라 구축에는 약 70조원 수준의 총괄 사업비가 추산된다. SKT는 최종 목표치인 15GW 자금을 일시에 투입하는 방식 대신, 리스크를 분산하는 다단계 조달 구조를 채택했다.
자체 재원 투입을 최소화하기 위해 글로벌 빅테크 등 대형 장기 계약 고객(앵커 테넌트)을 사전 확보하고, 이들과의 계약을 기반으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및 전략적 파트너 투자를 연계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2035년까지 투자 일정을 장기 분산해 전방 시장의 수요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완충 장치를 뒀다.
SK그룹 ‘풀스택’ 공조와 글로벌 빅테크 협력 체계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 경쟁력은 SK그룹 계열사 간 인프라 밸류체인 공조다. 데이터센터 운영에 필수적인 반도체(SK하이닉스), 에너지 솔루션(SK E&S 등), 시공 역량이 그룹 내부에서 소화 가능하다. SKT는 전체 인프라의 설계·구축·운영을 총괄하는 아키텍트 역할을 수행한다.
글로벌 선도 기업들과의 협업도 진행 중이다. 울산에 건설 중인 하이퍼스케일급 데이터센터는 아마존웹서비스(AWS)의 전력·냉각 기술 요구 수준에 맞춰 2027년 하반기 가동을 준비하고 있다. 향후 이를 1GW 이상으로 확장하는 구조다. 엔비디아와 공동 추진하는 'AI 팩토리' 역시 2027년 운영을 시작해 장기적으로 GW급 확장을 검토한다.
한편 SKT의 이번 투자 계획은 전통적 내수 통신사에서 안정적인 B2B 인프라 플랫폼 기업으로 기업가치를 재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다. 장기 공급 계약에 기반한 데이터센터 매출은 경기 변동에 탄력적인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AI 3강(G3)' 정책 및 지역 균형 발전 기조와 맞물려 행정적 지원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다만 실제 가동 시점까지 해결해야 할 과제도 명확하다. 대규모 데이터센터 가동의 성패는 안정적인 대량 전력 수급과 인허가 속도에 좌우된다. 2027년과 2029년으로 예정된 초기 가동 일정을 차질 없이 소화하기 위해서는 정부 및 지자체와의 송배전망 인프라 협의가 선제적으로 완료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