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줌인] 312조 몰린 영남권, 기업마다 다른 계산법…구미는 로봇, 울산은 원전, 창원은 방산
[뉴스줌인] 312조 몰린 영남권, 기업마다 다른 계산법…구미는 로봇, 울산은 원전, 창원은 방산
  • 정단비
  • 승인 2026.07.06 14: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남권에 총 312조원 규모의 첨단산업 투자 계획이 쏟아졌다. 하지만 같은 '영남권 투자'라도 기업마다 선택한 전략은 달랐다. SK는 AI 데이터센터, 삼성은 제조 AI와 로봇, 한화는 우주항공·방산, 현대차그룹은 미래차와 에너지에 무게를 실었다. 투자 규모보다 각 기업이 영남권을 어떤 산업 거점으로 키우려 하는지가 이번 발표의 핵심이다.

정부와 6대 그룹은 지난 3일 경남 진주 경상국립대학교에서 '영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를 열고 총 312조원 규모의 지역 투자 계획을 공개했다. 지난달 29일 청와대에서 발표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의 세 번째 후속 무대로, 광주(서남권)와 아산(충청권)에 이어 영남권 발전 전략이 제시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참석했고,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장재훈 현대차그룹 부회장, 노태문 삼성전자 대표이사, 정재헌 SK텔레콤 대표이사가 각 그룹을 대표해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발표된 투자 규모는 SK그룹이 140조원으로 가장 컸다. 이어 삼성 60조원, 한화 55조원, 현대차그룹 42조원, LG 9조4000억원, 두산 5조1000억원 순으로 총 312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이 제시됐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LG와 두산을 포함하면 투자 규모가 312조원을 웃도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단순한 투자액 비교만으로는 이번 발표의 의미를 설명하기 어렵다. 같은 '영남권 투자'라는 이름 아래 함께 발표됐지만 기업마다 집중하는 산업과 지역, 투자 방식은 뚜렷하게 달랐다.

사진=정재헌 SKT CEO가 ‘영남권 첨단산업 육성전략 국민보고회’에서 AI 데이터센터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정재헌 SKT CEO가 ‘영남권 첨단산업 육성전략 국민보고회’에서 AI 데이터센터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SK, 140조원 대부분 'AI 데이터센터'에 집중

SK그룹의 140조원은 이번 발표에서 가장 큰 규모이면서도 가장 집중도가 높은 투자다. SK텔레콤은 울산을 중심으로 영남권에 2기가와트(GW) 이상의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계획이다. 이미 울산에서 100메가와트(MW) 규모의 하이퍼스케일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착수했으며, 전국 최초의 1GW급 메가 데이터센터 조성도 추진한다. 추가 사업 부지는 정부와 협의를 거쳐 결정하고, 해외 투자 유치도 병행할 계획이다.

여섯 개 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AI 데이터센터라는 단일 인프라에 대규모 투자를 집중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다른 그룹들이 로봇과 배터리, 원전, 우주항공 등으로 투자를 분산한 것과 대비된다. 다만 데이터센터 사업은 대규모 전력 공급과 부지 확보, AI 수요 확대 여부 등 다양한 사업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추진 과정이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정부가 이날 울산에 1GW 규모 메가 데이터센터를 국가 차원에서 조성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사진=노태문 삼성전자 대표가 영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에서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노태문 삼성전자 대표가 영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에서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삼성, 지역별 역할을 나눈 '분업형 투자'

삼성의 60조원은 지역별 역할을 가장 세분화한 투자다. 구미에는 삼성전자와 삼성SDS가 19조원을 투자해 휴머노이드 로봇 양산과 AI 기반 스마트공장 구축을 추진한다. 울산에는 삼성SDI가 16조원을 들여 전고체 배터리와 리튬인산철(LFP)·나트륨 배터리 생산 기반을 확대하고, 부산에서는 삼성전기가 AI 서버용 반도체 패키지 기판과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생산을 확대한다. 거제에서는 삼성중공업이 디지털과 AI, 로봇 기술을 접목한 '3X' 기반 자율형 조선소 구축에 나선다.

노태문 삼성전자 대표이사는 이날 영남권이 갤럭시 스마트폰(구미), 배터리(울산), MLCC와 반도체 패키지 기판(부산) 등 삼성 제조업의 핵심 거점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은 기존 생산기지에 AI 전환(AX)과 로봇 전환(RX)을 접목해 미래형 제조기지로 고도화하는 전략을 제시했다. 신규 산업단지를 조성하기보다 기존 제조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다른 그룹과 차별화된다. 삼성은 이번 투자로 양질의 일자리 20만 개를 창출하겠다는 목표도 내놨다.

사진=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영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에서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영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에서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한화, 우주항공과 방산에 승부

한화의 55조원은 우주항공과 방위산업에 집중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약 23조원을 투입해 독자 발사체 생산·시험시설을 구축하고 상업 발사가 가능한 우주수송체계를 확보한다. 한화시스템은 약 20조원을 투자해 초저궤도 SAR 위성과 우주 AI 데이터센터, 저궤도 위성통신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이른바 '한국형 스타링크' 구현에도 나선다는 구상이다.

경남 창원에는 10조원 이상을 투입해 국방 AI 데이터센터와 AI 기반 국방 플랫폼 'Defense OS' 개발을 추진한다. 투자 시한도 2040년까지로 다른 그룹보다 장기적으로 설정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날 우주항공을 영남권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힌 점도 한화의 투자와 이어진다. 정부는 위성과 발사체, 미래 항공기, 우주 신산업을 잇는 '남해안 우주항공 산업벨트' 조성 계획을 함께 발표했으며, 한화는 이 벨트의 핵심 민간 투자 축 역할을 맡게 된다. 기존 제조업의 고도화에 초점을 맞춘 다른 그룹들과 달리 새로운 우주항공 산업 기반을 구축하는 데 무게를 뒀다는 점이 특징이다.

사진=장재훈 현대차그룹 부회장이 3일 경남 진주에서 열린 영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에서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장재훈 현대차그룹 부회장이 영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에서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현대차, 완성차보다 미래 부품과 에너지에 무게

현대차그룹은 향후 10년간 42조원을 투자해 AI 기반 자율주행 모빌리티와 미래 핵심 부품 제조 클러스터, 제조 AI, 미래 항공우주, 에너지 분야를 육성할 계획이다. 울산에는 AI 디파인드 비히클(DV) 제조 허브를 구축하고, 울산·대구·창원에는 미래 핵심 부품 클러스터를 조성한다. 소형모듈원전(SMR), 해상풍력, 수전해 플랜트 등 에너지 인프라 투자도 포함됐다.

완성차 생산뿐 아니라 미래 핵심 부품과 에너지 인프라까지 투자 범위를 넓힌 점이 이번 계획의 특징이다. 자율주행과 전동화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제조 경쟁력과 미래 에너지 기반을 함께 강화하려는 전략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LG·두산, 규모는 작지만 전략은 분명

LG와 두산의 투자 규모는 앞선 네 그룹보다 작지만 투자 방향은 명확하다.

LG는 9조4000억원을 투입해 AI 데이터센터 확산에 대응하는 냉난방공조(HVAC)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하고, 차세대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기판 생산 능력을 확대한다. AI 인프라 확대와 함께 증가하는 냉각·공조 기술 수요를 겨냥한 투자다.

두산은 5조1000억원을 소형모듈원전(SMR), 대형 원전, 가스·수소터빈 등 차세대 에너지 분야에 집중 투자한다. 정부가 이날 세계 최초로 창원에 SMR 생산기지를 조성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가스터빈과 풍력 등 그린에너지 대전환의 출발점을 영남권으로 삼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정부 밑그림은 '반도체·AI·로봇'

정부는 기업 투자와 함께 '영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도 발표했다. 반도체는 수도권 생산거점과 충청권 패키징 거점을 연계해 영남권을 소재·부품·장비 혁신거점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부산은 전력반도체 클러스터, 구미는 소부장·방산 특화형 반도체 테스트베드로 조성한다.

AI 분야에서는 영남권에 2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구축하고, 울산에는 전국 최초의 1GW 메가 데이터센터를 조성한다. 또 구미와 포항, 대구, 창원을 연결하는 '첨단로봇 초혁신벨트'를 구축해 로봇 산업을 집중 육성할 계획이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국내생산세액공제 신설, SMR 국가전략기술 지정 검토, 동남권 투자공사 설립, 영남권 첨단 국가산업단지 조성 등도 추진된다.

앞서 발표된 서남권(800조원)과 충청권(392조원) 투자 규모와 비교하면 영남권의 312조원은 상대적으로 적은 수준이다. 다만 이번 발표는 삼성, SK, 현대차, LG, 한화, 두산 등 6대 그룹이 모두 참여했고, 반도체와 AI, 로봇, 우주항공, 방산, 에너지, 조선, 자동차 등 다양한 산업 분야를 아우른다는 점에서 다른 권역 투자 계획과 차별화된다.

결국 이번 발표는 단순히 투자 규모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별 산업 특성에 맞춰 AI와 반도체, 미래차, 우주항공, 에너지 등 미래 성장동력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를 구체화한 청사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관련기사